”디리리리... 디리리리...“
5분 간격으로 여러차례 알람이 계속 울려댄다. 엄청나게 무거운 눈커플을 간신히 들어올리듯 살짝 눈을 떴다. 6시 40분. 이런. 더 지체하다간 늦는다. 세수도 하고 약간의 단장을 하려면 일어 나야했다.
”아...시차...정말......“
엘리는 볼멘소리를 하며 포근한 이불의 유혹을 겨우 떨쳐 낸다. 세수를 한 뒤 검정 고양이가 그려진 핑크생 잠옷을 잠시 바라보다 상의만 보라색 니트로 갈아입었다. 나름의 파티의상이다. 살짝 머리를 단장하고 컴퓨터를 켰다. 2023년 1월 19일. 오늘은 새롭고, 혁신적인 트렌드와 기술을 학교 교육에 접목시키고자 모여 소통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교사들의 모임이 시작된지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는 날이다. 미국의 소수의 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시작된 프로젝트이기에 시차는 어쩔 수 없다. 그나마 7시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벽 4시였다면 아마 잠을 호기심을 이겨버렸을 것이다.
커뮤니티 소통은 주로 Discord 에서 음성이나 화상으로 진행된다. 디스코드는 음성, 채팅, 화상회의가 가능하고 주제기반으로 채널 분류가 가능한 일종의 메신저이다. 엘리는 Discord 에서 그녀의 프로필을 보이고 목소리로만 참여했다. 토픽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관심있는 주제가 있고 시간이 맞으면 자유롭게 참여하면 된다. 대게는 자정이 넘거나 출근 길에 캐쥬얼한 미팅이 있었고 조용히 듣거나 간혹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1년째 낯을 가리고 있는 중이지만 의미있는 날인 만큼 오늘은 카메라를 키고 참여하고 싶었다. 사실 그녀가 이 웹 3.0 이라 불리는 세계를 만난지도 1년이 조금 넘었다. 은밀한 이중생활이기도 했다. 그녀가 살던 세상과의 완전히 다른.
오늘 파티장소는메타버스 플랫폼 ZEP 이었다. 처음 써보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1년 전쯤처음에 새로운 우주와도 같았던 이 세계의 발을 딛었다. 수많은 플랫폼과 툴들을 만날 때마다 한번도 써보지 못한 것들에 적지않게 당황했다. 동공이 흔든리고 심장이 두근 거린다. 그땐 그랬다. 컴퓨터에 관련한 것은 친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려웠던 순수 문과생있었다. 두려움에 멈추냐, 그냥 일단 시도해볼까 고민의 순간들. 그녀는 일단 눌러보기로 했다. 누른다고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것은 아니니. 그러다 보니 어느사이 처음 접하는 플랫폼이나 낯선 소프트 웨어, 툴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미지의 것에 대한 마음이 열렸다. 멈칫 하는 대신 궁금해지며 호기심이 발동하여 손가락을 움직여 댄다. 눈빛을 발산하며.
ZEP 내의 Town Hall이 행사 장소이다 이다. ZOOM과 비슷해서 로긴 없이 주어진 URL을 따라 접속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메타버스내에서는 아바타를 설정할 수 있다. 기본 아바타는 심심한 남자아이 모습이다. 빨간 리본의 노란 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맘에 들었다. 아바타로 설정하고 이름도 Allie로 바꿨다. 준비완료. 이젠 화살표 커서와 스페이스 바를 이용해서 그녀의 아바타를 파티장소인 Town Hall로 이동시키면 된다. 작년 몇차례 메타버스 공간에서 아등바등 대곤 했다. 모임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고, 벽에 부딪혀서 앞으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벽치기를 한다거나, 모임 장소에서 겨우 도착해서는 자리를 잡고 앉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의도치 않게 다른 참여자에게 붙어 있거나. 참으로 이상한건, 그 당시 그녀의 이름을 넣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녀의, 아니 그녀의 아바타의 존재를 몰랐는데 그녀는 무척이나 창피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방향을 잡고 Town Hall 이라고 쓰인 곳을 향해 전진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과 의자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먼저 도착한(접속한) 참석자들의 아바타가 보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의자에서 방향을 잡느라 한바뀌씩 돌고 있거나, 점프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모습의 참석자들을 보니 반가웠다. 귀여운 모습의 캐릭터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참여자들의 실물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엘리는 피식 웃음이 났다. 진지한 선생님들의 얼굴과 귀엽지 그지없는 아바타들의 공존의 현장이다.
크게 형식적이지 않은 1주년 기념 행사가 이어졌다. 커뮤니티가 지나온길, 그를 통해 알게된점, 나아갈 길, 네트워킹, 그리고 건배(Toast)까지 예정되어 있다. 피피티가 공유되었다.
커뮤니티 파운더로서의 새로운 시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현실, 그로인해 배운 경험치, 그를 바탕으로한 앞으로의 계획들이 이어졌다. 엘리는 이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웹3라 칭해지는 다른 우주와도 같았던 이 세계에서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Recap of Allie’s Web3 life in 2022‘ 즉 2022년 엘리의 웹3 삶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자신들의 시간과, 지식, 자본을 들여서 교육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고 할까. 교사도 아닌 엘리 그녀는 왜 이렇게 그녀의 시간과 에너지와 열정을 쏟고 있을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출근 하던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난 아침이 애뜻해진다. 생각에 빠질 무렵 다음 순서가 이어진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멤버를 찾아가서 앉으세요“ 이럴 때 살짝 난감하다. 소규모 네트워킹 시간이다. 자율적인 분위기의 커뮤니티였지만 선생님이 아니라는 생각에 항상 한 발자국 쯤은 떨어져서 소극적으로참여해왔던 그녀다. 엘리는 원래 앉아 있던 테이블에 그대로 있었다. 다행히 낯이 익은 Dogukan이 내 옆에 앉았고, 오늘 처음 만난 Pablo가 왔다.
"대박!" 그녀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인원들의 화면과 목소리만 들리는게 아닌가. 스크린엔 다른 테이블도 여전히 보였고 테이블을 옮겨 다니는 귀요미들도 보였다. 분명 이전까지 참여자 전체인원의 얼굴과 목소리가 들렸는데 .오늘 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서양권의 그들은 언제나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어색함이라고는 없는 듯 하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Dogukan은 말했다 ”교육은 사회문화적인 경험적 요소를 접목시켜와 함과 동시에 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쓰면서 공부를 함과 동시에 지식을 전달 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는 실제로 그가 단독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전 영어단어나 문장을 간단히 입력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디지털 그림을 몇초만에 생성해주는 AI 프로그램 활용방법을 초등학생 조카들에게 알려줬던 이야기를 공유했다. 생각보다 금방습득했다. ”오앙 예쁘다“를 여러번 이야기 하며 강아지와, 강아지들을 그려냈다. 디지털기기를 태어나면서부터 접했던 이 아이들이다. 빠르게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자시 신기하긴 했지만 그녀가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적인 반응은 전혀 없었다.
“ AI 활용해서 그림을 잘 그릴려면 그만큼 제시어를 잘 넣어줘야 하잖아요. 처음에 방법을 가르쳐준 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생성하기 위해 단어를 찾고, 스스로 알아보는 과정을 거치며 영어 단어나 문장을 공부하도록 하면 조금더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엘리는 그렇게 두 가지를 같이 접목시켜 아이들이 좀더 흥미있게 영어를 받아들이고 AI에 가까워 지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국내파 통역사다. 영어가 좋아서 '공부'했지만 재미있는 방법으로 흡수하듯 익혔던 기억은 없었다. 그런 방법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대치동, 목동에서도 영어 강사를 하던 때에도 일부러 한국 입시수업은 피해서 했다. 초중 학생이나 해외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을 지도 했다. 그러면 전자기기에 익숙한 앙
AI 이야기에 Pablo는 신이난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Chatgpt“는 정말 혁신적이고 놀라워요. 11살 학생이 Chatgpt로 게임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교육에서 Chtgpt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해져요” 관련 기사까지 첨부했다.
사실 그 기사는 얼마전 그녀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던 기사였다. 동시에 우려스럽기도 했다. AI 채팅봇인 Chatgpt의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11살 아이가 게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고작 11살 어린학생이 무언가를 만들어서가 아니었다. 한국 아이들이 얼마나 이런 새로운 기술에 관심에 접근할 수 있을지가 무척이나 두려웠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입시위주의 영어교육으로 영어로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가정형편이나 교육환경 또한 큰 요소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렇게 영어권 교사들의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영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한창 몰입 중인 Chatgpt 수행 결과물도 영어로 입력했을 때와, 한글로 입력했을 때의 결과물은 확연히 달랐다. 당연했다. AI는 수집된 데이터를 기초로 결과물을 산출한다. 인터넷에 존재하고 생산하는 대부분의 자료는 영어를 기반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영어능력이 얼마만큼의 AI 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 진화하듯 변하는 테크 리터러시(literacy)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녀의 이런 두려움 내지는 걱정은 지난 1년동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하늘은 막혔는데, 인터넷과 메타버스 세상은 오히려 더 확장되고 방대해졌다. 그리고 아주 쉽게 세계 어는 곳과도 연결되어 느슨한 연대와, 나눔, 배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아무리 구글번역과 파파고의 성능이 발전해도 즉각적인 소통과 교류, 정보 습득에 있어서는 영어가 필요했다. 그녀가 이 분커뮤니티를 발견하고 빨리 흡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올라오는 해외 SNS상의 정보를 즉시 보고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우리 그럼 다같이 건배할까요(Let's make a toast) ?”
어느 덧 마무리할 시간이다. 오전 8:30이 넘어섰다. 술마시기엔 너무 이른 시간, 그녀는 좋아하는 홍차계열의 차가 담긴 잔을 들었다. 투명한 잔 속의 블랙티는 마치 위스키처럼 보이기도 했다.
" Allie, OO, OO 이벤트 담청 되었어요. DM 주세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행사에서 상품이 빠지면 서운한 법인가 보다. 세 명에게 NFT를 선물하겠다고 했는데 그 중 한명으로 뽑혔다. 상품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그녀는 몹시나 기쁘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 그 작은 디지털 아트가 그녀에게는 이렇게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준 열쇠였기 때문이다.
외고 재학시절 교환학생 기회가 있었다. 정말 가고싶었는데 가지 못했다. 그런 엘리는 이 프로젝트의 NFT를 통해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교수님까지 선생님들을 만나며 유학의 한을 풀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메타버스에 이제는 완벽히 익숙해졌다고 자신 만만했던 엘리는 기념삼아 찍어둔 스크린샷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모임할 때 긴장한 나머지 옆으로 방향을 틀지 못해 Pablo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I’m sorry, Pablo
글쓴이 : ‘순수국내파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썼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탐험과 경험을 즐기고, 그 재미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작지만 의미있는 도움이 되기를 소망. 아이들과 학생들이 재미있게 영어를 익히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jiyoungpark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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