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회사에 있을 때 정아은 작가님을 처음 만났다. 그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첫인상이 상큼했고 친화력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명랑했다. 나는 한눈에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요새도 그와 자주 수다를 떤다.
―작가님, 그래서 요새 쓰는 에세이는 어떤 내용인가요? 사랑에 관한 에세이라 그러셨죠? 막 작가님 사랑 얘기 나오고 그런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요. 누가 제 사랑 얘기를 궁금해하겠어요. 제가 이슬아도 아니고. (호호) 책도 많이 인용되고요, 여러 인물들이 나와요. 찰스 왕세자나 마크롱 대통령 같은 동시대 인물들도 있고, 육영수나 이희호 같은 지난 인물들도 나와요. 그 인물들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했는가. 이번 책은 사랑을 소재로 인물들의 내면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사랑이란 게 개인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르잖아요.
―우와, 작가님! 딱 제가 생각하던 책이에요! 작가님, 근데 이 원고에 이 제목은 어떤가요? 제가 어울리는 원고가 있으면 붙이려고 꿍쳐둔 제목이 하나 있는데…...
그러고 며칠 후엔가, 작가님에게 카톡이 왔다. “그 제목, 생각할수록 좋아요. 그 제목에 걸맞도록 소녀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그렇게 원고를 받기로 했다. 정아은 작가님이랑 나는 차로 10분 20분 거리에 사는 이웃사촌이어서 계약하는 날 내가 작가님을 모시러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원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작가님을 차에 태우고 신이 나서 카페로 향하는데…...
―어, 작가님, 대박…... 저 뭐 잊어버린 거 있어요.
―뭐요?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뭐 안 가지고 나오셨어요?
―으하하하하. 저 계약서 안 가지고 나왔어요! 도장까지 찍어서 보이는 자리에 잘 놔두었는데…...!
작가님과 나는 그렇게 카페에서 근사한 파스타와 샐러드, 커피까지 해치우고 원고에 관해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눈 뒤 우리 집으로 향했다. 나는 작가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짓거리를 프라이팬으로 가능한 안 보이게 덮고, 널린 옷가지들을 옷장에 쑤셔 넣고, 눈에 띄는 대로 고양이 털뭉치를 치운 뒤, 작가님을 집 안으로 모시었다. 책상 위 프린터 옆에 계약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정아은 작가님과의 계약은 이렇게 성사되었다. 이 원고는 마름모 출판사의 첫 책이 된다. 제목하여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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