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아이들

산을 오르는 아이들_주말에 뭐 하세요?_윤경

08 경주 남산 삼릉 금오봉 코스

2024.07.24 | 조회 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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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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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소리를 질러가며 날다람쥐처럼 산길을 단숨에 내달렸다. 이렇게 아이처럼 시원하게 소리를 내질러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뒤에서 아이들도 질세라 꺄르르 웃어대며 나를 앞질러 갔다. 이번에는 아이들 2명이 아니라 4명으로 늘었다. 더운 공기 중에 흙 먼지 날리도록 달음박질로 내려가서 그 반동의 힘으로 다시 오르는 산길은 거꾸로 뒤집힌 무지개 놀이 기구를 타는 것만 같았다. 신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숲에 마법을 부린다. 뜨거운 팔월의 열기를 기세 넘치는 초록 에너지가 받쳐 들고 있었다. 울창한 숲이란 우산을 쓰고 우리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또래 친구 엄마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도대체 주말에 아이들하고 어디서 뭐 하고 노는지 물어보길래, 우리는 산을 오른다고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함께 산에 오게 된거다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만나던 친구들을 밖에서 같이 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거나 같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어린이집 외에서 함께 노는 일이 점점 어려운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집 밖을 나가면 친구는 어디에나 있었고, 함께 마을을 쏘다니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네 들렀다가 밥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가 누렸던 어린 시절의 소소한 일상이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또래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니 마음에 맞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더군다나 이 무더운 여름날에 함께 산까지 오르겠다니,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산을 가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삼릉으로 장소를 정했다. 아이 넷, 어른 넷이 오르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금오봉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숲속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탐험을 나서면 나는 금새 마음이 들뜬다. 이끼 사이에 살고 있는 작은 요정들이 무슨 일인지 구경을 나올 것만 같다. 물기 가득 머금고 있는 산은 땅이 심호흡하는 떨림이 온전히 느껴지는 원시적인 향기를 낸다. 축축한 나무 사이에서 우릴 기다렸다는 듯 작고 귀여운 버섯들이 아기자기 솟아나 있었다. 내가 이끼만큼 좋아하는 친구들이 바로 이 버섯들이다. 이끼가 헐벗은 땅을 치유하는 반창고 역할을 한다면, 버섯은 숲속의 청소부라고 부를 수 있겠다. 버섯은 죽은 나무나 동물의 똥, 떨어진 나뭇잎을 비롯한 여러 유기물질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만들며 생태계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촉촉한 숲에 들어왔을 때면, 아이들과 두 눈을 반짝이며 숲속의 청소부와 인사 나누는 일을 잊지 않는다. 밤새 비바람이 많이 쳤는지 사슴뿔같이 생긴 나뭇가지도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도 어느새 멋진 뿔을 달고 숲을 내달리는 사슴이 된다. 재빠르게 달리다가 커다란 고래 등 같은 바위 위로 올라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인어공주가 된다. 잎사귀들이 만들어준 커튼 장식이 드리운 바위 무대 뒤로 흐르는 계곡물 연주가 압권이다. 삼릉에서 금오봉까지는 2.35Km로 어른 걸음으로 1시간이면 도착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무대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불교 문화재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 아이들 노는 모습에 마음이 빼앗겨서 마애관음보살상도 뒤로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놀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은 한창 에너지가 충만하다. 여섯 살, 일곱 살, 네 살 그 뻗어 넘치는 에너지를 푸릇푸릇한 산은 고스란히 다 받아냈다. 때 마침 사람도 거의 없던 터라, 놀이동산을 통체로 빌린 것처럼 마음껏 놀 수 있었다. 처음 아이들과 산을 오르는 다른 엄마들도 초반의 걱정 어린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산속에서 잘 노는 모습을 보며 안심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자연에 잘 어울려 논다는 걸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매번 오르던 익숙한 장소인데 함께 오르는 사람에 따라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내가 알던 길이 아니라 처음 가는 길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이들도 산행길이 힘든 오름의 연속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만해져 있었다. 조금 지칠 수 있는 구간도 함께 오르자 이겨내는 힘도 커졌다. 혼자서 하던 육아에서 공동육아로 변하는 순간을 맛보았다. 역시 혼자보다 같이 하니까 그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부담도 덜했다.

 

앞으로 100 걸음만 더 걸으면 금오봉이 코앞인데, 아이들은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바위에 걸터앉아 경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집에 사는 아이들이 널찍한 바둑바위 위에 쪼르륵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가족이 늘어난 것 같았다. 누구네 아이 할 것 없이 다 예뻐 보였다. 아이들이 늘어난 만큼 산을 오르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 반면 아이들은 늘어났는데 돌봄의 강도는 오히려 줄어든 느낌도 받았다. 육아의 힘듦은 나누면 나눌수록 가벼워지나 보다.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결국 금오봉까지 가지 않고 내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이 친구들과 산을 오르는 날이 계속 생기지 않을까, 그러다가 언젠가 금오봉에도 가는 날이 오겠거니 한다. 육아와 살림이라는 돌봄 노동을 하는 동지가 내게도 드디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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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경

생태적인 삶과 자연농 농부로 사는 게 꿈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다운 삶을 살려고 합니다.

여덟  여자아이, 여섯  남자아이, 남편과 시골에서 살림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yoonirise

yoon.vertclai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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