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뜰에 길고양이 몇 마리가 밥을 먹으러 온다. 그중에 '다빈치'라고 부르는 삼색 고양이가 이번에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민들레 홀씨 사이로 보송한 털옷을 입은 아기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며 엄마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런데 정작 어미 고양이 다빈치는 아기 고양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엉겨 붙어 젖을 물려고 하자 날카롭게 울어대며 피해 다녔다. 높은 곳에 올라가 힘없이 피곤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영 안되어 보여서, 멸치 몇 개를 사료 위에 올려두었더니, 급하게 먹고 다시 졸기 시작했다. 야생 길고양이 엄마에게도 육아가 그다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아이들이 엄마, 아빠만 쉴 새 없이 불러대던 시절이 겨우 지나갔다. 그 시절 우리는 갓바위를 올랐다. 평소에 주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가닥으로, 다른 산도 한번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출발했던 것 같다. 경산이라면 경주에서도 얼마 멀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떠났다. 오르는 코스를 미리 찾아봤더라면 쉽사리 도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기 때문에 겁 없이 아이를 낳고 사는 것처럼, 몰라서 갈 수 있었던 산이다. 그러니까 갓바위 '앞길 코스'는 특별히 각오가 필요한 산이었던 것이다.
남편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으리라. 넓은 주차장을 지나 등산로 입구 주변에는 어묵, 떡볶이 같은 분식을 파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서서 먹고 있었다. 평소에 다니던 산에선 못 보던 풍경이 펼쳐지자 남편은 신난 얼굴로 태평하게 아이들과 어묵부터 사 먹기 시작했다. 아니, 오르기 전부터 먹는 게 어딨냐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막상 나도 한 입 먹어 보니 그냥 지나치긴 아쉬울 것 같았다. 구운 밤까지 한 봉지 사들고 우리는 어슬렁 산으로 들어갔다.
칠월의 더운 여름, 시원한 계곡 소리에 들뜬 아이들은 신발부터 벗어던지고 맨발로 마구 뛰어 올라갔다. 아기 고양이들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거리는 아이들은 마침내 이끼 양탄자가 깔린 바위를 찾아내어 한참을 뒹굴고 있었다. 이끼 바위라니, 모른척 할 수 없는 구간이긴 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은 풀이라는 이끼는 어떤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구절을 언젠가 책에서 보고는 이끼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이끼 주변에서 놀고 싶은 이유는 많지만 모처럼 멀리까지 왔으니 이쯤에서 우리는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빛나는 풍뎅이도 만났다. 오르다 보니 관암사도 나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돌계단이 펼쳐졌다.
갓바위까지 오르는 돌계단이 무려 1365개란다. 계단 따라 돌로 된 가로등이 이어졌는데 밤에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가로등마다 열두 띠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작은 아이는 그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계단을 올랐다. 스스로 걷겠다고 안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시간은 배로 걸렸다. 생각지도 못한 계단만 줄기차게 나오자 우리는 간식을 먹으며 이쯤에서 돌아갈까 망설였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으니 쉬엄쉬엄 올라가 보자고 각오를 다졌다. 다 오르면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계단은 점점 더 경사가 급해졌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다 포기 하고 싶었다. 계단 난간을 꼭 잡고 붙어 서서 더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마치 거대한 산허리에 매달려 있는 매미가 된 것 같았다. 산꼭대기에 사는 독수리가 우리를 정상까지 물어다 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와중에 아이들은 팔팔했다. "아이고, 여기가 어디라고 이뻐라..."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우릴 보고 아이들을 반기며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중에 한 아주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고 다가와 아이들 손에 만 원씩을 쥐여 주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해 했다. 서둘러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도리어 아주머니가 여기서 이렇게 아이들을 보는 게 감동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큰돈을 줘도 되나 싶어 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어릴 때나 간혹 있었던 문화 같기도 하고, 정말이지 그게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한 걸음 더 오르자 갑자기 눈물이 더 핑 돌았다. 몹시나 가파르고 가팔라서 마음을 한번 놓치고 넘어지면 끝장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덧 만난 사원에 거대한 호랑이 그림이 있었다. 작은 아이는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 게 퍽이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힘들다고 목마를 해달라는 아이가 다시 기운을 차렸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보고 대견해하며, 이제 갓바위에 거의 다 왔다고 했다. 도무지 멈출 수 없는 길을 따라 오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다달았다. 부처님 머리 위에 판석이 놓여 있어 갓바위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라고 한다. 힘들어서 기도가 절로 나오는 산행이었다. 정상에 동굴처럼 생긴 큰 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그 옆에 아이들도 따라서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가족들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산을 오르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힘들 걸 알면서도 계속 오르는 이유 말이다.
오르는 정성을 들여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케이블카로 올라가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신성한 마음 같은 것이다.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내딛는 걸음마다 온 정성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래서 갓바위가 가장 영험한 장소로 알려진 게 아닐까 싶었다. 오르는 동안 덧없는 소원들은 날아가고, 소박한 소원만 남는 게 아닐까. 나야말로 아이들이 여기까지 올라와 주다니 고맙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관봉 정상 발아래 팔공산의 장대한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유로운 이 거리감을 아이들과 즐겼다. “모든 게 다 작게 보여!" 하고 아이들이 외쳤다. 콩알만한 마음이 조금 커진 것만 같았다. 일상에만 매몰되지 않고 살게 하는 초월적 시선을 얻는 기분이었다.
선뜻 아이들에게 돈을 주었던 아주머니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었다. 오를 때의 마음과 내려갈 때의 마음이 달라진다. 누군가를 향하는 시선과 마음이 보다 여유로워지고 따뜻한 감정도 생기는 거다. 힘겹게 산을 오르는 우리를 보고 언젠가 지나온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딘가 힘 빠지고 해쓱해진 엄마의 모습으로 뒤뜰에 나타난 고양이 다빈치를 보면, 나도 그 시절 엄마 마음이 되고 만다. "조금만 더 힘내" 라고 말해주고 싶어 진다. 강자만 살아남는 야생의 삶 속에서도 모든 아기들을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고 싶은 것이다. 육아는 누구에게라도 참 버겁다. 갓바위를 오르고 난 뒤 우리는 조금 더 말랑해지고 강해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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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경
생태적인 삶과 자연농 농부로 사는 게 꿈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다운 삶을 살려고 합니다.
여덟 살 여자아이, 여섯 살 남자아이, 남편과 시골에서 살림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yooni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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