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오후 5시,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에서 내려오는 시간이다.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우리 집까지 어린이집은 물론 학원 차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늘 직접 등하원을 하고 있다.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매일 어린이집을 등하원하며 어느새 우리들에게 익숙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노을에 잠긴 강을 건넌다. 백로가 느긋하게 산책하고 있는 황금색 논길을 스쳐 지나며 백미러로 아이들 얼굴을 살필 때면, 이대로 고즈넉한 시간 속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한 태권도 학원을 소개받았다. 학원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니까 한번 해보기로 했다. 또래 어린아이들이 없고, 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에서 살다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게 되자 마치 읍내 중심부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카페 안에서도 학부모들이 모여서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누는 게 들려왔다. 태권도 학원을 시작했으니 공부에 관해서는 아니지만, 나도 나름 사교육 장에 발을 들인 셈이다.
카페에서 아이들을 맞이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태권도복까지 입은 모습으로 만나게 되자,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그 반가움은 낯설고도 신선했다. 우리는 서둘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건물 밖 주차장으로 나오자마자 어떤 여자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 여자와 내가 눈이 딱 마주쳤을 때 순간 발이 멈추고 말았다. 이곳을 지나가야 우리 차까지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덜커덕 차 문이 열리자, 그 여자가 소리치며 화내고 있었던 상대는 다름 아닌 카시트에 앉아 있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세 네 살쯤 되었으려나. 그 여자는 뒤돌아 앞좌석으로 가더니 또 한 번 문을 벌컥 열었다. 그 틈을 타서 우리는 3인 1조가 되어 잽싸게 차까지 달려왔다. 멀리서 보니 아이 한 명이 더 있었다. 아까보다 더 어린 아기를 안으며 뒷좌석의 아이에게 계속해서 쏘아붙이고 있었다. 화가 안 풀리는 모양이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우울해졌다. 집으로 달리는 동안 그 엄마, 어떡하면 좋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영혼을 놓친 표정을 짓는다는 걸 꽤나 오랜만에 보았다. 그 엄마가 죽을 듯이 화를 내고 있었지만 실은 힘들어 보였다. 마치 어디다 감정을 호소할 길이 없어서 퓨즈가 나간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분노에 차 있는 그 얼굴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얼굴, 언젠가 나 또한 그런 얼굴로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았을까 싶어서 화들짝 놀랬다. 어떤 경우라도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화를 내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어진 귀갓길은 검푸르게 변한 하늘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육아의 행복한 시간만큼 고통의 시간도 함께 존재한다. 엄마로 살다 보면 아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되고, 밑바닥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의 한계를 맛보며 한 생명을 돌본다는 일이 무겁고 어렵게 느껴져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며 우리들만의 특별한 하루를 건져 올리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나 자신과의 겨루기에서 나도 꽤나 실패하는 엄마들 중에 하나이다. 남자아이를 키우면 목청이 커진다는 말도 점점 실감하게 되었다.
마음이 좁아져서 감정을 다 견디질 못하고 터질 것 같을 때면 어딘가 도망가고 싶어진다. 마음의 환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가을이 오면 온 마음을 씻어줄 바람 샤워가 간절해진다. 바람이 흔들어대는 나무 소리는 엉클어진 마음을 빗질해준다. 쉬는 날이면 우린 아이들과 산에 오른다. 가을을 통과하고 있는 여름의 숲이 모습을 바꾸느라 분주하게 몸을 털며 숨을 내쉰다. 무엇이든 재촉하게 되는 시간에서 벗어나 있다. 나는 너무 쉽게 상처받고 그만큼 쉽게 회복된다. 내 영혼이 상하게 되는 일들 중 가장 타격감이 큰 건 바로 성내는 일이다. 그걸 목격하는 일도 견디기 힘들다.
가팔라서 힘이 부치던 팔공산을 다시는 오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산 뒷면으로 오르게 되었다. 그전에 올랐던 앞면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때 나는 소용돌이치는 바람 속에 있었다. 강렬했던 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영혼을 부추겼다. 아이들을 위해서 온 것만 같은 산행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 되고 만다. 몸이 더워지고 눈이 맑아짐을 느낀다. 그동안 모니터를 많이 봐서인지 눈이 몹시 건조했었다. 코도 맹맹했는데 점점 호흡이 고르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달궈진 가슴에 닿을 때, 비로소 가을의 신비가 들어올 수 있는 마음 상태로 서서히 변해감을 느꼈다. 내가 더 나 다워지려고 납땜질하던 뜨거웠던 여름날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쓰라렸던 마음 위로 낙엽이 어느새 내려앉았다.
일상에서도 내 영혼을 어루만진다는 느낌으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들을 향해서 성내고 나면 내 영혼이 상한다는 감각을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산을 오르지만, 꼭 산이 아니어도 좋다. 카페에서의 수다, 가벼운 산책, 길지 않은 시, 다른 무엇이 되어도 괜찮다. 화가 단단히 났을 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수 있어도 좋겠다. 달달한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을 풀 수 있다면 좋겠다. 실수했다면, 아이에게 곧장 사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들과 마음대로 잘 안되면 차라리 엉엉 울어도 좋겠다. 두 아이를 키우는 막중한 일을 하고 있는 그 여자가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말이 다 통하지 않는 아이들도 자신과 영혼을 나누는 사이라는 걸 잊지 않고 살면 좋겠다.
"네 영혼도 크기만 작을 뿐이지 거대한 신의 영혼과 같단다." 라고 어디서 읽은 구절이 마음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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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경
생태적인 삶과 자연농 농부로 사는 게 꿈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다운 삶을 살려고 합니다.
여덟 살 여자아이, 여섯 살 남자아이, 남편과 시골에서 살림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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