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통역직 제안을 뒤로하고 시작한 2023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에서 전기차 베터리라는 국가 핵심 기술 IT 분야 분야에서 개발자들을 서포트하며 일하던 2022년 말. 3개월 가량의 미국 출장 제안을 받았다. 고민에 고민이 이어진 며칠을 보낸 후 미국에 가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곳에서 경험을 쌓고 오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주위의 애정어린 응원들을 뒤로 한 채. 짧은 고민이 끝난 뒤에는 급하게 먹는 바람에 가슴팍에 얹혔던 고구마가 내려간 것 처럼 속이, 마음이, 머리가 편안해졌다. 2023년을 코앞에 두고 출근할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내 마음의 가장 확실한 목소리는 잠깐이라도 쉬고싶다는 것이었다.
불안정한 만큼 자유롭다. 주로 계약직으로 일하는 통번역직의 달콤 쌉쌀한 매력 아니겠는가. 두달 전 쯤 코로나를 앓고 나서는 머리에 안개가 낀듯하고 피로감이 지속되는 브레인 포그(Brain fog)증상이 지속되었다. 그외에도 미국에 굳이 가고 싶지 않은 이유들을 계속 찾고 있었다.
미국이 끌리지 않았던 이유
아마도 몇 년 전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미국 현지에서 통역번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은 그야말로 경험 해보지 못한 흥미로운 세상을 향한 기회이자 현재를 벗어날 탈출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세상이 더욱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한국에서도 이미 충분히 오히려 이전보다 더 넓은 환경을 경험하고 있었다. 오히려 미국에 가서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 살면서 개인공간과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은 잠깐만 생각해도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퇴근 후 다양한 활동을 하며 또 다른 세상을 세워가고 있던 나에게 처음보는 회사사람들과 함께해야하는 미국에서의 생활이 탈출구이기보다는 24시간 단체생활의 훈련일지도 모른다. 건강이 안 좋아지신 부모님이 마음에 크게 걸렸다.
결론적으로는 잘한 결정이었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핸드폰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붙이고, 사무실을 나올 때면 공항 검색대에서와 비슷하게 가방을 스크리닝하고 양손을 들고, 아무 잘못도 안했지만 주눅들게 만드는 검색 봉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만큼 컸다. 그리고 작은 나의 공간에서 , 아니 어느 공간에서라도, 더 넓게, 숨쉬기 조차 힘든 출퇴근 시간에서도 탈출한 채 일할 수 있었다.
Connecting the dots ; 상관없을 것 같은 것들이 연결되어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의 수많은 명언 중 하나이다
2023년의 시작,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잠시 통역과 번역의 틀에 있는 일들은 제쳐 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ChatGPT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통번역직은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아야했다. 나의 일을 잘 지탱하려면. AI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여 공부하며 두려울 정도로 사람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듯한 LLM 생성형 AI, 새로운 세상의 움직임을 놓지지 않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창업가들과 새로운 움직임에 기회를 불어 넣기를 마다하지 않는 투자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 물론 나는 번역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해 보며 입이 떡 벌어지게 감탄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인간의 손, 인지, 모르는것을 아는 능력은 꼭 필요하구나. 완전히 대체될 수는 없겠구나' 안심하며 매일 새로운 것이 나오는 듯한 AI의 변화 속도에도 익숙해졌다.
그러던 중 코로나 기간에 흥미롭게 이끌려 공부했던 웹3 분야의 일이 나를 찾아왔다. 전혀 관련도 없는 분야인 블록체인관련 기술을 왜그렇게 머리를 쥐어 짜며 이해하려고 했는지, 퇴근 후 왜그리 달려갔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 시간들이, 막연하기만 했던 학습들이, 스티브 잡스의 명언처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이전 담당자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 미흡한 번역으로 이어졌고, 한창 분주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알게된 나의 번역을 긍정적으로 봐줬던 지인이 나를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이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파란눈의 매니저와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와도 같은 프리랜서 생활
글로벌 기업에 소속한 듯 소속하지 않은 듯 일원으로 일한 다는 것은 이전에 정의되지 않은 새로운 근무 형태이다. 대량의 프로젝트가 마무리 된 뒤로는 24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의 일을 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나는 다른 오프라인, 온라인 통번역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정복하고싶은, 꼭 도달하고 싶은 분야를 만나게 되었다.
벤처캐피털 회사의 벤처캐피털리스트(Venture Capitalist)를 통역하고 번역하면서 아무리 가라앉히려고 해도 가라앉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열정의 마음이 치솟았다. 누구나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유튜브, 소비의 양태를 바꾸어 버린 쿠팡, 일상으로 스며든 중고 거래 앱인 당근 모두 그저 핸드폰 속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었을 때, 세상과 사람들의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수혈과도 같은 투자를 하는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뒤에서 묵묵하고 치열하게 지지하고 이끄는 이들이었다.
그들 사이의 통역은 서로의 저의를 숨긴 채 상대를 알아 가는 중에서도 자신을 뽐내기 위한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던, 지금까지 했던 통역과는 다른 흥미로운 검객들의 칼싸움 같았는다. 통역을 준비하고 자료를 번역하며 기꺼히 감내할 리스크를 찾아가는 그들의 진중한 여정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VC를 위한 통역을 찾아 하고 그 길에 가까워지기로 결심했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을 가지 않고 Harvard Business School 온라인 과정을 수료하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나면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편이다. 벤처캐피털에 관한 공부를 할 수 있고, 나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영어를 활용할 수 있고,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과정을 찾기 시작했다. Harvard Business School의 온라인 과정에 Venture Capital이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는 대체 투자(Alternative Investment)있었다. 5주 과정이었기에 할만하다 생각했고 기준에 부합하면 수료증을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관련 지식은 하나도 없는 내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도절 할 수 있을지, 나의 시간과 돈이 허공으로 흩날리는 것은 아닐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일단 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하고싶고 할 수 있는 도전은 그것 뿐이었다. 아니그 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드디어 첫번 째주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런, 수 많은 주관식 퀴즈가 있었다. 퀴즈라 하면, 주어진 학습 내용 속에서 출제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교수님의 설명, 전문가가 공유하는 케이스 뒤로 이어지는 퀴즈는 앞의 설명과는 완전히, 무정할 정도로 관련이 없었다. "응?" 도저히 답을 알 수도 없을 것만 같았고, 이 과정을 통과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는 너무 망막해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망막했다. 게다가 내가 작성하는 모든 답들은 함께 과정을 수료하는 전 세계 동기들이 전부 다 볼 수 있도록 공개된다. 이를 어쩐다. 200만 원이 넘은 비용은 이제 환불할 수 없었고, 이 과정을 하기로 했다고 호기롭게 선언한 가족과 지인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걱정하며 컴퓨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기 일쑤였다. 포기하고 싶었다. 왜 가당치도 않는 욕심을 내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다시는 객기부리지 않겠다며 한참동안 분을 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야지. 해 내야지.
분명히 하루 2시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단 과정 소개는 관련 지식이 없었던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기본 지식을 찾아 검색하고, 이해하고, 주관식 문제의 답을 작성하며 꼬박 평균 하루 5~6시간은 소요해야 했다. 퀴즈 하나하나를 풀 때마다 위험 정보가 전혀 없는 산을 넘고 또 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80점을 넘어야 두번 째 주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 한 챕터의 마지막 퀴즈를 풀어야 했다. 다행힌 것은 80점이 안되면 다시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장 두려운 계산 문제는 찍다 시피 풀어내고, 그나마 객관식이어 다행이다 안도하고 쉬운 문제들에 감사하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도전할 마음으로 채점 버튼을 눌렀다. 아니 근데 정말 기적처럼 100이란 숫자가 튀어 올랐다. 정말로 믿기지가 않았다. 2023년의 기적이라면 이것이었다. 도파민이 온 혈관으로 다 퍼지는 듯 했다. (그 이후 마무리 퀴즈에서 처음에 100점을 맞은 적은 없다) 이뿐이 아니었다. 나의 답변에 창의적이고 좋은 의견이고 나도 동의한다는 동기의 댓글은 잔뜩 주늑들었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또 한번의 도전이 마무리 되었다.
어떤 점들이 연결될 지 모르는 2024
Harvard Business School 온라인 과정을 수료하는 늦가을 겨울 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있었던 헤드헌터의 인하우스 통번역직 제안을 후회없이 거절했다. 큰 회사에 속해서 일하는 동안 비록 계약직 직군이지만 큰 회사 소속이라는 스펙, 안정적인 월급, 주위 사람들의 인정안에 살 수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다시 회사 안으로 들어가 출퇴근 하며 일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밖에서 외부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기회와 성장을 찾을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일과 나를 찾아오는 일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무의미할 것 같은 활동들이 자유로운 글로벌 회사로 연결 해주고 하고 싶은 프리랜서 통번역일을 확장 시켜주고 전혀 다른 기회들을 찾을 수 있는 시야를 주었다. 그래서 2024년에도 계속 마주하는 순간의 경험과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점들을 찍어 갈 것이다. 2023년의 점들과 만나 어떤 선들이 이어질지 기대하면서. 물론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영어가 있다. 통번역도 그래서 할 수 있었고, 전공과 무관했지만 감히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한 과정의 물고도 틀 수 있었다. 어떻게 선을 그려나갈지 모르는 Allie의 이야기는 올해도 그렇게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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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순수국내파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출간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세상과 세상, 언어와 언어사이의 소통을 도우며 살아갑니다. 전세계와 소통하며 그로인해 확장된 경험을, 국내파로서 영어교육과 학습에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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