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의 순간이 있다. 이 선택 하나로 내 인생이 달라질 거 같고,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미래가 바뀔 거 같은 무시무시한 무게를 가진 선택의 순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에 선뜻 어느 쪽으로든 발을 내딛기 어렵다. 그 무거운 선택 앞에 망설이게 되는 순간은 삶에서 거듭 찾아온다.
우울한 사람은 선택을 더 어렵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우유부단함은 우울증의 진단기준이 될 정도로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이다.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와 같은 사소한 결정도 한참을 머뭇거리고 혼자 결정 내릴 수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더 괴로워지곤 하며, 심할 때는 결정을 내리고픈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우울증에서 회복되면서 차츰 나아지곤 한다.
한편 성격적으로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강박적이거나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실수를 저지르거나 실패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애를 먹는다.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려하고 각각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분석한다. 문제는 그 대안들이 모두 똑같이 중요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떤 결정을 해도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셈이니 후회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결정을 피하거나 아무렇게나 결정해버리기도 한다.
나는 결정에서만큼은 강박적인 성향이 있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면 먼지 한 톨까지 쓸어 담듯 정보를 긁어모으고 내가 놓친 옵션이 있진 않은지 살폈다. 그 마음은 더 나은 선택을 해보겠다는 열정이기보다는 그 선택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강박적 성향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이 치명적인 파장을 가져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결정을 내리기 무서워한다. 특히 선택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는 습관 때문에 결정은 때로 공포스러운 일이 된다.
사실 우리는 누구에게나 결정이 힘겨운 시대에 살고 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결정은 어려운 일이 되는데, 우리는 일상에서 선택지가 거의 무한에 가까워 보이는 선택을 자주 마주한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맥주 하나를 고르는 문제만 하더라도 끝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상품과 할인 행사와 같은 가격 조건을 따지다 보면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된다. 특히 장기적 미래가 걸린 일인 경우 그 무게는 더 하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전공 선택부터 수강 과목, 인턴십과 같은 결정에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자칫하면 한순간에 사회경제적 신분이 바뀌게 되기도 하고 다시 돌이키는데도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불안을 떠안고 있으니 결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몇 년간 해외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남편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문제는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에 곧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퇴사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 남을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주변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갈대처럼 이쪽으로 누웠다 또 저쪽으로 누웠다. 내 안에 있는 두 마음 중 누구라도 한 쪽의 편을 들면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아졌다. 한국에서의 적응을 우려하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에서 더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가도 아이들 교육이나 내 커리어를 걱정하는 친구를 만나면 얼른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확신이 없으니 작은 바람에도 세차게 흔들렸다.
이미 여러 번 의사결정 비교 작업지(decisional balance sheet)를 썼다가 지웠다. 이 작업지는 각 선택지마다의 장점과 단점을 표로 기록해서 비교해 보는 기법이다. 상담에서 내담자의 의사결정을 도울 때 쓰이기도 하는데, 보다 선명하게 선택지의 결과를 예상해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장단점을 쭉 써내려놓고 보니 각 항목마다 중요도가 달라 균형을 맞춰 비교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 문제에 틀리면 안 된다는 부담이 더해지니 더욱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몇 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래서 결정했어?”라고 친구는 물었다. “아직”이라는 내 답에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물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반반이야.” 그랬더니 친구가 그런 답은 있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니, 넌 어떻게 하고 싶냐니까?” 하고 재차 물었다. 그제야 내 답이 좀 우스운 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반반이라니.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을 텐데 그 답을 못 찾아서 반반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어코 어느 쪽으로도 답을 하기 힘들었던 나는 “아이는 돌아가고 싶어 하고, 남편은 있고 싶어 해. 그래서 반반이야”라는 더 어리석은 답을 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아니 넌 어떻게 하고 싶냐고?”라고 재차 물었다. 그때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말이다.
‘내 마음이 무엇일까’. 그 지극히 기초적인 질문 앞에 부딪혔다. 가족들, 회사,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 말고, ‘엄마라면 아이의 인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거나 ‘노후를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 같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인지치료에서 선택을 돕는 방법 중에 '동전을 던져서 선택하기' 가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고민하고 있는 결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자고 말한다. 상담자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A를 하기로 하고, 뒷면이 나오면 B를 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상담자는 동전을 던지고 내담자에게 동전을 보여주기 전에 묻는다. "어떤 쪽이 나왔으면 좋겠나요?" 그때 다급하게 답하는 내담자의 대답이 그의 마음을 가리킨다. 이는 내담자가 미래의 불확실한 가능성들을 비교하느라 선뜻 그쪽으로 마음을 쏟지 못하고 있었을 뿐,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그 답을 품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른 생각들에 가려져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동전의 어느 면을 기대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묻자, 조금 갈피가 잡히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을 찾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마음을 잘 모르겠을 때 글을 쓰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생각이 정리되곤 했다. 아침마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꾸준히 적었다. 어떤 날은 마음이 이 방향, 어떤 날은 저쪽을 향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생각이 점점 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여러 현실적 제약, 미래에 대한 불안을 뚫고 내려가니 내 마음이 보였다. ‘나는 여기에 있고 싶구나’. 그 마음을 알아주니 설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선택으로 삶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선택했다는 순전한 기쁨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욕구나 상황적 필요에 휘둘리지 않고 그 가운데에 있는 나라는 사람의 욕구를 발견했다는 기쁨이었다. 가장 옳은 길, 최고의 답을 선택했다는 자부심이 아니었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 답안지를 선택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었다.
내 마음에 확신의 물을 채울수록 상대의 반응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이 선택으로 주변 사람들이 떠안게 될 부담에 대한 미안함도, 이 선택을 두고 남들이 나를 탓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잘못된 선택이어서 후회하지 않을까 우려하던 마음도 차츰 가벼워졌다. 타인의 욕구와 만나는 지점을 찾기 위한 조율이나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또 어디는 괜찮은지 구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진로나 결혼, 이사, 직장 등 모든 선택을 100프로 확신을 갖고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결정이든 아쉬움과 후회가 남았다. 하지만 모든 선택지에는 명암이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선택이라는 문제의 정답이라는 것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후회스러웠던 선택도 후에 그 결정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경우가 많았고,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결정도 그 때문에 아쉬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서간집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에서 죽음을 앞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인생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 길 중 하나로 들어서는 것은 외길을 선택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길로 들어서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무수히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특정한 길로 들어서는 단계에 다시 여러 갈림길이 생겨나며, 갈림길마다 애초에 그 사람에게 있었던 인생의 온갖 가능성이 통째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선택은 또 다른 갈림길의 시작에 불과하다. 선택 그 이후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곤란함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했던 그 상황에서 또 마음을 돌아보고 그것에 따라 다음 선택을 해나가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선택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선택을 향한 여정 자체가 우리를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갈 수 있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나의 필요를 알아보고 나의 가치를 발견해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취나 인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여유, 가족, 성장, 친밀한 관계나 혼자만의 공간 중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더 분명해진다. 결국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지고 내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깝게 한 걸음 내딛게 된다.
만일 지난 결정이 후회가 된다면 그 결정을 내린 나를 탓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살피고 따랐던 내가 있었을 뿐이다. 미처 살피지 못했던 욕구를 알아봐 주고 이후의 선택에서 그 욕구를 좀 더 중요하게 고려해 주면 될 일이다. 나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끝없이 있을 테니 말이다.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란, 본래 시작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용 도서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2021).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김영현 역. 다다서재.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상담 블로그 https://blog.naver.com/hello_kirin
인스타그램 @kirin_here
페이스북 이지안 Facebook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