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카페는 오전에 조용하다. 한창 잘될 때는 점심 먹을 때까지 한 번도 못 앉는 날도 있었는데, 요즘은 책을 제법읽는다. 글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 진도가 쭉쭉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에 학습지처럼 쟁여놓았던 책들을 하나하나씩 완독하고 있다. 내부에서 돋아나는 어떤 상념으로 인해 문장이 서걱거릴 때까지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겨버린 요즘이다.
아무래도 외부적으로는 가까운 곳에 같은 시간에 오픈하는 카페가 새롭게 생겨서 그렇지 싶다. 또, 제법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규모가 큰 복층 구조의 카페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가보지 않았지만, SNS를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제한된 공간은 물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부적으로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 의자가 불편해서 그런가, 아니면 사이드 메뉴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요즘 표정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고민이 밖을 향하게 되면 한없이 뻗어가는데, 그렇기 때문에 카페에서는 휴대폰을 흑백모드로 해놓는다. 그러면 SNS를통해서 염탐하는 세상이 크레마가 사라진 에스프레소처럼 보인다. 해서, 그 세상은 덜 빛나고 내가 앉아있는 이 오래된 공간이 덜 초라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애처로운 자기만족이긴 하지만, 덕분에 차분해질 수 있음으로 그렇게 한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 오후까지 이어지면, 마음을 비우고자, 직원들과 교대로 스텝실에서 쉬기도 한다. 스텝실에는 접이식침대가 있어서 잠깐씩 몸을 뉘 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 안에도 의자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쉬는 것과 있는 곳에서 쉬는 것은 꽤 차이가 난다. 허리 부분이 꺼져있고 베개는 없지만, 누우면 제법 편안한 느낌이 든다.
나는 낮은 천장 아래에 신발을 벗고 눕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발가락 끝부터 천천히 이완되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꼴이조금 우습긴 하지만, 내가 여기서 벗어나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카페 안에서 작게 들리는음악 소리에 몸을 맡기고 한 이십 분 즈음 눈을 감고 있는다. 어떤 날은 그렇게 잠이 들이 드는데, 순간적으로 차단기가 내려가는 것처럼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짧게 자고 쉬는 시간이 지났다는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 몸이 개운해지고 기분이 거기에 맞춰진 듯 괜찮아진다.
이렇게 내 마음을 추스르지만, 직원들의 마음은 또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 시간의 쉬는시간을 주더라도 그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변변치 않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그들은 나보다 더 큰 불안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그런 걱정을 지우기가 어렵다. 매장이 바빠지면, 피곤하게 만드는것 같아 내가 미안하더니, 바쁘지 않으면 그들이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마음을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각자가 조금씩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월급으로 심플하게 맺어진 관계보다는 단단하지 싶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부부관계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돈을 잘 벌었기에 생각 없이 당당했던 시절에는, 아내와의 관계가 오히려 삐거덕거렸던 것 같기도하다. 밤늦게 들어가도 주말에 쉬지 않고 일을 하더라도 월급을 여유 있게 가져다주니까, 괜찮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봐야, 외식을 지금보다 자주 하고 쇼핑을 조금 더 여유 있게 하던 시절이었지만,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 정도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뻔뻔하게 돈만 열심히 벌던 사람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미안한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 일이 있었다. 어느 추운 새벽에 갑자기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다 지쳐서 그녀가 나에게 낯선 사람처럼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아이에게 왜 그렇게 대하느냐고 물었던 나의 말이 화근의 시작이었다.
아내는 산책하러 나간다고 달 없는 밤에 나갔고, 나는 불 꺼진 거실에 서서 오래도록 기다렸었다. 울고 있는 하나뿐인 아기가 그때 나에게 안겨 있었는지, 침대에 누워서 서럽게 울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숨을 쉬기에 공기가 탁하게 느껴졌다는 것, 집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던 감각만은 남아 있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경험한 것은 인생에서 손꼽히는 일이지 싶다. 그런 벌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바뀌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남들보다 덜 벌지만, 그래도이틀은 쉴 수 있는 남편이 되기 위해서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 더 쉬는 만큼 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있는 남편이자 사장이 되었다. 집안 경제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미안한 남편이고, 부재중이지만, 동일한커피 맛과 친절을 강조하기 때문에 미안한 사장이 되었다.
때문에 이런 비수기도 썩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다짐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허물어지기도 하지만, 반복된 다져짐은 나름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서로 주고받는 미안함이 적당히 다져져서 애틋함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면, 충실할 것이고 먹고 사는 것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그렇게 뻔뻔한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이 오면, 그렇게 핫플레이스가 있는데 여기를 이렇게 찾아와주셨군요. 이렇게 의자가 불편하고 삐거덕거리는데, 사이드 메뉴라고 정말 형편없는데, 그런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은 무엇이 있을까 고르고 고른다. 그렇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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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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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미
아침마다 메일로 잘 읽고 있습니다. 편안한 글 감사합니다. *다른 에디터분들도 같이 다 읽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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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콩
글이 참 좋아요 🙂 언젠가 카페에 들를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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