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직원을 교육할 때 늘 하는 두 가지 말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이 마신다고 생각하고 커피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말이다. 연애하는 사람이 직원으로 들어오면 이 커피를 연인이 마신다고 생각을 하라고 말하고,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아내가 마신다고 생각하고 만들어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들어왔을 때는 손님 중에 예수님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나친 요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나름의 인생을 걸고 카페를운영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과한 요구를 하는 편이다.
두 번째는 이 공간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듣기에 조금은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뭔가 서걱거리는 감각들을 최대한 오래도록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초반에 잔을 깨거나, 완성된 커피를 엎지르는 동작은 그감각을 더욱 일깨워주기 때문에 고무적인 일이라 여긴다. 다치지 않는다면, 잔이야 새로 사면 되는 일이고, 커피는 다시내리는 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딜레이가 발생한 손님에게 사과를 전하고 커피 몇 잔을 더 드리면 된다. 괜찮으니 걱정말고 이 공간의 낯선 느낌을 오래도록 유지해달라고 당부한다.
첫 번째 당부는 소명 의식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괜찮은 커피 한잔을 내리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 많고, 그것의 책임 또한 한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잔의 외부의 얼룩은 손님이 알아챌 수 있지만, 안쪽의 얼룩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고, 그룹 헤드와 포터 필터의 완벽한 청결도 외부에서는 도무지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도 카페는 타협의 여지가 많은 직종이다. 잔 받침, 스팀 피쳐, 스팀 행주, 바 스푼, 원두의 숙성 정도, 우유의 유통기한, 소스 노즐, 워머, 트레이의 뒷부분 등 바리스타만이 알 수 있고 관리해야만 하는 영역이 꽤 많은 편이다. 이런 부분에서 타협하게 된다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녹이 슨다고 해야 할까. 피곤하지는 않지만 어떤 구석에 그늘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돈은 벌지만, 영혼을 파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런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나름의 진정성을 구축한다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작은 자부심이 생길 것이고, 그 마음은 등속도 운동 상태를 유지하는 관성의 법칙처럼 일상 속에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잊을만하면, 계속 이야기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피곤한 사장이다. 해서, 미안하기 때문에 직원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설거지는 최대한 내가 하려고하고, 허리를 숙여서 푸는 얼음도 나의 몫이다. 착석도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지 조금은 떳떳해진다. 오는 손님도 우리의진정성을 대략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카페의 손님은 배가 부른 상태로 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본 욕구가 채워졌으므로, 감성적으로 민감한 편이다. 처음에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마냥 괜찮은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반복적으로 한 카페를 다니다 보면 대개 보이는 것이 있다. 반복적으로 들릴 수 있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작은 소명감은 필수라고 여겨진다.
손님들은 이 공간이 익숙해졌으면 하지만,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익숙하면 많은 행동이 습관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습관은 고정된 반응 양식이고 자의적이지 못하다. 작은 실책은 아무렇지 않게 쌓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카페는 진정성이 아니라 거짓성의 공간이 되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치고 빠지는 전략을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창업하고 오 년 차가 되면 가게를 넘겨버리고 권리금을 남긴 뒤 새로운 창업을 하는 세상의 공식이 있다. 나도 그런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여기를 넘기고, 새로운 길목에서 조금은 다른 풍경에서 카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고민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만큼 벌어도 어떻게든 먹고사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목록이 끝없이 갱신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접은 지 오래되었다.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가지 비법을 배웠다. 마음의 굳은살을 깎는 방법이다. 직원과 손님을 내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카페에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함께 머무는 한, 함께 행복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라포르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재진술 하게 된다. 더불어 고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려고 애를 쓴다. 매출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더 중요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몇 잔의 커피 거저 줄 수도 있고, 몇 권의 책을 선물로 줄 수도 있다. 급여도 최저 시급에 준하여서 주는 것이 아니라, 통장이 텅장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간 더 넣어서 챙길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실 성장, 발전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경영방식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무엇은 가능한데, 그 무엇인즉슨 삶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장 늦게 앉고, 설거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체력이 유지되는 한 삶은 유지되지않을까 싶다. 사실 이런 마인드는 사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런 당부를 잊을만하면 직원에게 상기시킨다. 했던 말을 또 한다. 그 이유는 카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 공간과 우리의 관계가 나쁜 버릇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의 반대 범주에 들어가지 싶다. 해서 나도 바 안에 들어서면 타성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중력에 저항하는 것처럼 일한다. 그렇게 작은 카페를 유지하고 있다.
*
‘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김희진
처음 마음, 처음 원칙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갈등이 많아지는 나와의 싸움이죠 저희는 그 덕분에 한결같은 커피맛과 분위기를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저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다짐하며 하루를 보내야지 생각하게 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