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상담을 요청한 H는 20대와 30대 시절 기자 생활을 했다. 서른 중반이 훌쩍 넘어 결혼을 했고,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아이가 여덟 살이 되었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을 물어 보니 남편도, 아이 문제도 아니다. 바로 본인의 앞으로의 삶에 관한 것이다. 40대 여성의 고민은 어쩌면 한 남편의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의 인생이 아닐 것이다. 40대는 바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된 때다.
“저는 앞으로 글을 써서 잘 될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 글이라 하면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을 텐데, 막연하게 ‘글’이라고만 한다. 글을 써서 잘 되는 건 뭘까.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세를 많이 받는 걸까. 아니면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고 등단을 하게 되는 것일까. 드라마 혹은 영화처럼 극을 위한 시나리오를 써서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들어나가는 걸까. 블로그나 SNS상에 쓰는 글로 팔로워가 많아지는 것도 글쓰기의 영역이다. 첫 질문이 글을 써서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인데 난해하긴 하다.
단정한 캐주얼 복장의 H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흰 피부와 여성스러운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과거 국문과를 졸업했고, 방송일이나 신문사 일을 하면서 글쓰는 직업을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직업인으로서 글을 쓰다가 결혼 후 경력단절이 된 상태다. 그녀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고액의 연봉을 받았던 때도 있었을 거다. 서울 소재의 명문대를 나오고,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최고 가장 잘 나간다고 생각했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 소속되어 내밀 명함도 없다. 아이 엄마로서의 삶에 조금은 익숙해졌겠으나 점점 초라해져만 가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타로 카드를 펼치고,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세 장의 카드를 고르라고 하였다. 보통 타로카드를 뽑을 때는 상담자가 세 장의 카드를 어떤 의미로 생각할지 마음에 결정을 한다. 이것을 ‘스프레드 법’이라고 보통 말한다. 세 장의 카드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어렴풋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제의 원인 (여황제)
현재 상황 및 대처방안 (검9)
미래의 결과(검4)
이렇게 뽑아든 3장의 카드는 보기에도 불안불안했다. 과거 그녀는 바로 여황제였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힘과 지혜를 발휘하였던 여황제. 풍부한 직관력을 이용하여 성취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검9번 카드는 여실히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인이 침상에 앉아 비탄에 빠진 모습이다. 벽에는 아홉 자루의 검이 걸려 있고, 흐느끼는 모습에서 이미 슬픔과 고통이 보여진다. 절망과 아픔이 느껴진다. 또한 공포감도 느끼고 있다. 과연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 같다. 뭔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듯한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세 번째 카드는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의 검4번 카드다. 기사가 누워서 휴식을 취하면서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는 형상이다. 검4번은 막막하고 오랜 기다림을 뜻한다. 생각보다 당장의 결과를 얻기는 힘들 듯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9번 칼보다 미래의 4 번 칼 카드는 낫게 보이기도 한다. 절망적인 심리 상태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다는 걸까. 조바심을 내려놓고 기다리라는 뜻 같다. 혹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는 아닐까.
지금은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지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글쓰는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조언해드렸다. 보상이나 성공도 멀어 보인다. 젊은 시절 글을 써서 빛났던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은 H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현실은 아닌 듯하다.
첫 질문이 막연해서인지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쓰길 원하는지 질문했다. 그랬더니 시나리오 혹은 소설이라고 한다. 사실 문학을 전공하면서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예전에는 컸다고 말한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일이다. 소설가로 등단할 수 있는 꿈을 꾸어볼 수 있으며, 출판을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의 분야를 생각하면서 두 장의 타로카드를 다시 뽑아보았다. 지금 상황의 불안함은 크지만 창작에 대한 열망이 타로카드의 그림으로 나타났다.
6번 컵과 펜타클 에이스 카드는 충만한 감정과 의외의 행운 같은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현실적인 만족감을 주는 결과도 있지 않을까. 다음과 같은 말로 조언을 덧붙였다.
“아이가 꽃이 든 컵을 건네고 있네요. 행복해 보이죠. 아마도 소설을 쓰면 더욱 몰입하여 즐겁게 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시절 글을 쓰면서 좋았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아마도 좋은 에너지가 생길 거에요. 그리고 결론적으로 에이스펜타클은 합격이나 당선을 뜻합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다는 뜻이에요. 구름 속에서 나온 손이 커다란 동전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뜻밖의 선물같은 거에요.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해낼 수 있으며, 즐겁게 결과도 얻어낼 수 있을 듯해요.”
이렇게 타로 카드를 읽어주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상담사의 역할이다. 물론 선택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결심을 하고 행동하는 것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기에.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소설 쓰는 건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지 않아도 되고, 그것이 허구와 판타지의 세계이니까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좀더 자유로운 글쓰기 같아요”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을 때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결과도 좋지 않을까. 올해 당장 승부가 날 수는 없지만 시도해 볼만하다. 오랜 기간의 경력단절로 인해 글을 쓰는 삶으로 단번에 바뀔 수는 없다. 그렇지만 소설을 쓰면서 글쓰기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소설을 쓰고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는 것으로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주인이 되는 삶. 바로 H는 타로카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교하고 분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막연한 질문은 막연한 대답을 낳는다. 결과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질문이 정교해질 때 훨씬 더 구체적인 대답을 얻는다. ‘글을 쓰면 잘 될 수 있을까요?’ 라는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소설을 쓰면 앞으로 어떨까요?’ 라는 질문이 훨씬 낫다. 이미 내담자는 스스로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아닐까. 이미 결정을 한 다음 타로상담을 받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상담자와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뽑은 타로카드를 통해 스스로 원하는 바를 구체화시키는 시간이 되었을지 모른다.
매일 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꿈을 꾼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가 곧 생(生)이라는 말을 했다. 무의식이 발현된 것이 꿈이라면 타로카드는 의식 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타로카드는 이미지를 해석하고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신화를 이루어 가는 하나의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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