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를 넘어가며 녹음이 깊어졌다. 카페 앞 가로수도, 산책로 주변에 웃자란 풀들도, 하천 넘어 보이는 나무들도 각자의절정을 자랑하는 듯 짙은 생명력을 폼내고 있다. 누가 누가 더 진정한 녹색인지 자랑을 하는 것 같다. 다소 눅눅한 공기와함께 그런 초록의 감각이 활짝 열린 테라스를 통해서 들어온다.
카페 안은 몇 개의 서큘레이터를 틀어도 한여름처럼 더워졌다. 제빙기, 냉동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열기 때문이다. 얼음을만드는 만큼 열기가 생기고, 냉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열을 뿜고, 머신에는 늘 뜨거운 물이 끓는 점을 향해가고 있음으로 히터만큼의 온기를 뿜어낸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고 싶기도 하지만, 아직 지역에서 코로나가 한창이라서 문을 닫는 것이 망설여진다. 손님에게 “에어컨을 틀어드릴까요?’” 하고 물어보지만, 대게 문을 닫는 것을 아직은 원하지 않는 눈치이다. 힘들지만, 문을 열고 영업하는 날이 많다. 주변 카페를 살펴보면 닫힌 매장은 닫혀 있어서 손님이 없고, 열린 매장은 열려 있어서 손님이 없다. 산책로에는 사람이 있지만, 거리의 카페들은 겨울철 비수기로 돌아간 듯 한산해진 편이다.
요즘은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커피를 내려 마신다. 언젠가는 올 손님을 위해서라도 내 기분을 조율해야 하고, 커피 맛을 일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글라인더를 오래도록 쉬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혼자서 커피를 내릴 때는 주로 바텀리스 포터필터를 이용한다. 바텀리스는 에스프레소를 모아주는 스카웃이 제거된 포터필터를 말한다. 바스켓 필터가 외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커피가 추출되는지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바쁜 상황에서는 사용이기에는 조금 조심스럽다. 청결 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잘못된 추출이 이루어질 경우 에스프레소가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튄다. 그럼에도 과정과 결과가 온전히 보이므로 커피 맛을 점검하기에 유용하다.
모든 과정에 실수가 없으면 드러난 필터에서 진한 고동색 에스프레소가 서서히 떨어진다. 무수하게 난 작은 구멍에서 고르게 에멀전 상태의 커피가 나오는 모습은 어떤 곡물의 기름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과정에 빈틈이 없으면젤리 같은 크레마를 포착할 수도 있다.
반면에 ‘물 흘리기’를 생략하거나, 도징에 실수가 있거나, 다져진 원두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그냥 뜨거운 물이 흘러나오는 구역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것은 담긴 원두 가루와 무관하게 삐져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터진 호수에서 삐져나오는 물처럼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튀기도 한다. 무신경했던 어떤 순간은 어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바텀리스를 손에 쥐고 있으면 어깨를 한 번쯤 털고, 심호흡을 하게 된다.
그렇게 혼자서 사부작거리면서 몇 잔의 커피를 마신다.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정해진 시각의 알람처럼 늘 와주는손님들이 있기 때문이지 싶다. 그들의 이름은 모르지만, 멀리서 걸어오는 실루엣만 보더라도 좋아하는 커피 취향을 알고있다.
꼭 샷을 추가한 라떼를 드시는, 시럽을 한번 반 넣어야 하는, 강아지의 물을 챙겨줘야 하는, 오래된 텀블러에 스팀으로 세척한 뒤 더치 커피를 진하게 받아 가는, 얼음 두 개 넣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계절과 무관하게, 시절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여닫는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것도 그런 분들 덕이지 싶다.
덕분에 작은 희망을 품고 카페의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테이블을 다시 닦고, 의자에 얼룩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음악을 바꿔보기도 하고, 리듬에 맞게 음량을 조절한다. 조금이나마, 쾌적할 수 있도록 선풍기를 이렇게 저렇게 틀어보기도 한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전구를 체크하거나, 거미줄이 있지는 않은지 살핀다. 살피면 어디든 부족한 점은 있고 해야 할 일은계속 생긴다.
단골들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곧 어쩔 수 없는 무더위가 찾아오고 어떤 사정과 관계없이 문을 닫고 영업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 시국이라 손님이 많아져도 걱정이다.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이 공간이 완벽하고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박한 위로가 되는 커피를 전하고 싶다. 그것이 입에 닿는 짧은 순간만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걱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조금씩 녹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여름 같은 초여름의 어느 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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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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