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연착됐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더니, 몇 분 뒤 탑승 게이트가 변경됐다는 방송이 연이어 나왔다. 36번 게이트에 길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은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읽던 책이나 마저 보자는 마음에 줄을 서지 않고 자리에 앉아 여유를 부렸다. 앞 시간대 비행기가 죄다 늦어졌는지 다른 항공사 비행기도 모두 일정이 밀렸다. 잠깐 사이 공항 내부가 혼란스럽게 들썩였다.
하지만 솜씨 좋은 승무원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승객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신뢰를 주는 목소리에 어수선했던 분위기도 이내 가라앉고, 37번 게이트에 다시 긴 줄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내가 타는 비행기는 20분 정도 출발이 늦었다. 덕분에 느긋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마지막까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줄 맨 끝에 서서 게이트로 입장했다.
기체에 탑승한 후에도 계속 책을 읽었다. 이묵돌의 <역마>였다. 사업에 실패한 글쟁이가 선인세를 받은 원고 마감을 위해 전국을 떠돌며 글을 쓰는 이야기, 나에게 <역마>는 그렇게 읽혔다. 여행 중 매일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 했다. 저자는 18일 동안의 방황 속에서 "떠도는 것에도 도망치는 것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나랑 비슷한 점이 많네. 어설프게 동질감을 느끼다, 고개를 저었다. 겨우 책 한 권 읽었다고 누군가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가 얼마나 깊은 고민 속에서 자신의 대답을 길어 올렸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18일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는 방황 속에서조차 대답을 찾지 못하는 나라면 더욱 그랬다. 가고 싶은 곳도, 돌아갈 곳도 정하지 못한 채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병원에서 나오면 글이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다른 걸 할 만한 힘이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동안 매일 체중이 1kg씩 빠졌다. 결핵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소모시키는 병이었다. 내가 멈춰도 병은 멈추지 않았다. 체중 감소는 일주일 내내 지속됐다.
보호자 외 면회 제한은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일을 하는 내내 마주했던, 나쁜 놈과 착한 놈이 명확하지 않은, 원망의 방향이 모호한 복잡함이 싫었다. 감정과 감정, 각자의 사정, 상대방의 변명과 내게 요구되는 용서가 진저리나서 도망쳤다. 나 혼자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만 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글쓰기였다.
하지만 정작 퇴원한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 이사한 집으로 옮겨서는 잠만 잤다.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눈을 뜨면 결핵약을 삼키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가끔 상태가 괜찮은 날에는 카페에 나가 몇 시간 동안 글을 썼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텅 빈 공간을 오랫동안 부유했다.
새해도, 설 연휴도, 멍하니 있는 동안 모두 지나가버리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2월의 끝자락이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런 말이 마음의 어딘가를 건드렸을 때, 나는 무작정 서울로 가는 가장 싼 항공권을 샀다. 이유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러 이유가 층층이 겹쳐 쌓였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그냥, 이라고 중얼거려보았다. 그 말은 이륙하는 비행기와 함께 둥실거리며 하늘 위로 떠올랐다.
나는 멈춰있는 걸까. 어딘가 고장 나버린 걸까. 뒤처지고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어,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끼치고 있는 걸까. 고민하는 동안에도 책 속의 역마는 계속 달렸다.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고서야 나를 찾았다"는 저자는 곧바로 "늘 두던 그곳에 있었다"며 자신이 찾아낸 모습을 정의했다. 그의 방황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어쩌면 역마가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듯이, 나에게는 방향이 다른 노력이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속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 멈춰서기 위한 노력. 비행을 끝마친 이들이 온전히 대진에 연착하기 위한 노력.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힘과 방향이 필요하기에, 훨씬 더 두렵고 불안해지는 노력.
“내일은 뭘 하면서 살아볼까. 어떻게 글을 쓸까. 어떤 나 자신으로 떠나볼까. 역마는…….”
마지막 문장에 닿는 것과 동시에 기체가 멈췄다. 1시간여의 비행이었는데, 마치 긴 여행을 끝마친 기분이었다. 책에서 스며든 수많은 도시의 잔상 덕분일까. 바삐 짐을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슬로우모션으로 재생되는 화면처럼 느리게 흘렀다. 나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줄 맨 끝에 서서 게이트를 나왔다. 그리고 잘 멈추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너무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면, 가고자 하는 곳을 지나치거나 충격을 이기지 못해 넘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건 느리게 도착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이 아닐까. 스스로를 보호하고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서라도 방향이 다른 노력은 필요했다. 잘 멈춰서는 법을 배워야 했다.
때로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때로는 잃어버린 길을 찾기 위해, 때로는 정말 그냥, 이라고 중얼거리며 방황은 시작됐다. 하지만 그건 결코 버려지거나 뒤처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야할 곳에 닿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에 가까웠다. 방황은 연착(延着)이 아닌, 연착(軟着)의 여정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가 잘 멈출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긴 비행의 끝에서 모두가 온전했으면 좋겠다고, 속도에 밀려 아프거나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도착한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활주로 위에 서서, 더 먼 곳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삶이란 그런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공항을 나와 서울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며, 내일 오후까지는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일정을 물었다. 나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고, 아마 왔을 때처럼 가장 싼 항공권을 사서 갈 거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전화를 끊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나왔다. 한낮의 공기는 따스한 온기를 품고 넓은 도로 곳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출발 전보다 기분이 한결 나았다. 공항을 완전히 떠나기 전,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다시 활주로 위에 설 거야. 천천히 날아오를 거야. 떠나는 곳과 돌아오는 곳은 다르지 않으니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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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는 글쓰기' 글쓴이 - 허태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경험을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라는 책으로 담았습니다. 지금은 부산의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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