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교단에 섰던 적이 있다. 누구보다 교사가 되고 싶었고, 몇 번의 임용 시험에 떨어진 뒤 교직 경력이 없는 나에게어렵사리 주어진 기회였다. 학생들은 내가 기간제 교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칠판을 등지고 서 있으면 종종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미간을 누르며 할 수 있다고 되뇌곤 했었다.
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도 비정규직 교사였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물론 영화이기는 하지만, 나도 그렇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해서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 순간에 있으려고 애를 썼다. 수업시간이 중반을 넘어가고 아이들의 눈빛이 흐릿해질 때마다, 내가 가르치는 교과 대신 더 중요한 교과의 문제집을 꺼내 태연하게 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리 교과서를 덮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나의 형편을 빗대서 한 말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해야만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고 말을 하곤 했다. 이를테면, 공부가 쉬운 길이니, 학생들에게 정해진 학업에 정진할 것을 강권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정해진 길을 함께 걸어가자는 뜻이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눈빛을 반짝여주는 고마운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돌이켜보면, 최선의 조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어진 환경에서 선언할 수 있는 차선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새벽 네 시 일어나 임용시험 공부를 하다가 아침을 서둘러 먹고 출근을 하곤 했었다.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지금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이었다.
또 다른 조언은 사이먼 시넥의 TED 강연을 조금 변형시켜서 한 말이었다. 공부의 결과(What)인 대학교 이름이나, 등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게 되면, 뜬금없이 생의 한 가운데에서, 어쩌면 생의 끝에 가서 그 이유(Why)를 고독하게 고민할수 있으니, 미리 왜 공부를 하는지, 왜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라고 말을 하곤 했다. 고민 끝에 찾은 Why가 자신에게 납득이 된다면 그것은 오래가는 동력이 될 수 있고, 결국 만족할 수 있는 What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을 하곤 했다.
요즘은 유독 그토록 어설픈 격언을 뿌리고 다녔던 시절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아마도 함께 일하는 Y가 그 시절 제자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이지 싶다.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일하는 Y, 아직 서투르지만, 아끼던 옛 제자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는, 바빠 움직이는 그녀의 손등을 보면서 그녀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겠거니 생각하곤한다. 한 시대의 유행가처럼 그런 격언들이 세상 곳곳에 피어나곤 했으니까. 그녀는 카르페디엠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Y에게는 특별히 조언을 삼가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이고, 조금씩 행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잘한 것을 찾아, 잘한다는 칭찬을 할 뿐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고맙다는 말을 누구보다 성실히 하는 그녀가 나는 도리어 고맙다. 그녀와 일을 하는 날은 꿋꿋하게 성장하려는 의지가 느껴져서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한다. 해서, 그녀가 되도록 오래 이 공간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애써 지우려고 애를 쓴다. 과욕이니까. 다만 이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며, 그녀가 삶의 Why(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훗날 Y가 카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때, 그 이유가 자신을 감동하게 할 만한 것이었으면 한다고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쉬운 마음보다 그것을 압도하는 뿌듯함으로 그녀를 배웅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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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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