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른다

부소오름_오늘도 오른다_서하도

제주 오름이 선물을 주었다

2024.04.01 | 조회 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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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제주에는 제주 오름이라는 특색있는 지형이 있다. 오름은 중앙 화산의 주변부에 나타난 기생화산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백두산, 한라산, 울릉도 외에는 화산지대가 없어 육지에서는 기생화산을 볼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제주에는 중심 굼부리(화산구)인 백록담을 중심으로 300개가 넘는 오름이 밀집해 있어 더 관심을 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하는데, 제주에만 있고 제주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되기 때문에 오름이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오름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사전에는 자그마한 산을 말하는 제주 방언이라고 그 정의가 등록 되어있고, 어원은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양하다. 우리말 동사인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오롬, 오름이 쓰이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고, 우리말과 친척 관계인 몽골어나 퉁쿠스어, 일본어 등에서 산꼭대기나 산등성이, 산을 뜻하는 말인 oroi, oro가 고대 우리 말에서 산의 의미로 쓰이다가 사라졌고 제주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주장이 있다. 어떤 쪽이 맞고 틀린지는 알수 없지만, 통상 우리말에서 명사가 먼저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동사나 형용사가 파생되지 그 반대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두번째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나는 오름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즉 오름을 실체로 접하기 전 텍스트와 소리로 오름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이미 오름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동사인 ‘오르다’는 오르는 동작을 묘사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풍기는 활발함과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 움직임이 주는 다소간의 불안정함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오름은 도도록하게 땅이 솟아 올라 있는 모습을 묘사하기 때문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또 오름은 산과 다르게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데, 산은 땅 속 에너지의 충돌하면서 지각이 부러지거나 꺾여 솟아오르며 만들어져서 일반적으로 뾰족한 형상을 보이는 반면, 오름은 꾸덕하게 흐르던 마그마가 땅을 들어올려 만들어져서 구비구비 부드러운 모습을 갖는다. 이러한 외형적인 특징이 오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더해져서, 나에게는 오름이 편안함, 안정감, 부드러움, 가득참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자꾸 오름을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오름을 방문하면서 사람들은 몇 단계 변화를 겪는다

첫번째는 인지 단계다. 오름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고, 제주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오름이라고 부르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오름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실제 방문은 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많이 알려진 유명 오름을 한 두 군데 가본 경우도 있다. 널리 알려진 오름을 갈 경우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찍는 것이 기쁨이 된다.

두번째는 입문 단계다. 두 세 개의 오름을 방문 하다 보니, 오름 특유의 풍경이나 분위기가 주는 매력에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다. 제주에 오름이 몇 개나 있는지 찾아 보기도 하고 이동 경로 근처에 갈만한 오름이 있는지 검색해서 방문지 목록에 추가 하기도 한다. 오름이 화산 활동 중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안다. 

세번째 단계는 오르머 단계다. 스스로를 오르머로 부르기도 하고, 남들이 잘 모르는 오름을 찾아 다니거나 소개 하는 것이 즐겁다. 플로깅 등 오름을 아끼고 보존하는데도 관심이 생긴다. 취향에 맞는 좋아하는 오름이 생기고, 방문 하고 싶은 오름리스트가 생긴다. 이동 경로를 오름을 중심으로 짠다. 100대 오름 지도를 구해서 하나씩 방문하며 리스트를 지워가는 기쁨을 느낀다.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방문해야 하는 오름 목록이 생긴다. 오름과 산의 차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문 지식을 활용해 잘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은 생활화 단계(동네 주민 단계)다. 집앞 마실나가는 차림으로 오름을 쓱쓱 다녀온다. 어느 오름을 가든 익숙하다.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른 오름의 변화가 즐겁다. 오름 리스트나 목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오름이 잘 관리 되고 있는지, 오름 탐방로 중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등 현황을 주변에 공유 해준다. 아끼는 오름이 유명해져서 방문객들에 의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깝다.

나는 아마도 두번째와 세번째 단계의 중간 쯤에 머물러 있는것 같다. 각 단계를 넘어가려면 대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나의 경우는 부소 오름이라는 오름을 방문 했던 것이 그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부소 오름과 부대 오름

부소 오름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유명 오름이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를 가로, 세로로 크게 나누는 도로인 번영로와 비자림로가 교차하는 근처에 있어서 제주 도민이든 방문객이든 이동 중 부소 오름을 곧잘 만나게 된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야트막한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지만, 제주 동쪽에서 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 이동한 적이 있다면 거의 확실하게 부소오름을 옆으로 끼고 지나쳤을 것이다.

부소 오름은 꽤나 평범한 이름이다. 용눈이 오름이나 아끈다랑쉬처럼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기는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부소 오름 옆에 부대 오름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면, 부소 오름이 왜 부소 오름인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부소 오름의 초입에는 미니 사려니숲이라 할만한 삼나무 숲이 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인적이 드물다. 조용한 삼나무 숲을 잠깐 걷고 나면 새소리만 들리는 초원이 나타난다. 부소 오름과 부대 오름의 중간은 꽤 넓은 목초지이고 목장이 크게 자리잡았는데, 바로 그 목장의 가장자리 부분이다. 앞으로는 부대 오름, 뒤로는 부소 오름을 두고 가운데에 서면 시야가 초록으로 가득찬다.

제주에서 가장 큰 도로 중 하나에서 도보로 불과 십 여 분 떨어진 곳인데, 그곳은 마치 무인도나 오지처럼 사람의 자취를 찾기 힘들다. 반경 1.5 km 영역에 사람은 나혼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무성한 풀 아래 쪽을 잘 보면, 자동차가 다녀서 생긴 바퀴 자국길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그것이 유일한 문명의 흔적이다. 

초원은 푸르르고 이곳 저곳에는 들꽃들이 피어있는 부분이 있다. 꽃이 핀 곳에는 나비가 무수히 날고 있었다. 나비가 한 두 마디 팔락하는 것은 자주 봤지만, 저렇게 많은 나비가 한꺼번에 날아다니는 것은 TV 다큐에서나 봤지 실제로는 처음이었다. 수많은 나비들이 풀에 앉았다 꽃에 앉았다 날아 올랐다 하는 것을 보는데 무척 아름다웠고 문득 풍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서서 나비와 꽃, 들풀을 구경 했다.

‘아, 참 평화롭고 좋다’ 생각하며 혼자 빙글 돌아보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며 들판을 걷는데 갑자기 체기가 내려가듯 명치에서 스르르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몸이 전체적으로 편해지면서 심호흡을 하게 됐다. 점점 마음도 편해졌다. 당시 나는 몇가지 큰일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부하를 받던 상황이었는데, 부소 오름을 방문하기 전에는 ‘다소 일이 많지만 제법 잘 대응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힘들거나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부소 오름의 자연 속에 섞여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나서야 그간 내가 무척 긴장하고 있었구나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들판을 가득 채운 초록의 풀들도, 색색의 들꽃들도, 수많은 나비들도. 그리고 가지가 휘어질듯 자란 나무들도, 그 사이에 몸을 반쯤 숨기고 나를 무서워 하지도 않고 따라 걷던 사슴도. 그곳을 채운 모든 생물들은 ‘자연’스러웠다. 그 시간과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인 것처럼,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 다른 자격은 필요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아도 내가 속할 곳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내가 나로서 두 발을 딛고 섰다는 것으로 그 순간을 충실히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참 좋았다. 부소 오름에서 받은 큰 선물이었다.

용눈이 오름은 용눈이 오름대로, 아부 오름은 아부 오름 나름대로 감동과 울림을 주었던 것처럼, 부소 오름은 또 나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보여주었다. 부소 오름을 통해, 제주 오름이 사진찍기 좋은 관광지 이상의 무엇이구나, 모든 오름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갖고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00 개가 넘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고 싶어졌다. 다음은 어느 오름을 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오르머가 되었다.

 

 

‘오늘도 오른다’

백 개의 제주 오름을 오르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고, 현재 스코어는 30/100 입니다. 제주 오름을 왜 오르게 되었는지, 제주 오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름을 오르면서 어떤 순간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과 감상이 있었는지 글을 통해 공유하겠습니다.

 

서하도

처음 방문한 제주도 동쪽 끝에서 ‘하도리’라는 자신의 필명과 동일한 동네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 곳에 정착할 꿈을 꾸게 된 초보 작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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