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Live Forever_정규진

2024.09.22 | 조회 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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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지은 집>

Unsplash의Nicolas LB
Unsplash의Nicolas LB

 내 마음 속에는 안전가옥이 한 채 있다.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을 편하게 뉘일 수 있는 안전가옥이 필요하다. 인간은 삶이라는 끝없는 여행길을 계속 걷는 여행자다. 그러나 여행길이 언제나 순탄할 리 없다.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따라 유독 벅찰 때, 무리한 나머지 단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만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다. 안전가옥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안전가옥은 구원의 기억으로 짓는다. 누군가는 독서를 하며 인생의 난관을 버텼을 것이다. 그의 안전가옥에는 큰 도서관이 있다. 맛집 탐방으로 버텼다면 맛있는 음식을 내오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누군가에겐 드라마가 방영되는 극장, 또는 스키장일 수도 있다. 안전가옥은 주인에게 어떤 기억을 상기시킨다. 당신이 지금 지옥을 살고 있을지라도 당신 인생에는 이렇게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다고 일깨워준다. 우리는 이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내 안전가옥 역시 나만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내 안전가옥은 꽤나 넓은 것 같다. 도서관도 있고, 영화감상실도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방도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아끼는 곳은 한낮의 드넓은 야외 공연장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출퇴근길에서도 이어폰만 귀에 꽂으면 바로 열정적인 록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재생되는 밴드는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는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형제를 주축으로 1994년에 데뷔해 2009년에 해체한 밴드다. 데뷔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Don’t Look Back In Anger>, <Live Forever>, <Champagne Supernova>같은 무수한 명곡들을 남겨 아직까지도 음악 팬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밴드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단순하다. 귀에 익숙하고 따라부르기 쉽다. 하지만 음악을 대충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두 대의 기타가 연주하는 힘찬 사운드 위로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멜로디를 수놓는다. 듣는 이를 단번에 사로잡는 멜로디는 잊히지 않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때문에 기타를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들은 오아시스의 음악을 주로 연습하게 된다.

 오아시스가 유명한 이유는 음악 자체때문만이 아니다. 밴드의 중심인 갤러거 형제는 영국 맨체스터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형제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형인 노엘은 아버지에게 맞다가 기절한 채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참다 못한 어머니는 형제들을 데리고 도망을 나왔다. 형제는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낮에는 생활비를 벌러 공장에 출근하고 밤에는 밴드 활동을 했다. 하지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어도 그들은 삶의 희망을 노래했다. 아버지에게 맞고 살았기에 방구석에 숨어 기타를 쳤고, 덕분에 음악으로 성공했다는 농담을 치며 과거를 웃어넘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Whatever>, <Wonderwall>의 희망찬 정서에 열광했다. 당시 영국인들에게 오아시스의 음악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삶은 힘들어도 견뎌볼 만한 일이라는 당찬 선언이었다. 갤러거 형제도, 그들의 음악에 위로받은 사람들도 모두 음악이라는 안전가옥에서 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잊을 수 없는 추억>

 Y와는 열 네살 때 처음 만났다. 나는 동네 국립대학교가 주최하는 여름방학 영어캠프에 참가했다. 일주일간 합숙을 하며 영어를 배우는 캠프였다. Y는 나와 같은 조에 속했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우리는 한 방에서 같이 자면서 당시 한창 듣고 있던 음악을 공유했다. 나는 당시 유행한 발라드를 주로 들었었다. 좋아서라기보다는 아는 노래가 그것밖에 없었다. 나에게 사랑과 이별은 재미없는 소재였다. 소리도 가사도 전부 비슷했다. 진부했다. 음악 감상은 달리 할 게 없어서 하는 일이었다. 나와 다르게 Y는 외국 음악과 친했다. Y는 침대에 걸터앉고는 내게 MP3 플레이어로 음악 하나를 들려주었다. 미국 펑크 밴드인 그린데이의 <Basket Case> 였다. 

 발라드의 가녀린 현악기 선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친 소리가 이어폰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야구 배트로 주변 사물을 모조리 때려부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영어로 된 노래라 가사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 사실 영어캠프는 엄마 손에 이끌려 반쯤 강제로 오게 된 행사였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삶을 쥐고 흔드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이 노래를 듣기 전에는 내가 내 삶을 답답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Basket Case>는 나를 대신해 내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을 죄다 깨부숴버리고 싶어하는 음악이었다. 그 때부터 음악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친구였다.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영어캠프가 끝나고 각자 집에 돌아갔다. Y의 집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었다. 하지만 나는 Y와 계속 연락했다. 싸이월드 일촌을 맺고 외국 록 음악들을 함께 찾아다녔다. 내 MP3 플레이어에는 시끄러운 음악들이 계속 추가되었다. 그즈음 오아시스도 우리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자연스럽게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되었다.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함께 음악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되었다. 성인이 된 우리는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갔다. 역시나 오아시스의 곡들을 가장 많이 불렀다. 

 스무살의 우리는 록 페스티벌에서 3박 4일 간 캠핑을 하며 머무르기도 했다. 록 페스티벌은 넓은 광장에서 국내외의 록 밴드들이 모여 공연하는 음악 축제다. 3일 간 아침부터 밤까지 밴드들의 공연이 계속된다. 하루에 많게는 10팀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꼭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행사 같았다. 록 페스티벌에 두 번 같이 갔었는데, 두 번째로 공연장을 찾았을 때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를 만났다. 내 젊은 날의 열정을 다 바쳐 열광했던 바로 그 사람이 눈앞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음원으로만 듣던 노래들이 진짜 악기 연주로 재현되는 광경에 열광했다. 여름밤의 넓은 공연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 모두가 <Champagne Supernova>를 따라불렀다. 관객들은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고 노래에 맞춰 휴대폰을 흔들었다. 광장에 별빛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기분좋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록 페스티벌은 보통 연중 가장 더운 때인 7월 말이나 8월 초에 열렸다. 야외 공연장 전체가 거대한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작열하는 햇빛은 칼날을 벼린 듯 쓰라렸다. 하루 종일 온몸이 난도질당했다. 피를 흩뿌리듯 땀이 배어나왔다. 우리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그 위에 물을 뿌리며 더위를 견뎠다. 공연장 근처 카페에서 에어컨을 쐬며 앉아있기도 했다. 살갗은 검게 익었다. 오래 서있느라 발바닥과 허리가 아팠다. 고생스러웠지만 공연을 보느라 그저 즐겁기만 했다. 우리는 행사장 근처의 숙소를 빌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캠핑 구역에 텐트를 치고 간이 샤워장에서 씻었다. 

 텐트에 별다른 냉방 시설은 없었다. 샤워시설은 열악해 시냇물 같은 물줄기만 쪼르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폭염이나 열악한 시설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캠핑 덕분에 행사를 밀도있게 즐길 수 있다며 좋아했다. 밤이 되면 우리는 공연의 여운에 취한 채 맥주를 마셨다. Y는 통기타를 가져왔다. 캠핑구역에 머무르던 낯선 사람들에게 방금 공연에서 들은 노래를 연주해주었다.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노래를 따라불렀다. 우리는 등불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그러다 새로운 공연에 대한 설렘을 품고 눈을 떴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꽤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온다면 지금 이 날의 기억이 나를 지탱해주리라고 믿었다. 

<영원히 사는 법>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각자 바쁜 일들이 가득했다. 전처럼 Y를 매주 만나기는 힘들어졌다. 그즈음 만난 Y는 왠지 작아보였다. 생계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학력때문에 승진이 어렵다는 말도 했다. 그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난 뒤 Y는 자기 여자친구의 자취방에서 살았다. 결혼 이야기도 오갔다. 그 무렵 Y는 갑자기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고 했다. 전부터 아무런 디지털 기기 없이 혼자서 해외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 모든 미래가 부담스러웠을까. 몇 달 뒤, 나는 Y의 영정사진 앞에 서게 되었다.

 Y는 즐겨읽던 책에 친구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끼워놓고 그렇게 갔다. 미안하다고, 너무 궁금해하지 말라고 써두었다. 그의 어머니로부터 수첩에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 하나를 남겨두었다고 들었다. 발인하기 전날 밤 영정사진 옆에 휴대폰을 두고 그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역시나 오아시스 노래가 나왔다. 갑자기 울음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아득한 거리감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그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Y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나처럼 음악에서 위안을 찾을 수 없었던 걸까 물어보고 싶었다. 이제 그럴 수 없었다. 음악이 Y를 위로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게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같은 음악도 Y가 없이는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내 안전가옥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일상을 살며 멍해지는 날이 많았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가끔씩은 Y가 몸담은 죽음의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같이 그곳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편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 사이를 끝없이 저울질하며 살아갔다. 삶의 의미를 모두 빼앗기고 나니 세상에서 이루고싶은 바가 사라졌다. 이 삶을 굳이 왜 살아내야 할까. 

 어느 날 노엘 갤러거가 다시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8년만에 다시 만난 노엘 갤러거는 얼굴에 주름이 늘고 음악 스타일도 달라졌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진심을 다해 공연하는 태도만큼은 변함없었다. 공연을 앞두고 JTBC와 나눈 인터뷰에서 노엘은 “내가 죽어도 내 음악은 영원히 살 것” 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그의 음악을 영원히 살게 하는가. 결국 그의 음악을 계속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영원히 살게 된다.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죽어도 죽지 않는다. Y가 없어도 그와 함께 음악을 듣고 놀았던 추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Y와 3박 4일동안의 공연을 즐기며 나는 내 삶에도 이렇게 좋은 일들이 가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부 내 기억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통해 생명을 얻고 의미를 얻었다. 공연의 막바지쯤 노엘은 <Live Forever>를 불렀다. 그러자 8년 전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찾아왔다. 그러고는 저울을 가리키며 이제 어떡할거냐고 물었다. 대답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희망을 노래하며 살고 싶었다. 나를 통해 Y가 살아있기를 바랬다. 그가 나에게 선물해준 그 소중한 시간 모두를 기억하며 살고 싶었다. Y를 다시 만나는 시점은 내 앞의 모든 사건들을 살아낸 뒤라고 정했다.

 아직도 나는 록 페스티벌에 매년 간다. 혼자든 여럿이든 항상 간다. 살갗을 새까맣게 태우고 올해를 살아낼 추억 보따리를 가져온다. 요즘 한 친구가 밴드 음악에 빠져있다. 친구는 몇달 전 나와 필리핀 보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승합차에서 밖을 보며 뭐에 홀린듯 생전 듣지 않던 오아시스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Champagne Supernova>를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단다. 그에게 보홀 여행은 정말 행복한 기억이었다. <Champagne Supernova>를 들을 때마다 여행 생각이 나며 추억에 잠긴다고 한다. Y가 내게 그래주었던 것처럼, 나는 그 친구의 추억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를 처음으로 록 페스티벌에 데려갔다. 추억이 계속해서 변주되고 풍성해지면서, 나의 안전가옥은 증축되고 아름답게 리모델링된다. 나는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이 되고 싶다. 그들의 기억을 통해 영원히 살고자 한다. 그들의 기억을 통해 내 안의 Y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 글쓴이 - 정규진

삶이 기체라면 의미화된 삶은 고체입니다. 혼란 가득한 삶을 이야기라는 질서로 엮어내고자 합니다.

인스타그램 : @q_uz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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