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관계를

갓생을 살아도 외롭다_그럼에도 관계를_김재용

2024.09.25 | 조회 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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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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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이라는 트렌드

'갓생'은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을 뜻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갓생을 추구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갓생의 노예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남에게 뒤처지기 않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불안감과 죄책감 느껴서 바쁘게 지낼 뿐이다. 독립한 지가 5년이지만 여전히 매 끼니는 직접 해 먹고, 퇴근 후에는 사회 변화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하고, 주말에는 그림 그리거나 테니스, 전시회, 공연을 보기도 한다. 언제나 이 모든 것을 혼자 하는 편이다.

ⓒ sloth.adult of Instagram. All right reserved.
ⓒ sloth.adult of Instagram. All right reserved.

혼자 이 모든 것을 하는 이유는 주변인과 관계 맺기에 드는 노력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나의 의지대로 시간이나 순서, 방법 등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타인과 함께라면 과정 전부에 타협이 필요하다. 즉 효율적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효율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성향은 나만이 가지는 특이성은 아닌 듯하다.

사회가 선망하는 대상이 뚜렷하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보다 자격이나 속한 집단이 나를 정의하고, 극심한 경쟁 속에 도태되지 않는 것을 현명하게 여기는 사회다. 이러한 환경에서 타인과 관계 맺기를 우선하는 것은 적절한 생존 전략이 아닐 테다. 관계 따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이 더 크다. '갓생'을 비롯하여, '추구미'나 '도달가능미'와 같은 말이 유행하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청년 1인 가구가 늘어가고, 혼자 '갓생'사는 청년들이 많은 사회에서 외로움이나 고립은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갓생에는 루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온전히 살기 위해서라도.

ⓒ sloth.adult of Instagram. All right reserved.
ⓒ sloth.adult of Instagram. All right reserved.

나는 최대한 루틴을 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사색할 수 시간에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외로움'을 내가 무언가에 몰두하지 못해서 느끼는 불안 탓으로 돌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더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즉 갓생을 살아야만 외롭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바쁘게, 항상 무언가에 몰두하며,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외로움을 등한시 한 채 살았다.

아무리 불안을 앞세워 외로움을 쫓아내려 해도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만의 삶을 살다 보면 외로움의 정도가 깊어지고, 타인과 소통이 뜸해지고,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우울증은 여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를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신 병원에 방문하는 것도 두렵거니와 정신 치료 약은 내성이 있다고 해서 거부감이 앞선다. 그저 다시금 나의 쓸모를 찾아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다.

외로움을 느낄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려 갓생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살며, 사회가 선망하는 사람이 되려 채찍질한다. 루틴을 만들고, 쉼과 같은 사치는 배제하고, 일상 리듬을 바삐 사는 것으로 행복하다면서 자기 최면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고립 청년임에도 갓생을 사는 사람의 속마음이다.

 

R=VD(Realizations = Vivid Dream)

'취미'라는 개념은 현대 사회의 개념일 테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시간은 대부분 먹고사는 것이 주 목적인 투쟁의 시간이었을 것이고, 생산 이외 여가는 상위 몇몇 사람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 다른 취미를 갖기도 어려웠을 테다. 놀 거리는 한정적이었고, 놀이 대부분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갓생'이라는 트렌드는 지극히 현대의 개념이다.

우리는 이미 현대에 살고 있으니, '갓생'을 추구할 필요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갓생'을 추구하면서도 관계를 놓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저 목표의 계단을 오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고립 청년임을 인식하면서부터는 주변이나 SNS에 추구하고 도달하려는 목표를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글 쓰기도 마찬가지다. '갓생'의 목표를 꾸준히 알리는 것이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효과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끊어졌던 혹은 의도적으로 끊어버렸던 관계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연락 안 드린 지 오래라서 연락하기 애매했는데, 용기 내서 보낸 것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라거나 "재용아, 네가 올리는 링크로 가끔씩 글을 훔쳐보고 있어. 나보다 후배지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회복지사 같아 멋지고, 대단하고 그렇네."라는 등 다른 사람과 다시금 연결됐다.

참외롭다.
참외롭다.

'R=VD(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달성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구체적 상상을 주변인에게 말함으로써 '갓생'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심지어 '갓생'을 살며 포기해야만 했던 관계도 함께 챙길 수 있다. 사실 갓생과 외로움 중 어떤 것이 선행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갓생을 살면서 관계를 놓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바쁘게 사니 외롭지 않다는 것은 치열한 거짓말이다. 뒤처지는  같아 갓생을 포기할  없다면, 적어도 외로움과 갓생을 버무리며 사는 방법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관계를>

앞으로의 연재는 자발적으로 고립을 꾸준히 선택했던 청년이, 고립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자발적 고립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립이 존재합니다. 사회복지사인 동시에 고립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청년으로서 <그럼에도 관계를>을 쓰려합니다.

김재용

사회변화를 위한 글쓰기를 지속하며, 현재는 사회복지사로 노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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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tthurssday_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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