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퍼센트 상류층이 노는 법_케이트의 영화 이야기_카페의 케이트

쓴 맛 남기는 영화 <라이엇 클럽>

2022.03.25 | 조회 1.4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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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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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이번 생은 망했다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음 생엔 돈 많고 잘생긴 백인 남자로 태어날거야."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는 '라이엇 클럽'이 있다. (실제 모델은 '벌링든 클럽Bullingdon Club') 라이엇 클럽은 집안, 재력, 학력, 외모가 상위 1%에 속하는 상류층 자제들의 모임이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라이엇 클럽의 역사도 깊다. 클럽의 회원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라이엇 클럽 선배들의 지목을 받는 것이다. 두 주인공 알리스터와 마일즈는 옥스포드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로 둘 다 라이엇 클럽 가입 권유를 받는다. 그들은 황당하고 어마무시한 신입생 환영회를 치른다. 구더기가 들어간 술을 원샷하고 선배들이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방을 보며 웃어넘긴다. 환영 방법이 불친절하고 거칠어도 그들은 라이엇 클럽에 들어가는 것을 특혜로 여기고 이를 수용한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전개였다. 

영화의 특별함은 라이엇 클럽이 시골의 어느 레스토랑 룸에서 진탕 노는 씬에 있었다. 한 장소에서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이 에피소드는 처음엔 지루할 만큼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것도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열 명의 라이엇 클럽 회원들은 그저 술이나 마시면서 시덥잖은 말이나 주고 받고 말 그대로 '논다'. 그들의 즐거움의 핵심은 자신들이 선택 받은 특권층이라는 것을 서로에게 재확인시켜 주고 특권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긴장감과 사건이 터질듯 말듯한 아슬아슬함 위로 지루함과 공허함이 얹어있었다. 작정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 하지만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그런 겉도는 분위기였다. 매춘부 한 명을 불러 열 명의 오럴섹스를 요구했지만 매춘부는 거절하고 가버린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그들처럼 노는 것이 참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리라.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는 마일즈의 여자친구인 로렌이 그들의 방에 들어온 것이다. 로렌은 마일즈의 문자 메세지를 받고 왔다고 말한다. 로렌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여기서 나를 구해달라'는 마일즈의 메세지가 와있었다. 하지만 문자는 마일즈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알리스터가 마일즈의 핸드폰으로 보낸 것이었다. 마일즈는 로렌에게 문자를 보낸 적이 없다고, 미안하지만 빨리 가라고 하면서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한다. 

회원들이 매춘부가 가버린 뒤 등장한 로렌을 모욕하기 시작한다. 한 회원은 로렌에게 2만7천 파운드, 3년치 학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금 계좌이체 해줄테니 회원 열 명에게 오럴섹스를 해주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이 때 아주 흥미로운 장면, 그 전까지 '정상'이고 특권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마일즈가 로렌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It's up to you.(좋을 대로 해.)"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로렌에게 그건 큰 돈이니 로렌더러 선택하라는 거였다. 마일즈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로렌은 그 말을 듣고 그에게 실망한다. 로렌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한 회원이 강제로 로렌에게 키스한다. 마일즈는 제발 로렌을 보내달라고 울면서 사정한다. 

두 번째 사건은 라이엇 클럽이 레스토랑 사장을 폭행한 것이다. 술과 마약에 취한 알리스터는 흥분한 상태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싫어!" 계급 격차에 따른 이질감을 느끼는 건 상류층도 마찬가지다. 상류층은 하위 계급이 자기를 증오하는 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알리스터는 ATM기를 이용하던 중 노숙자 같은 두 남자에게 강도를 당했었다.) 알리스터와 회원들은 흥분한 상태로 레스토랑의 기물을 파손하기 시작한다. 레스토랑 사장이 그 소리를 듣고 룸에 들어와 화를 내자 알리스터는 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사실은 나를 좋아해. 나처럼 되고 싶어하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알리스터는 잘난 아버지와 형에 대한 열등감과 하위 계급에 대한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는 마치 사장이 자기와 같은 인간 존재가 아니라는 듯 사장을 무차별 폭행한다. 

결말은 예측 가능한 대로 무난하게 마무리 된다. 사장이 폭행당할 때 경찰에 신고했던 마일즈는 라이엇 클럽에서 탈퇴하고, 알리스터는 학교에서 제적 당했지만 인맥의 도움으로 구제된다. 라이엇 클럽의 다른 회원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사하다. 

<라이엇 클럽>은 희곡 '포시(Posh)'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포시'는 상류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류층은 정말 이럴까? <포시>의 원작자는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상류층이 선민의식에 젖어 있고 죄를 지어도 인맥과 재력으로 처벌 받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점을 문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 달성에는 성공했지만 작품 자체가 그닥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레스토랑 에피소드는 그들이 공허하고 '정말 별로'라는, 특별한 실감을 줬다. 

영화 <라이엇 클럽>의 한 장면
영화 <라이엇 클럽>의 한 장면

 

 

*매달 25일 '케이트의 영화 이야기'

*글쓴이 - 카페의 케이트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초등논술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ateinth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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