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생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_곽현주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를 보고

2024.09.14 | 조회 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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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앨리스> 장면 (비평, 참고를 위한 인용)
영화 <스틸앨리스> 장면 (비평, 참고를 위한 인용)

나만은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한동안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한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살았던가, 불과 몇 년전까지도 그랬었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용어가 있다. 의학적 용어나 질병명은 아니지만, 외부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다. 인구의 15~20%나 된다고 하니, 어쩌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성격 좋은 아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 바쁘셨던 부모님의 양육방식이 우연히 나의 기질에 맞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나는 무척이나 예민한 ‘감춰진 HSP’였던 것 같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셨던 아빠 덕분에 어릴때부터 남동생과 함께 아빠를 따라 단축마라톤대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었음에도 체육시간의 기억들은 참 즐거웠다. 대학 때는 올림픽공원 근처 음악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수영과 테니스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덕분에 감기에 걸린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로 매우 건강한 편이었고, 심지어는 밤을 새며 놀아도 다음날 멀쩡하게 일을 할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젊은 날은 즐겁고 건강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다. 친구들 가운데 제일 먼저 결혼을 할 정도로 이른 나이였다. 시어머니도 50대의 젊은 나이셨다. 지나고 보니, ‘어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과 결혼을 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든 잘보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말처럼 결국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과는 늘 정해져 있는 현실들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일단, 시어머니는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누군가에게 탐탁치 않아하는 시선과 표정을 받는 것, 또 끊임없이 비난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이상으로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평소에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는 그러한 상황들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더불어 그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나의 예민함이 함께 작용해서,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가지 호르몬 질환들이 발병해서, 결국 종합병원의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

 줄리언 무어의 영화 <스틸앨리스>는 앨리스가 가지고 있는 격조 있고, 우아한 이미지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흐트러지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세 아이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언어학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는 어느 순간 쉬운 단어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약속을 잘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복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앨리스는 소중한 시간들 앞에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기로 결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이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며 앨리스가 보여주는 그 당혹스러운 눈빛은 정말 쓸쓸했다. 앨리스의 초점을 잃은 눈빛을 볼 때면 마치 그녀 내부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앨리스를 보면서, 삶에서 많은 것을 이뤄낸 그녀가 내적인 감정의 혼란을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가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다. 특히 끝까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차라리 암이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한 부분은 가슴 깊이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앨리스에 왜 그렇게 깊이 감정이입이 되었던 걸까? 나는 앨리스를 생각할때마다 ‘인생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라는 화두를 내 마음속에 던져본다. 결혼하고 1년여쯤 지났을 때였다. 첫아이를 낳고 난 후에 심각한 호르몬관련 질병을 경험하게 되었다. 원인은 모르며,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늘‘미안해해야 하는 아픈 며느리’로 살아가야 했다. 나는 많이 억울했다. 나의 스트레서는 온전히 시어머니였고, 그런 상황들을 방어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많이 미웠다. 그러나 남편도 나도, 그때는 너무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들이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 아파도 괜찮은 관계가 더 이상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객지에서 지내면서, 친정부모님 걱정하실까봐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그렇게 애쓰며 지냈다.

 

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거야

 호르몬 질환의 원인을 찾는 동안 아이를 업고 서울아산병원의 신경외과, 내분비내과, 산부인과를 오가며 참 외롭고 힘들었다. 여러 가지 호르몬에 문제가 있는지라 더 이상 임신은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후, 병이 있는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왔다는 비난을 받고 좌절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같이 딸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나의 젊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하는 말들을 스스로 잘 소화시키지도 못한채, 어떻게 진료의 경과들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지가 더 고민이었다. 가끔씩 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진료실을 나섰던 것 같다. 갑자기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서있기도 했다.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시간들에 대해 짐작해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며 그렇게 있을때면 때로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짐작했던 고통은 실제 고통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오랜시절 잠재되어 있던 나의 깊은 ‘예민함’이 자극 받아 마음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앨리스는 마냥 좌절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제목 그대로 앨리스는 어떻게든 계속해서(still)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앨리스로 남아있고자 했다. 알츠하이머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도 알츠하이머 학회에 나가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 애쓴다.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라는 말로 다른 환자들을, 또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누구나, 예기치 않게, 이처럼 원하지 않는 질병에 걸릴수도 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사랑스런 아내로, 존경받는 언어학 교수로 살아오던 앨리스에게 알츠하이머 판정은 아마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자녀에게 유전이 된다는 것이 더 속상하고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병을 앓는 시간들은 많은 것을 상실하는 과정이다. 앨리스도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스틸 앨리스>를 보며, 나는 내내 울 것 같은 마음으로 봤다. 영화 속에서 나를 만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질병 이후의 나를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웠던 나, 인생에서 이토록 원하지 않는 일을 만났던 나를 만났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질병 이전의 나의 일상이 사라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 변했을 뿐이다. 많이 아프기는 했지만, 그리고 계속 문제가 되는 일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아쉽게도 아직 충분히 미워하지도 못했는데, 시어머니가 몇 년전 갑자기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시어머니의 방식대로 내게 사과를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가셨다. 그러나 더이상 미워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실제로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조금 포장해서 말한다면, ‘내 인생에서 원하지 않은 일을 만난 것’ 때문에 나는 작은 기적들을 이뤄낸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해 본다. 비관적인 미래만이 예상되는 앨리스가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는 것을 보며, 또 사라져가는 것들을 ‘상실의 기술’이라 말하며 하나씩 놓아주고 있는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들을 떠올려 볼때마다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지금도 하나씩 하나씩 인생에서 좋은 일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글쓴이 - 곽현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으며, 가족상담&예술치료 전공자로 ‘자기돌봄’과 관련된 상담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건신대학원대학교 문화예술치료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인스타그램 : @traum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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