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성 황제, 레즈비언이었을까? 예카테리나 대제와 다쉬코바 이야기

(Catherine the Great, 1729~1796)

2022.02.22 | 조회 1.6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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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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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아홉 번째 뉴스레터는 14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진한 우정, 예카테리나 대제의 이야기 입니다. 연인 사이보다도 더욱 가깝고 신뢰가 두터웠던 두 여성이 만들어간 위대한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거울 앞에 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 일부 ⓒ 에르미타시 박물관
<거울 앞에 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 일부 ⓒ 에르미타시 박물관

훌륭하고 뛰어난 왕을 우리는 대왕이라고 부릅니다. 역사 속 대왕은 많지 않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황제를 일컫는 대제라는 칭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 속 대제로 불리는 이들은 소수이죠. 그중 한 인물이 오늘 이야기할 예카테리나 대제이고요. 지금까지 러시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왕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는 예카테리나는, 세계사를 배울 때 한 번쯤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인 ‘시드마이어의 문명'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예카테리나는 러시아를 강대국의 위치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물리적인 강대국의 모습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문화와 예술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러시아 제국의 수준을 한 층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그는 계몽 군주로 불릴 정도로, 즉위 초기 계몽주의 사상을 정치에 도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계몽주의가 자유주의적 이념을 담고 있기에 러시아 제국의 무역을 비롯한 상업도 순풍을 탔습니다.

 

예카테리나 보론초바 다쉬코바의 초상화 ⓒ wikimedia commons
예카테리나 보론초바 다쉬코바의 초상화 ⓒ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예카테리나의 곁에는 여성 조력자, 작은 예카테리나로 불리기도 하는 예카테리나 다쉬코바가 있었습니다. 둘의 깊은 우정은 예카테리나가 황태자비 시절부터 이어졌습니다. 남편인 표트르는 자신보다 지적 수준이나 재능 등 많은 면에서 우수한 예카테리나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이에 예카테리나는 불안정한 위치의 외국인 황태자비라는 위치에서 자신의 편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쉬코바의 언니는 표트르의 연인이었고 표트르는 다쉬코바의 대부였지만, 다쉬코바는 예카테리나와의 첫 만남에 바로 그의 편이 되었습니다. 당시 예카테리나가 30세, 다쉬코바가 16세로 둘은 열 네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의 높은 지적 수준과 재능에 강한 호감을 느끼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 가운데 진지한 독서를 한 사람은 황태자비와 나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서로 상대에게 이끌렸다."

"황태자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할 때면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발휘하던 그 매력은 열다섯 살도 채 안 된 나 같이 소박하고 작은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강렬하였기에, 그 후로도 영원히 내 마음을 황태자비에게 바치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 예카테리나 다쉬코바의 회고록 중

 

쿠데타 직후 겨울궁전의 발코니에 선 예카테리나 ⓒ wikimedia commons
쿠데타 직후 겨울궁전의 발코니에 선 예카테리나 ⓒ wikimedia commons

다쉬코바는 총리의 조카라는 위치로 표트르와 중요한 국정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고, 황제의 자리에는 예카테리나가 더욱 적합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다쉬코바는 예카테리나와 쿠데타를 준비하며 최상층의 귀족을 쿠데타 세력에 합류시키고, 쿠데타의 선두에 서서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열 아홉 살의 젊은 여성이 쿠데타의 큰 축을 담당한 것이죠.

하지만 쿠데타 당시 예카테리나는 심적으로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수많은 귀족과 군사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는 해도, 쿠데타라는 일생일대의 일을 벌이기 직전이었으니까요. 이때 그를 잡아준 건 다쉬코바였습니다. 예카테리나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들은 다쉬코바는 몸을 사리지 않고 예카테리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몇 번씩이나 서로를 껴안고 위안의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무혈혁명으로 쿠데타를 성공한 후, 오랫동안 밤을 지새웠던 예카테리나와 다쉬코바는 작은 마을에 들러 한 방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과학자 미카일 로모노소프를 방문한 예카테리나 대제 ⓒ wikimedia commons
과학자 미카일 로모노소프를 방문한 예카테리나 대제 ⓒ wikimedia commons

항상 둘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예카테리나와 다쉬코바의 근본적인 관계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것은 자식이나 수많은 연인들이 아닌 오랜 친구이자 조력자인 다쉬코바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당대에 이룰 수 있었던 여성 유대의 최대치를 실현하였고 그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 <러시아 제국의 두 학술원을 이끈 여성총재> 중, 한정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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