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잊혀진 여성들 여섯 번째 뉴스레터는 위생 관념과 간호학 그리고 통계학에까지 획기적이 변화를 이끈 나이팅게일 입니다. 업적만큼 강렬했던 나이팅게일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182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플로렌스는 의료인이자 통계적 수치를 그림으로 표현한 '로즈 다이어그램'을 만든 통계학자입니다. 간호의 근간을 뒤집고, 위생의 관념 또한 바꾸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플로렌스는 평생을 간호학을 대중화시키고자 학교를 세우고, 책을 쓰며 간호사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에게 주어진 소명은 재력가와 결혼하는 것이었습니다. 플로렌스는 인생을 살면서 모든 혼사와 청혼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말이죠. 당대 반항의 아이콘다운 면모라고 생각하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어떤 위인전에서도 플로렌스의 사랑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없습니다. 책에 묘사된 그에게 사랑이란 환자를 돌보는 것뿐이었죠. 이미 그의 업적은 너무나 유명하기에 오늘은 플로렌스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정말 플로렌스의 인생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플로렌스는 일생 동안 편지를 써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플로렌스의 사랑 이야기에는 그의 사촌이자 친한 친구였던 마리안느 니콜슨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죠. 당시에는 사촌 간의 결혼이 가능했기에 이런 거침없는 문구도 쓸 수 있었던 걸까요. ‘일생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은, 바로 그(마리안느)였다’라는 문장으로요. 마리안느가 플로렌스를 거절하자 충격을 받고 간호사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당시 간호사는 제대로 된 체계가 없는 하대받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육체의 괴로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잊기로 선택한 거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싶은 플로렌스와 그의 독립을 반대했던 양친으로 인해 플로렌스는 몸도 마음도 지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플로렌스는 고모이자 든든한 조력자였던 메리 나이팅게일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메리는 플로렌스를 지극 적성으로 보살폈고, 플로렌스는 그런 자신과 메리의 모습을 편지에 ‘두 명의 연인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플로렌스의 편지 편집자는 플로렌스가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확신했습니다.
플로렌스의 인생에 큰 영감을 주거나 기록에 남겨진 이는 항상 여성들이었습니다. 어쩌면 플로렌스는 이 세상에서 여성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은 것이 아닐까요?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된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온 기록이 아주 의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나는 영국의 백작과 시골 여인들과 같은 침대에서 살고 잤다.
나만큼 여성들 사이에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은 없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