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여성을 구원하라", 조선 최초의 여성 양의사 김점동

(김점동 金點童, 1877~1910)

2022.02.15 | 조회 2.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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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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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여덟 번째 뉴스레터는 네 개의 이름을 가진 조선 최초의 여성 양의사, 김점동 입니다. 한국 여성의 근대 전문직종 중 의료 분야가 가장 빨리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선의 여성들을 위해 헌신한 김점동이 있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김점동의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 여성신문
ⓒ 여성신문

1876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점동은 한국 최초 미국 유학생이자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입니다.

‘서양 의학을 배운 최초의 여성 의사'를 검색하면 김점동을 포함한 ‘김정동', ‘김에스더', ‘박에스더', 무려 네 개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글에서는 그가 온전하게 기억되도록 김점동이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한 김점동은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조선 여성들을 위해 굳건하게 공부를 해나갔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또한 위생 교육을 통해 여성들에게 건강한 삶을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화학당 시절의 김점동 ⓒ 당당뉴스
이화학당 시절의 김점동 ⓒ 당당뉴스

1887년, 이화학당 학장인 메리의 청원으로 조선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녀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여남이 서로 다르기에 일곱 살이 지나면 한 공간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유교적인 관습 때문에 여성 환자는 진료소에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화학당에 입학해 학당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나가던 김점동은 보구녀관의 책임자로서 방문한 로제타 셔우드의 통역과 진료 보조를 맡아 도왔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 여성신문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 여성신문

1894년, 의사의 꿈을 키워나가던 김점동은 로제타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김점동은 의과 대학 입학을 위해 뉴욕 리버티의 공립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냈고, 남다른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에도 무려 최연소의 나이로 입학했습니다. 여유라고는 없는 팍팍한 생활에도 김점동은 의사가 되기 위한 의지를 불태웠으나, 돌연 한 살배기 딸이 숨을 거뒀고 남편으로 결핵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타지에서 가족을 잃은 김점동에게 로제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으나 그는 큰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조선 여성들의 안타까운 삶을 돕고자 끝까지 공부해나갔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유학 시절의 김점동 ⓒ 여성신문
유학 시절의 김점동 ⓒ 여성신문

1900년, 조선 여성들을 위해 고향 땅으로 돌아온 김점동은 조선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1897년, 김점동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로제타는 평양의 여성 치료소인 ‘광혜여원'을 설립했고, 김점동은 로제타의 일을 이어받아 부임한 지 10개월 만에 3,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김점동의 존재는 여성들에게 말이 통하고 자신의 증상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의사이자 첫 의사였습니다. 김점동은 대표적인 산후병인 방광질루* 환자들을 진료하며, 인공관을 삽입하는 수술에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현대화된 기구나 시설은 없었지만, 김점동과 로제타의 수술 기술은 나날이 향상되어, 많은 여성들에게 건강한 삶을 되돌려 주었습니다.

*방광질루 : 지연분만 등의 이유로 방광과 질이 연결되는 경우를 말하며, 질에서 소변이 나오는 증상을 갖는다.

 

기홀병원과 광혜여원 ⓒ 여선교회전국연합회
기홀병원과 광혜여원 ⓒ 여선교회전국연합회

김점동은 진료소를 찾는 여성들에게 위생에 대해 강조하고, 건강 문제에 대한 강의도 진행하며 항상 여성의 계몽과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자들을 위한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맹인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여성들의 의료 교육을 위해 간호학교의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광혜여원에서 로제타 홀을 돕는 김점동 ⓒ 주간조선
광혜여원에서 로제타 홀을 돕는 김점동 ⓒ 주간조선

의료계의 한 획을 그은 김점동의 사망은 한국 의료계에 커다란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 여성 의료 분야는 침체기를 겪었으나 1918년에 한국에서 의학사 자격을 획득한 첫 여성 의사가 탄생하고, 1938년에는 첫 여성 전문의학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2006년, 김점동의 열성적인 활동과 공로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습니다.

 

“지금 이것을 포기하면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고, 최선을 다한 후에도 배울 수 없다면 그때 포기하겠다.

그 전에는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동시대에 등장한 독보적인 직종인 양의사, 그 시작을 밝힌 김점동에 이야기가 더 알고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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