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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서른여덞 번째 뉴스레터는 엘리자베스 여왕 2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0년 동안 왕위를 지켰던 영국의 상징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의 나이로 서거하였습니다.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영국 국민들의 조문 행렬은 아직도 이어지고, 전 세계적으로 슬픔과 애도의 물결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왕이 서거하자 트러스 총리는 공식 담화에서 여왕을 "영국의 기반이 된 바위"라고 칭하기도 했죠. 그의 말대로 여왕을 논하지 않고는 지금의 영국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영국인들에게 영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던 엘리자베스 여왕 2세에 대한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한 1952년은 이승만 대통령이 재임했던 시기로 여왕은 현재 윤석열 대통령까지 한국의 대통령 13명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여왕이 재임하는 동안 영국 총리는 14번이나 바뀌었습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여왕의 행동이나, 태도, 사생활 등에서 잡음이 들릴만도 한데 놀랍게도 여왕의 스캔들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파파라치 사건, 앤드루 왕자 성추문, 해리 왕자 부부의 결별 등 가족과 관련한 이슈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영국은 헌법에 의해 군주의 권력이 제한되어 정치 권한은 없는 입헌군주제를 따릅니다. 국가수반은 국왕이지만 행정수반은 총리에게 위임하도록 되어있죠. 그러나 국왕은 의회가 입법한 법안을 재가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재임기간 동안은 살인을 포함한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사법적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군대 지휘권, 해산권, 군수품 판매권, 의회 해산 권한, 템즈강 백조 소유권 등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죠. 하지만 여왕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며 공식석상에서 좀처럼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 지 않았습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26세의 나이로 여왕에 등극했습니다. 1992년 윈저성 화재 발생시 막대한 재건 비용을 영국 정부가 세금으로 충당하려한 것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엘리자베스는 '왕실도 세금을 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버킹엄 궁전을 일정 기간 개방에 입장료로 수익을 내기 시작해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왕실 유지 비용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 혈세 낭비라는 비난을 받기도했으나, 실제로 왕실 보유자산의 파생 수입과 관광, 미디어산업, 각종 로열티 등으로 매년 3조 원 가량의 수입으로 영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죠.
뉴질랜드·캐나다·호주 등 영연방 15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한 여왕은 2011년 영국 왕실 인사로는 100년 만에 아일랜드를 방문해 양국 간 화해의 역사를 썼다는 평을 들었으며, 여왕 즉위 전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공주 신분으로 구호품을 전달하는 영국 여자 국방군의 군용 트럭 운전사로 참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9월 8일(현지 시각) 96세의 일기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 절차가 현지 시간으로 9일 시작됐습니다. '유니콘 작전'으로 명명된 영국 왕실의 계획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여왕의 관이 옮겨지며 열흘 간 정해진 장소에서 장례미사와 조문, 거대한 국장 행사까지 치르면 여왕은 영면에 들게 되는 것인데요. 국가 통합의 상징적 존재라는 역할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사로 군주제 존속을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며 대중과 영국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 이후의 국제 정세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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