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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마리 퀴리가 대표적으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있었던 여성 수상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고요.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는 노벨 화학상 최초로 공동 수상자가 모두 여성이었다는 것 아시나요? 잊혀진 여성들 서른아홉 번째 뉴스레터는 COVID 19로 한차례 더 주목을 받은 유전자 가위를 발견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누엘 샤르팡티에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기술인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 유전자 가위와 두 과학자들의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나는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에마누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는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마리 퀴리 대학을 졸업하고,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5년간의 연수 기간을 걸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그는, 화려한 이력과 연구 경력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과학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항상 부족한 연구비와 연구를 수주 받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과학자의 일을 그만두고 음식점을 차릴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는 그 세월을 회상하며 "나는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크리스퍼-카스9와 보조 RNA 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고, 스웨덴 Umea 미생물 연구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꾸립니다. 그리고 과학잡지인 네이처지에 첫 연구성과가 출판 되던 해,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제니퍼는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생화학 및 분자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RNA 분자의 3차원 구조를 추론하고자 노력하던 중, 특정 RNA 에 의한 유전 정보 제어를 조사하면서 크리스퍼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과학자는 각자 가지고 있던 퍼즐을 맞춰가며 함께 연구하였고, 크리스퍼와 보조 RNA 를 결합하고 이를 카스9과 결합해 원하는 DNA 를 자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게놈 공학 지형의 변화고 질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연구는 2012년 6월 사이언스 잡지에 출판됩니다.
논란의 중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는 원하는 DNA 를 자유롭게 끊어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입니다. 의학 뿐 아니라 농업 그리고 생물학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이죠. 난치병을 치료하고 유전 공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크리스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DNA 코드가 생명체의 사용 설명서라고 할 때, 이 코드의 문자가 때때로 변하고 이로인해 질병이 생기곤 합니다. 크리스퍼는 이 코드의 문자를 되돌릴 수 있는 도구이고, 이를 위해 카스9 이라는 단백질을 사용해 특정 DNA 조각을 찾아가 자릅니다. 그리고 이 카스9에는 RNA 라는 유전자 염기서열과 일치하는 GPS 가 들어있습니다. 이 GPS, 즉 RNA 덕분에 카스9이 DNA 에서 바꾸고자 하는 특정 조각에 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카스9이 DNA 의 정확한 지점에 결합하면 가위처럼 DNA 를 절단합니다. 그리고 절단 후 DNA 코드에서 특정 문자를 제거하거나 추가 또는 변경하게 됩니다. 이때 교정할 수 있는 유전 정보는 눈·피부 색깔과 같은 육체적인 특징부터 특정 질환의 발병위험까지 넓은 범위에 이릅니다.
크리스퍼라는 기술은 1990년대부터 개념이 잡히고 연구되어 왔지만, 에마누엘과 제니퍼가 발견한 크리스퍼-카스9은 이전의 다른 편집기술보다 간단하고 빠를 뿐 아니라, 저렴하고 정확하여 과학계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유전자 편집을 시행하는 과학자들이 크리스퍼-카스9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대표적으로 농업계에서는 곰팡이, 해충, 가뭄을 견디는 농작물을 만들었고, 선호되는 특성을 가진 가축을 만드는 등 크리스퍼-카스9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교정이라는 개념은 윤리적 논란을 항상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유전병 치료 위해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가 사용 될 경우 또는 지능과 같은 비질병 유전 정보를 수정하는 데에 크리스퍼가 사용될 경우 등이 대표적인 문제이죠. 제니퍼는 2015년에 인간 게놈 편집에 대한 중단을 촉구하는 조직을 만들고, 동료들과 함께 인간 배아 게놈 보호에 대한 즉각적 조치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중국 과학자들은 크리스퍼-카스9을 통해 인간 배아 게놈을 변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인간 게놈에 대한 논란 외에도 크리스퍼를 사용해 유전자 정보를 변경한 작물을 GMO로 구분해야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대두되는 등, 크리스퍼는 그 강력한 영향력만큼 계속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COVID19 검사에 활용한 크리스퍼
크리스퍼는 기존 코로나19 진단을 위해 걸리던 24시간을 5분으로 단축시키는 데 활용되어 더욱 큰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기 코로나19 진단법에 크리스퍼를 활용한 다른 검사법들이 있었으나, 제니퍼가 이끄는 연구팀이 새로운 크리스퍼 진단법을 개발하여 비용 및 시간을 큰 폭으로 절감시켰습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진단에 크리스퍼가 활용되어, 노벨상을 받는 데에 다른 기술 및 연구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 참고)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할 두 과학자
"우리의 수상 소식이 과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세지가 되길 바란다"
"이번 수상을 통해 여성 과학자들도 노벨상을 탈 수 있고,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에 깊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에마누엘 교수가 전한 노벨 화학상 수상 소감입니다. 혜성처럼 크리스퍼 학계에 등장한 무명 여성 과학자였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을 향한 그의 응원은 특별히 여운이 남습니다.
제니퍼 교수는 크리스퍼가 포궁경부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했고, 과학계의 여성과 남성의 적절한 균형을 위해 여성 동료들의 작업을 지원하고 강조하는 일에 일부러 나선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두 과학자 모두 여성 연구원 및 과학자들이 처한 장벽과 괴롭힘을 이야기하며 여성을 향한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더욱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수상 목록은 특이한 것이 아니지만, 2020년 두 여성 수상자만 존재했던 노벨 화학상은 특별하고 특이한 경우라고 하죠. 선배 여성 과학자들을 따라 앞으로도 더 많은 여성 수상자가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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