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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U] 우리가 알아야 할 분노의 참혹성에 관하여

ep.31 오늘의 콘텐츠: 연극 <일리아드>

2024.07.12 | 조회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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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구독자! 너무 습한 요즘 날씨… 다들 잘 이겨내고 있니? 나는 집에서 이 더위를 참지 못할 때마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극장 가서 관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농담이고~ (아님)

이렇게 습한 날씨가 되면 사람들의 불쾌지수가 올라가잖아. 그러면 사람이 쉽게 분노하게 되지. 하지만 사실 요즘 날씨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분노와 다툼들이 일어나고 있어. 작게는 이웃 간의 층간소음 싸움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나라 간의 전쟁까지.

이번에 내가 위메프 특가로 충동관극한 연극 <일리아드>는 우리의 분노가 끝내 놓아버려져 세상의 싸움과 전쟁이 없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진행돼. 이 연극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줄게.

 


 

*오늘의 후기는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유의해 줘!*

 

연극 <일리아드>한 명의 내레이터가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공간에서 반복하여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는 극이야. 내레이터는 기원전 13세기 그리스와 트로이의 10년간의 전쟁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지. 트로이목마 이야기가 나오는 그 전쟁, 다들 알지? 다만, 이 이야기는 트로이 목마가 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만 들려주긴 하지만 말이야.

내레이터는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 각 진영의 대표되는 인물인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보여줘. 또 관련된 다른 전쟁 용사들, 전쟁에 개입한 신들의 시점도 함께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전쟁에 동원된 이름 없는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전달해줌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말해.

 

2021년 초연 <일리아드> 공연 사진
2021년 초연 <일리아드> 공연 사진

극을 보고 다른 분들의 후기를 많이 찾아볼 수밖에 없었어. 가벼운 극이 아닌지라 이 극의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설명이 매우 친절한 극은 아니기에 내가 이해한 방향성이 맞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어. 그렇게 본 후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바로 “이 이야기는 아킬레스가 분노를 놓아버리는 이야기이다” 였어.

극 중에서 아킬레스는 자기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크게 분노하여 복수하지만, 헥토르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는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스를 찾아와서 헥토르를 그만 놓아주고 시신만이라도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해. 결국 아킬레스는 분노를 멈추고 그에게 헥토르 시신을 넘겨줘. 심지어 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전쟁을 멈추겠다는 배려까지 베풀지.

내레이터는 이 장면을 이야기 전달한 뒤, “아킬레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라고 계속 중얼거려. (정확한 대사는 아닐 수 있음을 미리 전달해) 극에선 끝까지 아킬레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말해주지 않아. 내레이터처럼 우리도 이 물음을 계속 곱씹으면서 분노를 놓아버리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 극을 진행하는 3명의 내레이터 중 난 '황석정' 배우로 관극했어. 세 분 다 후기가 너무 좋아서 고민했지만, 여성 중년 배우인 황석정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를 눈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컸어. 그리고 후회는 없었지.

사실 나는 트로이 전쟁에 대해 내가 아는 내용이 나올수록 살짝 집중력이 흐려졌어. 오히려 난 극에서는 아는 얘기가 나오면 집중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니까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되더라고…. 그리고 극 자체도 계속 반복되는 분노, 죽음, 전쟁을 말하기 때문에 꽤 피로도가 쌓이는 극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석정 배우님이 연기력으로 날 휘어잡아서 번쩍 잠을 깨우게 만들어줬어.

그리고 황석정 배우가 연기한 내레이터는 매우 차분하다고 느껴졌어.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야기를 했지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초연해진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지. 하지만 이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과도하게 몰입하여 울부짖고 소리 지르는 모습, 그리고 급히 정신을 차리며 미안하다고 이래서 이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고스란히 전달되었어. 그런데도 인류애를 잃지 않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가 이제는 분노를 놓아버리고 전쟁을, 이 노래를 멈춰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어. 어떻게 보면 사실 기대가 높진 않지. 하지만 간절하게 관객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모습이 와닿았던 것 같아.

 

내레이터를 연기하는 세 명의 배우는 각기 다른 인물을 컨셉으로 삼는 걸로 알고 있어. 그래서 의상과 소품을 배우마다 다르게 사용하는데, 그중에서도 배우들의 대표적인 소품으로는 김종구 배우는 동전, 최재웅 배우는 사과, 황석정 배우는 타로를 말할 수 있어.

배우들의 컨셉은 관객이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은데, 황석정 배우는 ‘카산드라’의 컨셉을 더 가져와 연기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보았어.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 왕의 딸이자 트로이 영웅 헥토르와 남매사이인 인물이야. 아폴론에게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뺴앗긴 예언자이기도 하지.

개인적으로 카산드라 컨셉을 가져온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황석정 배우가 특히나 헥토르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극을 보는 내내 ‘왜 내레이터가 자꾸 헥토르를 조금 더 옹호하는 느낌이 들까?’ 싶었지. 나중에 그녀가 카산드라의 컨셉을 차용해서 연기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내가 극을 제대로 봤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쫙 돋았어.

 

그리고 내레이터를 도와 함께 이야기를 진행하는 뮤즈라는 존재가 있어. 한 명의 내레이터마다 페어인 뮤즈가 고정되어 있다고 해. 나는 황석정 배우로 보았으니 페어인 고의석 뮤즈를 보게 되었지. 뮤즈마다 연주하는 악기가 다른데 고의석 뮤즈의 기타 연주는 이야기와 같이 진행될 때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지더라고! 또 내레이터와 함께 연기를 같이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귀여우셔서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했어.

초연 때는 하프를 연주하는 뮤즈도 있었다고 하는데, 하프랑 어우러진 <일리아드>는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해😵!

 

2021년 초연 <일리아드> 공연 사진
2021년 초연 <일리아드> 공연 사진

연출에서도 좋은 부분이 많았어. 빛을 쏴서 배우의 그림자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부분 등이 흥미로웠지. 또 배우가 관객 입장하기 전부터 관객이 다 나간 후까지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점이 정말 내레이터가 이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어서 좋았어.

그중에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내레이터가 지금까지 발생한 세계의 전쟁, 전염병 등의 역사를 줄줄 읊어나갈 때였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나열과 함께 무대의 바닥은 붉은 물결로 가득 채워져 가. 마치 그 역사 속에서 흘린 핏물이 바다가 되어 흐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줘서 매우 섬뜩했어. 그리고 2021년 초연 이후 2024년에 재연을 할 때 추가된 역사(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가 있다는 점 또한 사실 매우 마음이 무거워지는 점이야.

 

<일리아드>를 소개하는 문구 중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DIMF 창작지원 극으로 대구에서 초연을 올린 <시지프스>가 떠올랐어. 극이 주는 메시지는 좀 다르지만, 이 극 역시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말해주는 이야기가 진행돼. 그리고 <일리아드>의 무대를 보며 전쟁이 끝난 뒤 황폐해진 공간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시지프스>의 무대 컨셉 역시 멸망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분위기나 배경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어. 

 

비극이 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노래를 반복해서 부른다는 점에서 뮤지컬 <하데스타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오늘이 바로 <하데스타운> 재연 개막날이네! 10월 16일까지 공연한다고 하니까 다들 이 뮤지컬도 놓치지 말고 관람하길 바랄게!

 

이번에 돌아온 연극 <일리아드>는 9월 8일까지 해. 그리고 예스24아트 2관에서 진행하는데, 난 2층 1열에서 봤는데 정말 시야가 좋았어! 오히려 2층에서 봐서 무대 전체가 확 눈에 들어온 것도 있었지. 배우분이 연기하면서 2층도 많이 봐주시기 때문에 소외감 같은 것도 전혀 들지 않았어.

또 이 극이 주는 메시지가 좋은 것과 별개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 있는 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시 오늘의 콘텐츠로 이 극을 *찍먹 해보고 싶다면 가격도 저렴한 2층 S석에서 관극해 보는 걸 추천해!

 

*찍먹: ‘찍어서 먹어 보다’의 줄임말. 이 극이 취향일지 한 번 가볍게 관극해 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

 

오늘의 <일리아드> 후기 및 추천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할게! 다음 주 퍼니의 이야기가 구독자을 찾아가기 전까지 다들 더운 여름 잘 이겨내길 바랄게! 안녕🍉

 

융니의 별점 ⭐⭐⭐⭐/2 (3.5) “이 노래가 마지막이 되길"

 

 


 

아무코멘트

퍼니🫠 : 융니가 뮤지컬을 주제로 소개해줄 때마다 정말 소재의 한계가 없다고 느꼈어! 이번엔 그리스 시대라니..!! 진행 방식도 너무 독특하고 특히 내레이터와 짝을 이루는 ‘뮤즈’의 존재가 신기했던 것 같아. 나와 동년배들에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로 그 시대의 이야기를 접했을 텐데, 트로이 전쟁은 10~14권의 내용에 해당한다고 해. 참고하길 바라😉
씨니🐋 : 내가 관심 있을만한 주제를 다루는 연극이라 흥미가 갔어! 우리나라도 침략 때문에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나라잖아. 최근 했던 대하 사극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생각이 났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말도 같이 떠오르더라고. 드라마 '더 글로리'와 '모범택시'도 생각이 나더라. 연극을 재밌게 봤다면 연극의 연장선으로 한 번쯤 보면 좋을 것 같아!

 

 

서른한 번째 뉴스레터는 여기서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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