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구독자! 긴 추석 연휴 잘 보냈니?
다들 이렇게 긴 연휴가 생기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하잖아. 나는 시간이 없어서 못 봤던 극을 봤어. 주변 연뮤덕들을 보니까 다들 그러더라고. (웃음)
그렇게 내가 보고 온 극은 바로 <프리마 파시>야. 구독자도 한 번은 꼭 이 극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아무콘텐츠로 가지고 오게 됐어. 그럼 바로 시작해 볼게.

연극 <프리마 파시>는 늘 승소하며 법정을 지배하던 변호사 ‘테사’가 성폭행 피해자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극이야.
여기서 ‘프리마 파시’는 라틴어로 “언뜻 보기에도, 처음 보기에는, 첫인상으로는”이라는 뜻이고, 법적 맥락에서는 “일단 법원에 제시된 증거만 놓고 볼 때, 소송을 계속할 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초기 심사”를 뜻한다고 해. 그래서인지 <프리마 마시>는 막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파트1과 2로 나뉘어져 있어. 파트1에서는 프리마 파시 심사를 통해 소송을 계속할 만큼의 증거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 보게 돼. 파트2에서는 본격적으로 법률적 논점, 증인 진술 등을 통해 법적 논쟁을 하게 되지.

<프리마 마시>는 1인극으로 진행되고, 테사 역으로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 배우가 캐스팅되었어. 캐스팅 라인업을 들었을 때 들었을 때 진짜 미쳤다고 생각했지. 이 베테랑 배우들이 또 어떤 연기로 나를 울릴까 싶어서…. 그중에서 나는 차지연 배우로 보게 됐어.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극이 진행되는데, 2시간이나 흘렀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 정도로 몰입해서 봤어.

극의 내용에 대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볼게. 테사는 형법 변호사야. 그녀는 스스로를 택시 정거장에 비유하며 자신이 손님을 택할 수 없다고 해. 고객들이 오는 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더 그럴듯하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러라고 말하지.

그녀는 시골 마을 출신으로 법대를 나와 성공한 케이스야. 법대를 처음 들어선 순간엔 부유한 주변 동기들을 보며 주눅이 들기도 했어. 하지만 노동자 계층 출신이라는 한계를 딛고 성공한 변호사가 된 그녀는, 재판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법률 시스템은 완벽하다고 믿지. 만약 범죄자가 풀려나게 된다면, 그건 판정을 내린 배심원과 판사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만 같던 그때, 그녀는 한순간에 성폭행 피해자가 돼. 그녀는 강간당한 직후 믿기지 않는 사실에, 수치를 느끼며 바로 몸을 씻어버려. 그녀는 수많은 성범죄 사건을 보고 들어 왔어. 하지만 그녀는 샤워를 하고 경찰서로 가기까지, 그리고 재판을 준비하는 내내 생각해. “내가 잘못한 건가?”, “정말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게 맞아?”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재판을 기다려 결국 재판장에 피해자의 신분으로 서게 된 테사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 사실 테사가 성폭행당하는 순간을 보여줄 때부터 문을 열고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었어. 하지만 봐야 했어. 테사가 마음을 다잡아 재판장에 서서 말하는 것들을 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저는 지금,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법정 변호사이자, 피해자이자, 증인으로 선 테사는 변호사로서의 자기 경험을 토대로 법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해. 법이 요구하는 방식에 맞지 않으면 진실로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그리고 남성에 의해 제정된 법적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나는 테사의 이야기를 통해 성폭행 이후 이루어지는 모든 절차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배제되고 상처받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어. 특히 테사가 가해자는 저렇게 편하게 앉아서 변호사의 변호를 받고 있는데, 왜 피해자인 나는 이렇게 죄인처럼 증인석에 앉아서 해명해야 하는지 소리칠 때 더 크게 느껴졌어.

내가 아는 건 오직 어딘가, 어느 때,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셋 중에 하나는 테사. 이건 셋 중에 한 명은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말이야. 영국의 통계에 따르면 셋 중 한 명은 성희롱 또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 법대 입학식에서 셋 중 한 명만이 이긴다는 말에 악착같이 노력하던 테사는 결국 다른 의미에서 셋 중 한 명이 되었지.
극을 보다가 뛰쳐나오고 싶었다는 내 말에 누군가는 그러면 왜 보러 갔냐고 물어. 시놉시스만 들어도 너무 가슴이 아플 거 같아서 별로 보고 싶지 않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냐.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공감할 수 있는 우리가 계속 보고 들어주어야 이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 더 이어지지 않게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거든.
한 번 보기 시작한 것은 보지 않을 순 없어. 살아가다 보면 내 삶 바로 앞에 있는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많은 것을 못 본 척하며 살아가게 되잖아. 그런데 이렇게라도 보면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을 못 본 척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시선들이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바뀌지 않을까?
나는 이 변화의 움직임에 구독자도 함께 했으면 좋겠어. <프리마 파시>는 11월 2일까지 하거든. 그래서 이제 약 한 달 정도의 기간이 남았어. 그 기간에 한 번은 꼭 보면 좋을 거 같아😄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다음에는 다른 추천 글로 돌아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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