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에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원제: How to take smart notes)을 다시 읽으며 리뷰했다. 처음 읽었을 때 하이라이트 했던 부분을 다시 읽으며 손글씨로 메모하면서 읽었다. 이후 글쓰기 방 멤버들과 함께 독서 토론을 하며 더 깊이 사유하고 다른 관점도 가질 수 있었다. 책에 나오는 제텔카스텐의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요약하고 주관적인 해석을 달아본다.
1. 유일한 관건은 글쓰기
첫 번째 원칙인 ‘유일한 관건은 글쓰기’에 관해서는 ‘OO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는 듯이’란 글에서 그 원인을 분석했었다. 숀케 아렌스 교수는 ‘마치 글쓰기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는 듯이’ 마음을 바꾸기만 해도 독서법, 사고방식과 같은 우리의 지적 능력이 모두 향상될 거라 말한다. 그 이유는 윗글에서 설명했으니 생략하고 이글에서는 ‘의도적으로 하는 것’의 중요성을 얘기해 본다.
이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에 관해서는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의 저서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는 한국에 '1만 시간의 법칙'을 널리 알렸지만, 일부 언론들은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했다. <아웃라이어>가 성공에 있어 중요한 것이 환경과 그에 따른 기회에 포착인데 일을 단순히 1만 시간 노력하면 된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한 측면이 있다.
이에 반해 앤더스 에릭슨은 재능이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서 누구나 개발이 가능하고 제대로 설계된 방식으로 훈련해야 최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아렌스 교수가 <제텔카스텐>에서 말하듯이 무작정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화된 방법으로 스마트하게 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제텔카스텐 메모를 할 때 그냥 메모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락지대(comfort zone)를 벗어나는 스마트한 메모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마치 글쓰기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는 듯이’ 생각하는 마인드셋을 갖는 것이다. 즉, 인풋을 하는 과정에서 미리 아웃풋을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피드백 루프가 발생하면서 인풋 자체가 질적으로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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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함
사람들은 보통 커다란 변화는 그만큼 커다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힘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아렌스 교수는 피터 드러커가 세계 경제사를 바꾼 대혁신적 발명품으로 칭송한 ‘선적 컨테이너’ 사례들 들고 있다. 메모 상자(제텔카스텐)를 학계의 선적 컨테이너에 비유하고 있다.
컨테이너를 처음 창안한 말콤 맥린(Malcom McLean)은 그저 욕망에 충실했다. 세계 무역 구도를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전직 트럭 운전사였던 그는 매번 붐비는 해안 고속도로에 갇혀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만들었지만, 세계 물류 역사를 바꿨다.
티아고 포르테도 말했듯이 제텔카스텐이라는 '두 번째 뇌'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고, 생물학적 첫 번째 뇌는 생각에 집중하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메모를 하지 않고 선적 컨테이너와 같이 의도적으로 규격화한 메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렌스 교수는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은 3가지 메모 유형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 임시 메모(fleeting notes)
임시 메모는 오로지 정보를 상기시키는 역할만 하기에 어떤 식으로든 써도 되고 하루나 이틀 뒤면 폐기한다.
2. 영구보관용 메모(permanent notes)
영구 보관용 메모는 절대 버리지 않는 메모이며 필요한 정보를 영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는다. 늘 같은 곳에, 같은 식으로 저장하는데, 바로 인쇄가 가능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록하여 서지정보 시스템이나 메모 상자에 저장한다.
3. 프로젝트 메모(project notes)
프로젝트 메모는 특정한 단 한 가지 프로젝트만 관련된 메모다. 프로젝트별 폴더에 보관하며, 프로젝트 완료 후에 폐기할 수도 있고 보관할 수도 있다.
아렌스 교수는 이렇게 3가지 유형으로 메모를 잘 구분하여야 메모 상자 안에 임계치에 달하는 아이디어가 모일 수 있다고 말한다.
임시 메모가 유용하려면 48시간 내에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영구보관용 메모로 변환해야 한다. 단순하게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라 미래의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추가한다.
흥미로운 점은 제텔카스텐 창시자 루만 교수가 그가 읽은 텍스트에 밑줄을 긋거나 여백에 코멘트를 쓴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텍스트를 읽다가 관심이 가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별도의 종이에 짧게 메모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루만 교수의 방법을 똑같이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이나 아티클의 여백에 메모하는 것은 여전히 유용하다. 단지 이를 텍스트에 남겨 두지 않고 별도의 노트앱이나 종이에 적는 것이 중요하다. 이 메모를 모듈화해서 쉽게 재활용하고 연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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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기
세 번째 원칙을 요약하면, 메모를 모아 상향식 글쓰기를 하라는 것이다.우리가 하는 글쓰기 순서는 보통 비슷하다. 무엇을 쓸 것인지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세우고, 글을 쓰는 것이다. 숀케 아렌스 교수는 이런 선형적이고 순차적인 글쓰기에 반기를 든다. 즉 백지에서 시작하여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서 글을 써내려 가는 하향식 글쓰기가 아니라, 이미 쌓아놓은 '메모 더미(clusters)'가 어디 있는지 메모 상자(노트 앱)를 살펴보면, 주제가 자연스럽게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연결된 주제들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은 평소에 관심 가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글쓰기가 선형적 과정이 아닌 순환적 과정이 된다. 즉, 글을 쓰면서 생각을 발전시키면서 계속 글을 써 나가는 방법이다.
루만 교수가 유일하게 제텔카스텐에 관해서 쓴 글인 ‘메모 상자(Slip Box)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챗GPT와 대화하듯 메모 상자와 관계를 맺고 커뮤니케이션하라고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철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핵심 질문 ‘왜?, 어떻게?, 무엇을?’을 옵시디언 노트 템플릿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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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흐름을 타고 나아가기
루만 교수가 그렇게 다작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자신은 한 번도 억지로 일 한 적이 없으며 자신에게 쉽게 느껴지는 일만 했다는 것이다.
타아고 포르테가 아버지에게 배웠다는 원칙 ‘아이디어를 계속 움직여라(Keep Your Ideas Moving)’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화가였는데 어떤 부분의 그림을 그릴 때 어려움에 부딪히면 좌절하지 않고 다른 것을 그렸다고 한다. 막혀서 좌절하지 마라. 뭔가에 막혔을 때는 잠시 떠나서 다른 것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라. 흐르는 강물이 맑은 것처럼 흐르는 것이 좋다. 특정 결과를 얻는 것보다 흐름(몰입, 즐거움, 창의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외부의 보상을 이용한 동기부여가 아닌, 작업 자체를 보상이라 여길 수 있는 내적 동기가 생겨 지속 가능하고 특별한 기쁨을 주는 노트 쓰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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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및 출처
제텔카스텐 - 예스24
1만 시간의 재발견 - 예스24
세계 역사 바꾼 컨테이너…1956년 말콤 맥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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