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앤소장입니다.
오늘은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관장을 역임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정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는 15년 이상 대중과 과학을 연결하는 일을 해왔고, 과학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과학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통찰력 있게 해석하는 능력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고 있죠.
이번 인터뷰에서는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모가 흔히 하는 치명적인 실수는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특히 'AI가 모든 것을 해주는 시대에 왜 국영수가 오히려 더 중요해졌는가'라는 역설적인 통찰이 인상적입니다.
출처는 유튜브 채널 '미래엔', 2025년 12월 16일 게시된 [디지털 초코] "AI시대, 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 (이정모 前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을 바탕으로 가공하였습니다.

Q. 20세기와 21세기, 교육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20세기는 문해력만 있으면 충분한 시대였어요.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능력만 있으면 교양인으로 문화인으로 살 수 있었죠. 제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분은 아니었지만, 문해력이 뛰어나셔서 누가 봐도 교양인이었어요.
그런데 21세기는 다릅니다. 문해력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과학문해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죠. 많은 분들이 이 말을 들으면 두려워하세요. "과학 지식이 필요한 거 아니야? 그 많은 과학 지식을 어떻게 다 쫓아가지?" 하고 걱정하시는데요.
과학문해력이라고 해서 과학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 많은 지식을 어떻게 쫓아가겠어요? 대학 교수들도 옆방 교수님이 뭐 하는지 몰라요. 너무 깊고 빠르게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여쭤보면 다들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어. 그런데 왜 우리 애가 중학생만 돼도 학교 시험 공부를 도와주지 못하지?" 많은 분들이 자기가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게 아니에요. 잊어버린 게 아니라 달라진 겁니다.
저는 생물학과를 나왔어요. DNA, RNA, 단백질을 연구하는 거죠. 하지만 DNA 구조가 어떤지 몰랐습니다. 대학 가서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이중나선 구조를 이미 알고 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아데닌과 티민 사이에는 이중결합, 구아닌과 시토신 사이에는 삼중결합, 이것만 알아도 좋은 대학 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근데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그걸 이미 알고 있죠.
블랙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블랙홀이란 말을 대학원 때 처음 들어봤어요. 그것도 학교 수업이 아니고 KBS 9시 뉴스에서요. 스티븐 호킹 박사가 『시간의 역사』라는 책을 썼는데, 미국과 영국에서 베스트셀러라는 내용이었죠. 근데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그 말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유치원생 여자아이가 이사를 왔어요. 매일 친구들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데 그 여자아이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그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고백하더군요. "너는 내 마음에 블랙홀이야"라고요. 저는 대학원 때 처음 들어본 이야기를 요즘 아이들은 은유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Q. 2019년 수능 국어 문제가 왜 그렇게 논란이 됐나요? 그 문제가 교육에 주는 메시지가 있나요?
2019학년도 수능에서 오답률이 제일 높았던 국어 문제가 있었어요. 31번 문제였는데, 만유인력에 관한 지문이었죠. 당시 손석희 씨가 뉴스에서 화를 냈습니다. "우리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언제 이 많은 지문을 읽고 이 어려운 문제를 풀니까?"
수능 출제자들이 하도 욕을 먹으니까, 제가 칼럼에 "이게 좋은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어 문제는 맞다"라고 변호하는 글을 썼어요. 그랬더니 제 딸이 화를 내더라고요. 악플이 엄청났거든요. 제 동기들도 섭섭함을 표현했죠.
저는 이 문제가 좋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수능 국어는 문해력을 평가하는 건데, 그 보기에 나온 문장이 너무 형편없었거든요. 또 순수하게 국어 문제로 풀려면 6분은 걸리는데, 물리 덕후들은 40초면 풀 수 있었어요. 공정하지 않았죠.
그런데 특이한 건, 어려운 경제나 예술 지문을 틀리면 사람들은 반성해요. "아이고, 내가 경제 공부 좀 할 걸" 하면서요. 그런데 과학 지문이 어려우면 반성하지 않고 화를 냅니다. "도대체 이거 어떻게 풀라는 거야?" 하고요.
저는 가장 큰 문제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해설 기사는 평소 경제학에 관심 없던 사람도 다 읽고 이해할 수 있어요. 자연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죠. 자연어는 태어나서 학원 안 다니고 엄마 아빠랑 이야기하면서 저절로 배운 언어잖아요. 그런데 과학은 자연어가 아닙니다. 수학이라고 하는 비자연어로 되어 있죠.
만유인력 공식을 보여드리면 많은 분들이 화를 냅니다. 그런데 이 공식 하나 가지고 우린 달에도 다녀왔습니다. 말로 풀면 어떨까요? "모든 점질량은 다른 모든 점질량을 힘으로 끌어당긴다. 이 힘은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더 어렵습니다. 과학은 과학의 언어로 풀어야지 자연어로 풀면 더 어려워요.
전 세계 아이들은 똑같은 그림으로 만유인력을 배웁니다. 떨어지는 사과 나무 밑에 아이작 뉴턴이 있는 그림이죠. 그런데 거기에 만유인력이 들어 있나요? 없습니다. 왜요? 수학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중학교 가서 F=ma를 배운 다음에야 우리는 물리학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Q.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게 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GPT는 이미 사람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꽤 예전 버전인 GPT-5 프리뷰가 미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SAT 시험을 봤는데, 1등급을 받았어요. 뛰어난 아이들보다 GPT가 더 좋은 성적을 얻고 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의사들보다도, 정신과 의사보다도 GPT가 더 정확한 진단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뛰어나다는 거죠. 그런데 단순히 어떤 지식뿐만 아니에요. 예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예전에 한번 GPT로 그림을 그려봤어요. 달리(DALL-E)로 그려본 거죠.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었어요. 공룡을 그렸는데 사지가 여섯 개더라고요. 곤충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엉터리였어요.
2023년에 제가 시도했던 건데, 2025년이 되니까 완전히 달라졌어요. 요즘 여러분 다 해보셨을 겁니다. 지브리풍 그림이 한때 인기 있었잖아요. 나도 한번 해봤어요. 예전에 실패했던 걸 똑같은 사진을 주고서 이번에는 "고흐풍으로 그려봐" 했더니 제법 고흐답게 그려줍니다.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면 남들이 다 하는 지브리풍과 피카소풍으로도 해봤죠. 마음에 듭니다. 이 정도 되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정말 분노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딸에게 물어봤습니다. "너희들은 어떠냐?" 그랬더니 전 세계의 화가들이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서로 해본답니다. 요즘은 K컬처가 인기잖아요. 외국에 있는 화가들도 한국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생각이 났어요. 내가 아는 한국 화가는 김홍도, 신윤복 정도밖에 없어서 우리 가족 사진을 주고서 "김홍도풍으로 해봐" 했습니다. 잘 그려주는 것 같지만 되게 안타까웠어요. 뭐가 제일 문제냐면 제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어요. 아직 이것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구나 생각했던 거죠.
요즘 대학생들이 GPT 가지고 숙제 많이 합니다. 처음에는 GPT가 나온다면 리포트 못 내서 F받는 학생들은 없었어요. 어쨌든 뱉어주니까 내면 됐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제출만 해도 C마이너스는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D마이너스도 못 받습니다. 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2024년 5월에 한때 미국에서 GPT가 다운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미국의 모든 학생들이 리포트를 제출해야 될 때였거든요. 다들 거기에 매달렸으니까 GPT가 감당을 못 한 거예요.
근데 지금은 GPT를 쓸 때와 안 쓸 때 차이가 어떨까요? 옛날에는 글 잘 쓴 사람과 못 쓴 사람 사이가 이만큼 났어요. 지금은 못 쓴 사람이 없죠. 다 조금씩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잘 쓴 사람은 저기까지 올라가 있어요.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제가 1년 동안 경향신문에 '멸종 열전'이라는 글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한번은 '코끼리새'라는 주제로 GPT를 사용해봤습니다. GPT에게 "난 이런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거야. 이런 내용이 있으면 좋겠어. 너 한번 구조를 잡아볼래?" 했더니 구조를 쫙 짜주더라고요.
근데 구조가 유치했어요. "이렇게 되면 좀 안 되지 않겠어? 좀 문학적인 요소로 시작해서 중간에 유머도 있어야 되고 끝에는 뭔가 감동이 있어야 될 것 같아" 해서 구조 짜는 데 한 두 시간쯤 걸리더라고요.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죠.
그다음에 각 소제목에 대해서 문단마다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써줘요.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이걸 고치자" "고치자" 했어요. 총 여섯 시간 걸린 다음에는 완벽한 글을 작성해서 실제로 신문에 그대로 실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안 합니다. 왜? 6시간 걸렸기 때문이죠. 저는 2시간이면 이걸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그때 6시간 걸렸어요. 저는 작가입니다. 작가니까 되는 거예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신문의 1면 기사를 쓸 때 6시간에 쓸 수 있을까요? 6시간이 아니라 6일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가 뭐냐면, 모든 사람들이 글쓰기의 장벽이 낮아졌다는 겁니다. 훨씬 더 잘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거죠. GPT를 잘 사용하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잘 쓰고 어떤 사람 못 쓰고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Q. 부모가 자신의 경험으로 자녀에게 조언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점점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윌리엄 깁슨이라고 하는 SF 작가가 이런 이야기 했습니다. "미래는 이미 여기에 있다. 그건 단지 매우 고르게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신문 기사 하나 보여드릴게요. 어떤 여성이 이런 거예요. "여러분들은 미래에는 주머니 속에 전화기를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거예요." 폴더폰이잖아요. 너무나 뻔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이때 신문의 날짜가 1963년 4월 18일입니다. 1963년에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뭐라 그랬을까요? 되게 놀렸을 거예요. "말이 돼? 전화기는 벽에 확 붙어 있어야 되는 건데" 이런 거 있죠.
신문 만화 하나 더 볼까요? "우리가 모두 주머니 전화를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기차를 타갈 때도 따르릉 따르릉. 양손이 가득 찰 때도 따르릉 따르릉. 비가 올 때도 "여보세요, 누구세요?" 음악회에 갔을 때도 따르릉. 아기를 봤을 때도 따르릉. 결혼을 할 때도 따르릉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에요. 근데 이때가 언제냐? 1919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3·1운동 때 유관순 누나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때쯤인 거죠.
엄청나게 빨리 결국 일어나고 만다는 거예요. 속도는 되게 빠릅니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이런 만화를 그렸습니다. "35년 후인 2000년에 세상은 어떤 모양일까?" 그 내용이 어떤 게 있을까요?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파 신문(인터넷 신문), 전기 자동차, 로봇 청소기, 집에서 원격 진료, 재택수업, 오늘의 메뉴(유튜브 레시피), 소형 TV 전화기(스마트폰). 여기에 있는 것 중에 안 이루어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이루어졌어요. 로켓 타고 달나라 가는 거 빼고 다 된 거죠.
그런데 똑같은 화백에게 2020년에 30년 후인 2050년을 그리라고 했어요. 근데 오히려 이때는 별거 없는 것 같아요. 다 이루어질 만한 것만 있고요.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점점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어떻게 해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경험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야, 엄마 아빠가 살아보니까 있잖아. 너는 이런 직업을 갖는 게 좋겠네. 그러니까 대학에서 이런 걸 전공하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해줘요.
이럴 때 아이들이 엄마 말을 잘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망합니다. 이게 문제인 거죠. 아이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우리가 살았던 시대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조언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Q. 그렇다면 유행하는 분야를 공부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 그것도 위험한가요?
유행 따라 공부하면 절대 안 됩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고려대 수석이 나온 과가 유전공학과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려대에 유전공학과 있나요? 없습니다. 그 당시에 유전공학이 유행했어요. 맨날 텔레비전에, 뉴스에 유전공학, 유전공학이 났습니다.
유행 따라 공부하면 안 됩니다. 요즘에 유행이 뭐예요? 인공지능, 로봇이에요. 그거 하면 될까요? 30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평생 동안 전혀 상관없는 세 개 이상의 분야에서 자기 전공을 갖게 될 거예요. 직업을 갖게 될 겁니다. 최대한 넓게 배워야 되죠. 기계공학을 하면 자전거에서부터 로켓까지 만들 수 있지만,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좁혀놓으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우리에게 되게 특별한 거지만 그 당시는 아무나 사용하는 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뭘 할까요? 이때 조심해야 되는 게 있어요. 바로 '이지컴 이지고(Easy come, easy go)'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죠. 쉽게 오면 쉽게 갑니다.
제 친구가 저한테 돈을 빌리면서 이야기했어요. "나 탕후루 가게 하고 싶어." "너 탕후루 만들 수 있어?" "응, 내가 유튜브 세 개 봤더니 탕후루 만들 수 있더라고. 내가 그래서 하려고 그래."
제가 그랬어요. "야, 너도 유튜브 세 번 보고 탕후루 만드는데, 딴 사람들은 오죽하겠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하잖아." 아니나 다를까 돈을 빌려가자마자 탕후루 가게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한테 쉬우면 남들에게도 쉬운 겁니다. 뭘 해야 될까요? 나한테 어려운 걸 해야 되는 거죠. 그런 걸 찾아가야 됩니다.

Q. AI 시대에 인간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3년 전까지 뭐라 했냐면요, "내가 뭘 좋아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 내가 뭘 잘하는 게 중요해. 내가 잘하는 걸 직업으로 삼아야지 좋아하는 걸 취미로도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뭐라든지 내가 무조건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뭘 하더라도 인공지능보다 잘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2024년에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세요. 두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어요. 인공지능의 원리를 밝힌 사람입니다. 세 사람은 노벨 화학상을 받았어요. 왼쪽 사람은 화학자입니다. 오른쪽 사람은 알파고 만든 사람들이에요. 인공지능 전문가들입니다. 이제는 인공지능 전문가에게 노벨 화학상을 줬어요.
앞으로 좀만 지나면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만든 문학 작품에도 노벨 문학상을 줄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의 기본이 된 거죠. 뭘 하더라도 로봇과 인공지능보다 더 잘할 수가 없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뭘 해야 될까요? 로봇과 인공지능이 관심 없는 걸 해야 되죠.
한때는 학력이 좋으면 잘 살았습니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박사학위 없어도 교수할 수 있었어요. 지금 그런가요? 그다음 때부터 경력이 되게 중요해지더라고요. 근데 어느 순간 경력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선배님, 저 다음 달, 다음 주부터 다른 회사로 옮겨가요" 하면 "야, 인마 너 그러면 되니? 의리가 있어야지. 최소한 한 달은 더 있으면서 인수인계 완벽히 해줘야지" 그랬어요.
요즘 그럽니까? "저 다음 주부터 다른 회사로 옮겨가게 됐습니다. 미안합니다, 선배님." "야, 그래 축하해. 근데 다음 주에 가지 말고 있잖아, 15분 있다 가. 15분 동안 절대로 컴퓨터 손대지 말고 네 짐만 챙겨가."
그 친구가 뭘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다 공유 폴더에 있고요. 지금 필요한 건 그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스토리가 중요해요. 사람 뽑을 때 스토리를 보고 뽑습니다.
스토리를 뽑으려니까 뭐가 필요해요? 아카이브가 있어야 되는 거죠. 뭘 했는지가 필요한 겁니다.
왜 아카이브가 중요할까요? 세상에 지식은 널려 있기 때문이죠. 물어보면 다 알려줍니다. 인공지능이 다 알려줘요. 지식이 중요하지 않아요. 지식은 널렸어요. 이 지식을 내가 어떻게 사용할까가 중요한 거죠.
지금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들어낼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려니까 뭐가 필요해요? 바로 인문학이 필요한 겁니다.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게 인문학이에요. 인문학이라고 하면 문학, 역사, 철학이라고 오해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중세 대학은 2년제 인문 대학이었습니다. 2년제 인문 대학(University)을 졸업하고 나면 2년제 직업학교를 갔죠. 로스쿨, 메디컬 스쿨을 갔습니다. 그러니까 인문 대학에서 뭘 배웠냐? 1학년 때 배운 과목이 세 과목입니다. 문법, 수사학, 논리학. 요즘 대학으로 치면 글쓰기입니다. 결국 국어예요.
2학년 과목은 음악, 산수, 기하, 천문이었습니다. 음악은 악기 다루고 노래하는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학이었습니다.
이 얘기가 뭐냐면 1학년 때는 국어를 배우고 2학년 때는 수학을 배우는, 두 가지 언어를 배우는 게 중세 대학의 인문학이었다는 겁니다. 우린 다시 여기로 돌아갈 시대가 된 거예요. 자기 인생을 계속 여러 번 바꿔야 되기 때문인 거죠.
Q. AI가 모든 걸 해주는데, 왜 국영수가 오히려 더 중요해졌나요?
우리가 21세기에는 과학문해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걸 쪼개볼까요? 결국 과학과 문해력으로 쪼개지고요. 문해력은 뭐예요? 결국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과학의 언어는 뭐고 문학의 언어는 뭡니까? 결국 문학의 언어는 국어이고 과학의 언어는 수학입니다. 국어와 수학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된 거죠.
그런데 우리가 한국에서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한 가지 언어가 더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뭘까요? 영어입니다. 21세기에는 국어, 영어, 수학이 정말로 중요해요.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인공지능 시대는 예전 같이 국영수 중심의 그런 교육 할 때가 아닙니다. 새로운 교육이 필요해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기는 국영수 잘해요. 어느 때보다도 국영수가 더 필요한 시대입니다.
왜? 지식이 널렸기 때문이죠. 국영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21세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인공지능을 적수로 삼아서 살 수 있을까요? 이겨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뭘 하더라도 인공지능보다 더 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적수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조수로 삼아야 돼요.
인공지능을 조수로 삼을 때 뭐가 필요합니까? 우리는 언어로 씁니다. 언어 가지고 인공지능을 우리의 조수로 쓸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언어가 필요해요? 그게 바로 국영수인 거죠.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과학문해력이 필요하고, 과학문해력의 요체는 바로 국영수라고 하는 세 가지 언어입니다. 제가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바로 국영수가 중요해요.
이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저는 국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수능 문제를 봤습니다. 너무나 어려워요. 저는 과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능 과학 문제 다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그 문제를 다 풀 자신은 절대로 없어요.
왜 수학이 어려울까요? 국어 문제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국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운 거예요.
초등 과정 때 우리가 해줘야 될 게 뭘까요? 국어라고 하는 기본 언어를 최대한 잘하게 해줘야 되죠. 국어를 잘해야 수학도 잘할 수 있고 국어를 잘해야 영어도 잘할 수 있습니다.

Q. 국어를 잘하려면 독서가 중요한데, 인문서나 과학책보다 문학책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이게 상식과 다른 주장 아닌가요?
국어를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답 다 아십니다. 뭐예요? 책이죠. 책을 최대한 많이 읽어야 됩니다. 읽고 쓰는 능력이 필요한 거죠. 또 듣고 그걸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떤 국어 책을 읽을까? 어떤 책을 읽게 할까? 이게 많은 분이 고민하면서 또 오해도 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되게 인문서 많이 읽히고 과학책 많이 읽힙니다.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자신이 어릴 때 인문서, 과학책 많이 읽었습니까? 하나도 안 읽으셨잖아요. 하지만 여러분 훌륭하게 잘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강하게 한 힘이 뭐였나요? 문학이었습니다.
저는 인문서랑 과학책은 어릴 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너무나 논리적으로 쓰였기 때문이에요. 논리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인문서와 과학서를 읽어 가지고는 지식은 얻을지 언정 독서력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지식은 널려 있잖아요. 지식은 천천히 얻어도 됩니다. 내가 독서력을 키워야 되는 거예요. 읽는 능력을 키워야 됩니다.
읽는 능력을 키울 때 가장 좋은 책은 문학책이죠. 왜냐하면 문학책은 논리적으로 쓰여 있지 않거든요. 어제 뽀뽀하고 난리 났는데 오늘 왜 헤어집니까? 우린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그 페이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심리 지도를 그려야 되고 인간관계 지도를 그리고 사건을 또 예측해야 돼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장면을 생각을 하죠. 창작자의 능력을 갖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문학책을 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 권의 책을 읽는다면 저는 여섯 권은 청소년 어린이 문학책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권 정도는 시집이 되겠죠. 나머지 세 권 가지고 역사도 읽고 과학책도 읽고 예술책도 읽어나가는 거죠.
Q.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시절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에게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아마 교통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140살까지 살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들이 이 시대를 충분히 살아나가게, 자신 있게 살아나가게 해줄 필요가 있죠. 인공지능을 적수로 삼지 않고 인공지능을 조수로 삼으면서 말입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뭐냐면 바로 초등학교 시절에는 자기의 언어로, 바로 우리의 국어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겁니다. 그 힘은 저는 문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배운 점을 요약합니다
- 부모의 경험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부모 세대의 경험과 조언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1919년에 상상했던 주머니 전화기가 현실이 됐듯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유행 따라 전공 선택하면 위험하다
고려대 수석을 배출했던 유전공학과가 사라진 것처럼, 지금 유행하는 분야도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최대한 넓게 배우고, 나한테 어려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3. AI 시대에 국영수가 더 중요해진 역설
AI를 적수가 아닌 조수로 삼으려면 언어가 필요합니다. 국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 수학은 과학을 이해하는 언어, 영어는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입니다. 지식이 널린 시대에 중요한 건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4. 독서력은 문학책으로 키운다
인문서와 과학책은 논리적으로 쓰여 있어서 지식은 얻어도 독서력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문학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심리 지도를 그리고, 인간관계를 예측하고, 창작자의 능력을 키워줍니다. 열 권 중 여섯 권은 문학책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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