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국가기록원장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1. 들어가며
2025년 6월, ‘전라남도 장흥에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 들어선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쏟아졌다. 구 전남도립대학교 장흥캠퍼스 부지에 645억을 투입하여 2030년 완공한다는 것. 6월 10일부터 나흘간 80여 개의 기사가 나왔다.
2007년 공공기록물법 개정을 통해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치가 의무화된 이후, 2025년 현재 경남과 서울 단 두 곳만 기록원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전라남도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하 전남기록원) 건립은 법률의 이행이자, 행정기관의 ‘처리과-기록관-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어지는 기록관리체계를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기록인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6월 27일부터 한 언론매체에서 전남기록원 건립 문제를 연속으로 보도하였다. 7월 전라남도의회에서 전남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용역과 부지선정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있었고, 언론을 통해 논란이 보도되었다. 글을 작성하는 2025년 9월 현재까지 전남은 의회질의에 답변한 것 이외에, 기사 정정 요청 등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언론보도와 전라남도의회 회의록 등을 바탕으로, 전남기록원 건립 논란을 정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 전남기록원 건립 어디까지 왔나
전남은 2023년 '전남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발주하여 업체선정 및 계약을 통해 3월부터 11월까지 약 8개월간 용역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용역비는 7200만원.
이후 용역보고서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아 11월에 계약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음해인 2024년 7월 종료되었다. 용역업체는 보고서에 구 전남도립대학교 장흥캠퍼스 폐교 부지(이하 장흥캠퍼스)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장흥캠퍼스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전남기록원을 건립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2024년 12월, 2025년 3월 두 차례 도지사 주관 전략회의가 있었다. 2024년 12월 27일 회의에서는 장흥캠퍼스에 건립한다는 보고가 있었고, 2025년 3월 회의에서 장흥캠퍼스 내 자동차 실습동으로 부지를 변경하였다.

6월 9일, 전라남도 기록관리팀장(지방행정사무관)이 기안한 ‘전라남도기록원 건립 기본계획’을 도지사가 결재하였고, 6월 11일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3.1. 용역업체의 문제
‘전남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당시, 용역업체가 당초 투입예정이었던 연구진이 실제와 다른 것이 확인했고, 연구원 자격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전남은 용역 만료 직전인 2023년 11월에 확인했다.
이는 계약을 위반한 중대한 사안이지만, 전남은 계약을 해지하는 대신, 투입하지 않은 인력만큼의 비용을 뺀 용역비를 재산정하여 계약금액을 변경(7200만원→5400만원)하고 해당 업체가 계속해서 용역을 추진했다. 지방계약법을 근거로, 전라남도 자문변호사를 통해 ‘계약을 유지하고 해당 업체가 용역을 마무리하는 것이 계약을 취소하는 것보다 손해가 덜 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업체가 연구진을 무단으로 변경하고 연구원 자격에 문제가 있어 이미 발주기관과 신뢰가 무너졌지만 마무리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얻는 업체는 보란 듯이 무려 7개월이 넘게 용역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자격도, 투입 인력도 속이고, 기한을 준수하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던 업체. 도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업체가 수행한 용역에 대해 누가 수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자격을 속이고 용역업체로 선정된 이후 적발되더라도 계약을 변경하면 될까?”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전남은 용역업체에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았을까?
3.2. 부지선정의 문제
용역 추진 과정에서 도청 소재지인 무안군에 있는 부지가 1순위로 평가되었고, 최종 부지로 선정된 장흥캠퍼스는 원래 4위였다. 하지만 부지 구입 비용을 문제삼아 순위를 바꿔 1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장흥캠퍼스는 후보지로 선정된 것부터 문제였다.
우선 장흥캠퍼스 부지는 전남 소유지만, 건물은 교육부 관할로, 지방자치단체가 마음대로 건물을 부수고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부 지침상 국비가 투입된 학교 건물의 50년이 지나야 철거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부와의 협의와 허가가 필수적이다. 후보지로 선정하더라고 기획재정부나 교육부가 승인하지 않는다면 기록원 추진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용역 당시부터 도립대와 목포대 간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었다. 통합될 경우, 장흥캠퍼스의 활용은 전적으로 목포대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후보에서 제외하거나 다른 곳으로 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알고도 후보에 넣어 1순위가 되었고, ‘장흥캠퍼스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전남기록원을 짓는다’는 것이 용역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런데 2025년 실제 두 학교가 통합이 결정되면서 용역보고서의 내용은 실현할 수 없게 되었고, 세금 수천만 원을 들인 용역은 무의미해졌다.
이렇게 장흥캠퍼스의 사용 여부가 확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후보지로 넣고, 굳이 부지 위치를 변경하기까지 한 것을 보면 다른 사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3. 수단이 되어버린 전남기록원
전남기록원은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과 기본계획 외, 아무것도 진행하지 않은 상황이다. 각종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와 투자심사와 같은 행정절차, 예산확보 등 거쳐야 할 과정이 한참 남아있고, 이 중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언론에 보도된 ‘2030년 완공’은 불가능하다.

전남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첨부된 기록원 조감도는 용역보고서에 담긴 이미지로 ‘장흥캠퍼스를 철거하고 그 위에 건립’한 모습이다. 이것은 이미 백지화되었다. 사실상 확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건립이 추진될 곳의 조감도를 준비할 만한 성의도 없이 그렇게 급하게 보도자료를 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원 자체가 목적이 아닌, 마치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게 기록원을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장흥군은 전남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온 2024년 7월보다 한 달이나 앞서 2024년 6월 14일부터 ‘장흥캠퍼스를 활용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낸 적이 있다.(23개 매체) 이번에는 장흥에 전남기록원을 유치했다며 도청보다 하루 먼저 보도자료를 냈고, 군수의 코멘트가 기사 말미에 실렸다.
참고로 전남기록원 건립 언론보도가 한창이던 2025년 6월, 정확히 1년 뒤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4. 글을 마치며
여러 문제가 나오는 동안, 정작 전남도청 내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체적으로 필터링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어느 기사제목처럼 ‘기록하랬더니 오점 남겼다’며, 우리 기록인들에게 오명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전남기록원’을 건립하면 누군가의 말처럼 “장흥을 기록 유산의 전승과 기록문화 탐방의 명소”가 될까? “관광객이 찾고 싶은 명소가 되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까? 헛된 기대를 품기보다, 지금의 전남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기록관리가 아닌 다른 업무에 치여 고생하지만, 기록연구사의 소명을 다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야근이 생활이 된 이들의 여건을 보장해 주는 것부터 필요하지 않을까?
*사족
전남기록원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보고서는 제대로 작성되었을까? PRISM에는 정보공개 비공개 근거 제5호를 들어, 2026년까지 비공개로 설정해놓았으며, 국가기록원 간행물 발간등록번호 신청페이지에도 ‘향후 건립 절차 추진과정에서의 의사결정사항 등 민감정보 포함’이라며 똑같이 비공개로 해놓았다. 보고서가 제대로 작성되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참고자료>
- 언론보도
노컷뉴스. (김한영). 전남 공공 기록물 보관할 전남기록관 건립 추진. (2023. 6. 26.)
시사저널. (정성환). ‘방치의 역설’ 옛 도립 장흥대학, 전남 중부권 발전 효자되나. (2024. 9. 30.)
연합뉴스. (형민우). 예산 645억원 들여 전남도기록원 건립 추진. (2025. 6. 11.)
경향신문. (고귀한). 600억원 투입되는 ‘전남도기록원’ 부지, 전문 자문위에선 최하위권으로 평가받았다 (2025. 6. 27) * 뉴스레터 대표이미지 활용(전남 장흥군청 전경, 고귀한 기자)
한국교육신문. (김광섭). '전라남도기록원' 설치 계기, 김재순 전 관장 기록원 구상과 활용 방안 강의. (2025. 6. 30.)
노컷뉴스. (김형로). 전경선 전남도의원 “전남 기록원, 부실 용역” 집중 추궁. (2025. 7. 15.)
더리포트. (이병석). 기록하랬더니 오점 남겼다, 전남기록원 부실 논란. (2025. 7. 15.)
전라남도의회 회의록
전라남도의회 제12대 392회 임시회 1차 기획행정위원회 회의록 (2025. 7. 14.)
전라남도의회 제12대 392회 임시회 4차 본회의 회의록 (2025. 7. 21.)
전라남도 문서
전라남도. 공고 제2023-169호 전남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제안서 평가위원회 평가위원 후보자 모집 공고 (2023)
전라남도. 전남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과업지시서 (2023)
전라남도 스마트정보담당관-9961호 전라남도기록원 건립 기본계획 (2025. 6. 9)
전라남도. 보도자료 ‘장흥에 전라남도 기록원 건립한다’ (2025. 6. 11.)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