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개선의 방향: 관리주체별 과제
파트 1에서는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둘러싼 두 가지 핵심 쟁점—과지정·봉인 논란과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정 행위 논란—을 검토했다. 또한 '세월호 파기환송심'(2026.4.10.)이 지정 행위의 사법심사 가능성을 확립한 새로운 규범적 전환점임을 확인했다.
파트 2에서는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지정기록물 제도 자체의 필요성은 유지하되 제도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개선 방향을 관리주체별로 검토한다. 대통령기록 생산기관, 전직대통령, 대통령기록관의 세 주체는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다. 생산 단계의 지정 부실은 전직대통령의 열람 실효성 저하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대통령기록관이 제공할 수 있는 기록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각 주체의 과제를 이 연결 속에서 살펴본다.
(1) 대통령기록 생산기관: 지정의 기준과 교육
지정 기준의 구체화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려면 지정 단계에서의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이 열거하는 여섯 가지 지정 유형은 범주가 넓고 추상적이어서 실무 담당자의 자의적 적용이 묵인되는 구조다.¹
이러한 허점은 이명박 정부의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제17대 대통령기록 총 1,088만 건 중 지정기록은 24만 건이었으나 비밀기록은 한 건도 없었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밀에 해당하는 기록은 7년, 15년, 30년 기한의 지정기록으로 분류해 넘겼다"고 밝혔다.² 이는 지정기록과 비밀기록의 개념적 구분이 실무 현장에서 혼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또는 의도적으로 혼용했을 수도 있다.)
참여정부의 사례는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보여준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지정 유형별 구체적 기준 예시와 '비지정 대상' 목록을 내부 지침으로 마련했다. 예를 들어, 대화 내용 전문이 언론에 공개된 경우나 임기 후 정무적 논란이 되지 않는 대응 전략 기록은 비지정 대상으로 명시했다.³ 이러한 수준의 기준이 법령에 반영되어 각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이 내부적으로 더 구체적인 세부 기준을 마련해 운영한다면, 지정 과정에서의 과지정과 그에 따른 사법심사 위험을 함께 낮출 수 있다.
생산 단계 관리 체계의 구축
과지정의 또 다른 원인은 지정 결정 행위가 임기 말에 집중된다는 구조적 특성에 있다. 수만 건에 달하는 기록을 이관 직전에 검토해 지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결과적으로 목록 단위의 일괄 지정으로 귀결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e지원시스템 문서관리카드에 생산 시점부터 지정기록 여부, 보호기간, 지정 사유를 입력하는 기능을 구축했다.³ 임기 종료 시점에는 이 사전 검토 결과를 재분류하여 대통령이 최종 지정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정부든지 생산단계에서 지정여부를 구분하는 일정한 프로세스는 갖추고 있을 것이며, 임기 말 그것을 확정하는 작업을 시행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임기 말 집중 지정 결정의 부담을 분산하려면 실제 기록을 생산하는 행정관과 행정실무원이 지정기록·비밀기록·비공개기록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지정해제 기록 중 확인된 참여정부 교육자료를 보면, 당시 비교적 상세한 지정 요건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임기 종료 시점에 집중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⁴
이와 관련하여 국정기록비서관실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국정기록비서관은 대통령비서실 내 다른 비서관실과 동등한 위상에 있기 때문에 전체 비서관실의 기록관리를 실질적으로 통솔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⁵ 지정 기준의 구체화와 상시 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정기록비서관실에 전체 비서관실 기록관리를 조율할 수 있는 권한과 인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2) 전직대통령: 열람권 보장과 지정 해제
열람권의 현주소
전직대통령의 대통령기록 열람권은 대통령기록물법 제정 추진 단계부터 제도의 핵심 목표로 강조되었다. 지정기록물을 포함한 재임 중 기록에 대한 접근을 보장함으로써, 대통령과 보좌 기관이 기록을 남기는 것을 꺼리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 취지와 거리가 있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 사저 보관 사건에서, 국가기록원은 온라인 열람·사본 제작을 '열람 편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여 사저 보관을 불법으로 간주했다.⁶ 이후 2010년 대통령기록물법 개정으로 지정 및 비밀기록물을 제외한 기록의 온라인 열람 편의 제공 조항이 신설되었으나, 이 개정은 오히려 지정기록물과 비밀기록물의 온라인 열람을 명시적으로 제외함으로써 전직대통령의 접근 범위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⁷ 2020년 개정에서는 전직대통령이 재임 시 설정한 지정기록물의 보호기간을 보호기간 만료 전에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지정 해제의 의미와 필요성
전직대통령의 지정기록물 해제 행위는 단순한 권한 행사가 아니라, 제도의 취지를 실현하는 핵심 절차다. 임기 말 수만 건의 기록을 일괄 지정하는 과정상 과지정과 오지정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전직대통령이 재임 후 기록을 열람하며 보호 필요성이 약화된 기록을 해제하는 것은 알권리 보장과 기록 활용의 균형을 맞추는 메커니즘이다.
이 점에서 전직대통령의 열람 접근이 원활할수록 지정기록물 제도 전반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반면 열람 자체가 어렵다면 과지정된 기록이 보호기간 내내 그대로 유지되며, 이는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수사기관 열람의 과도한 비중
지정기록물에 대한 접근 현황을 살펴보면 국회 의결에 의한 열람보다 관할 고등법원 영장에 의한 검찰·수사기관의 열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법 시행 이후 2020년까지 검찰의 영장 열람은 10건에 달하는 반면, 국회 의결에 의한 열람은 2건에 그쳤다.⁹ 이 불균형은 지정기록물 제도가 원래 전제했던 정치적 접근 제한의 취지와 역행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수사기관이 포괄적 영장을 통해 지정기록에 반복 접근하는 현실은 기록 생산 단계에서의 위축 효과를 낳는다. 대통령기록 생산기관의 담당자가 지정기록이라고 할지라도 수사를 통해 언제든 열람될 수 있다고 인식하면, 민감한 내용을 아예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¹⁰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소는 법 개정 사항이지만, 현재 구조 안에서도 대통령기록관이 수사기관의 접근 심사 과정에서 전문적 판단을 행사할 수 있는 절차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불가피하게 열람이 이루어지더라도 기록 전문이 아닌 부분공개 방식으로 제한하는 등 기록 보호의 최소 장치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3) 대통령기록관: 지정기록 서비스와 공개 체계
현행 서비스의 소극성
대통령기록관은 지정보호기간이 만료되어야 비로소 공개재분류 절차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호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이용자가 지정기록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사실상 없다. 보호기간 만료 후에도 대통령기록관이 공개재분류를 거쳐 목록을 제공하기 전까지 이용자는 지정기록의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2026년 5월, 현재 포털의 공개재분류 심의 결과 목록에서 지정기록이었음을 식별할 수 있는 심의 회차는 55~57회에 한정된다. 나머지 회차에 지정기록 해제 기록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이용자가 그 사실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 기록의 존재는 공개되지만 그 성격은 드러나지 않는 구조다.
적극적 공개 의무의 법제화
미국 대통령기록법 §2203은 국립기록관리처장(Archivist)에게 기록을 가능한 신속하고 완전하게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할 적극적 의무를 부과한다.¹¹ 나아가 12년 접근제한 기록이라도 전직대통령 또는 대리인이 공공 영역에 이미 공개한 경우, 국립기록관리처장이 해당 기록에서 분리 가능한 부분을 식별하여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록의 보존과 보호가 궁극적으로 기록의 활용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규정이다.
한국의 현행 체계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보호기간 만료까지 선제적 공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만료 후에도 공개재분류 심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인적·물적 기반 부족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지정해제 작업에 대한 최소한의 사전 준비 기간과 절차를 법에 명시하고 이를 상시 업무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느린 절차는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지정기록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
대통령기록관이 이용자에게 제공해야 할 정보는 기록의 내용만이 아니다. 지정기록의 규모, 지정 호수별 통계, 보호기간 만료 예정 현황 등의 메타 정보도 가능한 범위에서 공식적으로 공개될 필요가 있다.
이는 기록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재 대통령기록포털은 공개재분류 심의 결과만을 게시하고 있어, 이용자는 지정기록 전체의 윤곽을 파악할 수 없다. 대통령기록관이 어떤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언제 공개될 예정인지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기록관의 가장 기초적인 정보서비스 의무에 해당한다.
대통령기록관 직원의 선제적 업무 수행
현행 법 제17조 제4항 제3호는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 수행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 기록관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최소한의 범위에서 열람·사본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지정 해제 전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적 기반이다.
지정해제 후 신속한 공개 서비스를 위해서는, 보호기간 만료 이전부터 대통령기록관 및 직원들이 기록의 상태를 점검하고 공개 준비를 위한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관리를 수행할 필요성이 있다.
맺음말을 대신하여: 제도 신뢰의 문제
지정기록물 제도의 근본 문제는 기술적 미비보다 신뢰의 결여에 있다. 기록 생산자는 지정기록이라도 정치적 목적으로 열람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이 위축 효과가 지속되면 제도가 달성하려는 목표—기록의 충실한 생산과 이관—는 공허해진다.
미국 대통령기록법이 P5 조항(대통령-보좌관 간 비밀 자문 기록의 최장 12년 보호)을 별도로 둔 이유는 이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솔직한 내부 논의가 일정 기간 보호된다는 예측 가능한 보장이 있어야 기록 생산의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보장의 신뢰성은 보호를 관리하는 기관—NARA—의 정치적 독립성에서 나온다.¹²
한국의 지정기록물 제도가 이 순기능을 회복하려면, 지정 기준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대통령기록관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하나가 충족되지 않으면 나머지의 효과도 약해진다. 제도 개선은 어느 한 주체의 노력이 아니라 이 세 주체가 각자의 과제를 동시에 이행함으로써 가능하다.
각주
¹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 각 호. 조영삼, 「대통령기록관리의 현황 과 전망」, 『기록학연구』 21, 한국기록학회, 2009, 304~306쪽.
² 유영선, "MB 정부 '비밀기록 0건' 새누리 발끈… 논란일 듯", 천지일보, 2013.3.7. https://www. 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757
³ 조영삼, 앞의 글(2009), 305~308쪽.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지정기록 기준 예시 및 비지정 대상 목록은 동 논문 표 4·5 참조.
⁴ 대통령기록관, 「03-06년 기록재분류사업(국정과제위원회 방문교육)」(기록건번호: 1010211100405978), 『대통령 지정기록물 관리』(1010211000006686), 2007; 대통령기록관,「03-06년 기록재분류사업(부서별 실무 협의)」(기록건번호: 1010211100405985), 2007.
⁵ 조영삼, 앞의 글(2009), 314쪽. "대통령보좌기관에서는 반드시 독립적으로 기록관리 업무만을 수행하는 부서를 따로 두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 참조.
⁶ 법제처 법률 해석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 관련(법제처 08-0234, 2008.9.16.). 조영삼, 「대통령기록관리 제도 개선 현황과 향후 추진 방향」, 『기록학연구』 65, 한국기록학회, 2020, 51~52쪽.
⁷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3항 및 제4항 신설('10.2.4. 개정). 조영삼, 앞의 글(2020), 69~70쪽.
⁹ 조영삼, 앞의 글(2020), 72~73쪽 표 4·5. 국회 열람 2회(2008년, 2013년), 검찰 영장 열람 10회 (2008~2020년) 현황 참조.
¹⁰ 사단법인 한국기록전문가협회, "[아키비스트의 눈] 하루 두 번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무엇이 문제인가", 2022.8.24. https://www.archivists.or.kr/1836
¹¹ Presidential Records Act, 44 U.S.C. §2203(e). 동 조항은 국립기록관리처장(Archivist)에게 "가능한 신속하고 완전하게(as rapidly and as completely as possible)" 대통령기록을 일반에 공개할 의무를 부과한다.
¹² 이상민, 「위기에 처한 대통령기록물관리, 문제의 인식과 해결을 위한 접근방식」, 『기록학 연구』 18, 한국기록학회, 2008, 299쪽;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The Presidential Records Act: An Overview (R46129), December 18, 2023, https://www.congress.gov/crs-pro duct/R4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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