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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관리, 다시 설계할 시간

한국기록학회 하계학술대회, 기록관리 제도개선 어젠다와 입법 과제 제시하다

2026.06.25 | 조회 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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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가오리, S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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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서울관광재단 시민아카데미실에서는 「기록관리 제도 개선을 위한 어젠다」를 주제로 2026년 한국기록학회 하계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단순한 학술발표 행사가 아니었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 법제위원회가 약 6~7개월 동안 진행해 온 기록관리 제도 개선 논의를 집대성하고, 향후 입법과 정책 추진을 위한 공론화의 장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2025년 8월 법제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2025년 9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총 9차례 회의를 진행하였다. 법제위원회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기록관리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기록관리계의 공동 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입법 과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위원회는 국가기록관리, 공공기록관리, 전자기록관리, 민간기록관리 등 분야별 어젠다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며, 이번 학술대회는 그 성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행사는 국가기록관리, 공공기록관리, 전자기록관리, 민간기록관리 등 네 개 분과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다. 각 발표는 개별 제도 개선안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과 2006년 전부개정 이후 20년 동안 유지되어 온 기록관리 체계의 한계를 진단하고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 “관리”에서 “거버넌스”로... 국가기록관리체계 개편 논의

 

첫 번째 발표에서 황진현 청주대학교 교수는 국가기록관리체계 개편 방향을 제시하였다. 발표자는 현재 국가기록원이 수행하고 있는 기록관리 기능 자체보다 국가 차원의 기록정책을 총괄하고 조정하는 거버넌스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다고 진단하였다.

특히 국가기록관리위원회의 역할이 축소되고 국가 차원의 기록관리 기본계획과 평가정책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기록관리 정책을 국가기록원 중심의 행정체계에서 벗어나 정부, 학계, 전문가단체,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발표는 기록관리 정책을 단순한 행정관리 영역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적 기억을 관리하는 공공정책으로 재인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 기록이 없으면 책임도 없다... 공공기록관리 제도 근본적 재설계 요구

 

두 번째 발표에서 윤정훈 디아키비스트 대표는 공공기록물 생산 및 관리·활용체계 강화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발표의 핵심은 현행 공공기록물법이 기록의 생산보다는 보존과 관리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정책결정 과정의 상당 부분이 비공식 회의, 메신저, 실무협의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정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정책 기획부터 검토, 협의, 결정, 집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기록화하는 ‘정책 전주기 기록화’ 체계 도입을 제안하였다. 또한 최근 정보공개 청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기록 없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 부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을 공공기관이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도 주요 과제로 제시되었다.

아울러 비밀기록물관리, 국가기록평가정책, 기록관리기준표 재설계, 디지털 간행물 관리체계 구축, 기록 공개 및 열람 등 공공기록관리 전반에 대한 개혁 방향도 함께 제안되었다.

 

■ AI와 데이터는 새로운 기록인가... 전자기록관리 제도 재정비 논의

 

세 번째 발표에서 양동민 전북대학교 교수는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반 행정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록관리 혁신 방향을 제시하였다.

발표자는 현재 기록관리 체계가 전자문서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실제 행정은 이미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앞으로는 웹기록물, 데이터세트, 시스템 로그, 인공지능 생성 정보 등을 기록관리 체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생성형 AI가 행정 업무에 활용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결과 문서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는 기록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기록관리가 단순한 문서관리 체계를 넘어 국가 데이터 거버넌스의 핵심 영역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 공공기록을 넘어 사회의 기억으로... 민간기록문화 진흥 방안 제시

 

네 번째 발표에서 양인호 한남대학교 교수는 민간기록문화 진흥을 위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였다.

발표자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기록관리 체계가 공공기록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사회적 기억의 상당 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마을 아카이브, 공동체 기록, 노동·인권 기록, 재난 아카이브 등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억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재정적 지원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기록의 법적 지위 강화, 민간기록관리기관 지원제도 도입, 지역 기록협의체 구축, 공동체 아키비스트 육성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였다.

특히 민간기록을 단순한 보존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백서가 아니라 녹서를 쓰자”

 

이어진 종합토론에 김장환 부산대학교 교수와 원종관 대통령기록관 기록연구사가 토론자로 나와 기록관리 제도 개선 방향을 거시적인 측면에서,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깊이 있게 논의하였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번 발표들이 개별 제도 개선안을 넘어 국가 기록관리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는 논의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특히 공공기록물법, 대통령기록물법, 정보공개제도, 개인정보보호제도, 데이터 정책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기록관리 정책은 국가기록원만의 과제가 아니라 학계, 전문가단체,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공공 의제라고 강조하였다.

특히 김 교수는 법제위원회에서 작업한 어젠다들은 모두 향후 국가기록관리 체제 및 입법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 없으나, 현행법에 그대로 담는다면 또 한 번의 백화점식 개정이 되어 법 해석과 집행의 일관성 측면에서 우려가 된다며 (가칭)기록기본법이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기록관리의 이념과 원칙을 비롯하여 실질적인 집행력을 갖는 국가정책 추진체계(기본계획–시행계획–실태조사–위원회)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 날 토론에서 원 연구사의 ‘백서가 아닌 녹서를 쓰자’는 의견도 주목을 받았다. 원 연구사는 기록관리 제도 개선을 이미 정답이 정해진 정책보고서 방식으로 추진하기보다, 다양한 질문과 의견, 대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녹서(Green Paper)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기록관리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제안으로 평가된다.

 

■ “제2의 기록관리 혁신”을 향한 출발점

 

이번 학술대회는 기록관리단체협의회 법제위원회가 그동안 논의해 온 기록관리 제도 개선 과제를 처음으로 공개한 자리였다. 국가기록관리 거버넌스 강화, 정책 전주기 기록화, 기록 부존재 입증책임 도입, AI·데이터 기반 기록관리 체계 구축, 민간기록문화 진흥 등 발표된 의제들은 모두 기존 기록관리 체계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과 2006년 전부개정이 우리나라 기록관리 제도의 기초를 구축한 시기였다면, 이번 학술대회는 거버넌스와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제2의 기록관리 혁신’을 준비하는 출발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법제위원회의 논의가 실제 입법과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번 학술대회는 기록관리 제도 개선이 더 이상 기록관리 전문가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가 책임성, 사회적 기억의 미래를 논의하는 공공 의제임을 보여준 자리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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