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합니다.
※ 본 노트에는 9/11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기록한 사진과 서술이 함께 작성되어 있습니다. 재난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 9/11 다시 기억하기
오늘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3주기가 되었습니다. 9/11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도 남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21세기 초입부터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건은 아직도 많은 이들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고, 또 애도와 도움을 전했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 <르몽드>는 참사 당일 <우리 모두가 미국인이다(Nous sommes tous Américains)>라는 특집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9/11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니, 좀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습니다. 2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그 사이 뉴욕은 재건되었습니다.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5월 미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극단적 인종차별과 46만명 이상의 희생을 낳은 이라크 전쟁도 끝난 지 13년이 다 되어 갑니다. 너무 먼 나라 그때 그 시절 이야기 같기에 다시 23년 전 그날을 소환해보려고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 30분 전후, 뉴욕 맨해튼 가운데 위치한 세계무역센터(쌍둥이빌딩)는 당일 지역선거 때문에 출근한 사람이 적어 평소보다 한산합니다. 겨우 스위스 나이프 따위로 무장한 알 카에다 조직원들에 납치된 비행기는 총 4대입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11기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175기는 8시 19분과 24분에 각각 납치됩니다. 8시 42분에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기가 납치됩니다. 9시 12분 탑승을 시작했던 아메리칸 에어라인 77기가 납치됩니다.
8시 46분에 11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하고, 9시 3분에 175기가 남쪽 건물 77층과 85층 사이에 충돌합니다. 9시 37분, 77기가 미국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충돌합니다. 73기 승무원들은 조종석을 장악한 납치범들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고, 그들이 테러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습니다. 73기는 10시 3분 펜실베이니아 샥슈빌 근처 평야에 추락합니다. 쌍둥이 빌딩이 차례로 무너집니다. 펜타곤 건물도 파괴됩니다. 뉴욕 시장은 뉴욕시민들에게 긴급 탈출 명령을 내립니다. 늦은 오후부터 본격적인 구출 작업이 시작됩니다. 작업 중 제7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내립니다. 10월 중순, "살아남은 나무" 구출을 마지막으로 구조와 수습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이 테러로 사망한 비행기 탑승객과 승무원,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근처에서 사망한 직장인, 학생, 자영업자, 소상공인, 소방관, 경찰, 노숙인 등 시민은 총 2,977명입니다. 부상자와 영구적인 장애, 후유증을 얻은 사람은 셀 수도 없습니다. 수습된 시신 가운데 약 40%에 대한 신원은 오늘날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참고: 9/11 타임라인)
2. 재난 현장의 이타주의와 연대의식에 대한 증언
글을 적는 내내 참담한 마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하물며 당시 모든 장면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9/11 메모리얼(9/11 Memorial & Museum)에서는 온라인 웹사이트과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생존자들의 구술사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일부 서술한 정도입니다. 궁금했던 내용은 레베카 솔닛이 저술한 <이 폐허를 응시하라>(정해영 옮김, 도서출판 펜타그램, 2012)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레베카 솔닛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진 이타주의와 공동체적 연대 의식이 9/11 이후 여러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합니다. 시민사회의 생명력과 더불어 폭력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주장합니다.(333쪽) 이후 그라운드 제로(파괴된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재건사업을 진행하고, 특별법 격인 9/11 Memorial Act가 제정되는 과정에까지 공동체는 곳곳에 영향력을 심고 발휘했습니다.
3. 아카이브 속 기억의 재생산
9월 11일 기억의 파편은 대표적으로 9/11 메모리얼이 운영하는 아카이브에 남아 있습니다. 9/11 메모리얼은 이런 파편을 이어붙여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들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공간도 제 역할을 합니다. 그라운드 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가격을 자랑하는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여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지를 임대하거나 매매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하를 파내려 가는 공간입니다.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처절하리만치 그 당시를 기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9/11 미디어 자료를 보관하는 서브레딧 911archive가 있습니다. 오래되어서 유실될 가능성이 높은, 그러나 사람들에게 여전히 알려두어야 할 자료가 모여 있습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9/11에 관한 기억과 자료를 커뮤니티 유저들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 고무적입니다. 레딧 유저들은 각자의 생각과 자료를 매일 게시글로 올립니다. 그 속에서 감정과 정보를 공유합니다. 자료를 찾아 올리고 기억과 감정을 서술하는 이 아카이빙 자체가 기억을 재생산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웹 아카이빙으로 유명한 Internet Archive도 9/11과 관련한 텔레비전 뉴스를 아카이빙한 페이지 Understanding 9/11을 제공합니다.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매일 보도되었던 뉴스 영상이 시간 순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미국 공영방송뿐 아니라 지역방송, 멕시코, 영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러시아의 주요 뉴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러 발생 후 며칠간의 급박한 상황들이 영상으로 남아, 당시 상황 속 처참함을 여과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인터넷 아카이브의 사명답게 그들은 모든 지식에 대한 접근점을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9/11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들은 이런 아카이브에서 타인의 기억을 보고 느끼며 9/11에 대한 자신만의 새로운 기억을 재생산해 낼 것입니다.
상업용 이미지 전문 사이트인 게티 이미지에서는 9/11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자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재난을 기록한 사진을 판매한다는 것이 낯설기도 하겠지만, 저널리즘과 저작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납득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오히려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는 아카이브 서비스 역할도 하고 있다고 봅니다.
2001년 테러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9/11 웹 아카이브를 구성했던 미국 의회도서관 직원들이 있습니다. 참사 20주기를 맞이한 그들의 인터뷰에서는, 아키비스트로서 느낀 감정과 상황적 판단에 어느 정도 공감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웹 자원에 대한 휘발성이 지금보다 더 강했을 뿐더러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본능에 가깝게 이런 웹사이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컬렉션으로 모았습니다. 컬렉션 총괄 디렉터였던 다이앤 크래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4. 외상 후 성장의 저변에 아카이브가 있다
참사가 일어나고, 구조와 대피가 일어나고, 피해를 수습하고, 일상이 회복되고, 그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기억하는 공간이 생기고, 교육하고 전승하는 과정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9/11은 현장의 참혹함과 무참함, 인간성의 종말과 테러리즘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넘어서, 평화와 안전, 예방, 그리고 참사의 암담함 속에서 꽃피웠던 이타주의와 공동체 의식을 가르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상기하고 재해석하며 기억을 재생산합니다. 재생산된 기억은 시간과 장소에 다시 기록됩니다. 이렇게 소중하게 모인 기록은 반드시 재앙을 반복하지 않는 데에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아직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또 하나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아카이브는 과거에 발생한 문제적 상황을 잔인하리만치 직면하게 합니다. 증거와 맥락을 통한 재현이 본질적 역할 중 하나인 만큼, 트라우마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취해 온 행동이 무엇이었는지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심가치가 되어 저변에 자리잡힌 것이 무엇인지를 아카이브에서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성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PTSD)와는 반대되는 말입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이후, 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재건하는 변화를 뜻합니다. 아카이브는 재건 과정에서 사회와 개인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창구가 됩니다. 아카이브를 읽어주고, 드러나지 않던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돕는 조력자가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아카이브는 폐허 속에서 전보다 나은 삶을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과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온라인뿐 아니라 도시 한 가운데에서 전한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재난 와중에 전개되었던 연대와 추모, 이타주의, 상호 존중, 평화의 메시지를 여러분의 눈 앞에 전달하는 것 말입니다. 이는 한적한 곳에 누구도 찾지 않는 거대한 추모시설을 만드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날을 기억하게 만들고, 재난을 번복하지 않는 방법을 일상 속에서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도 없으면서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민중들.”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 임진왜란 편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자조적 밈으로 종종 보이는 이 구절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권이나 책임기관으로부터 무책임함, 무능함, 가해자성에 분노를 느낀 것도 한 몫 하겠습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일명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세월호 참사, 2019년 강원도 산불, 코로나-19 팬데믹 등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발생했던 재난 가운데 발견된 시민의 ‘집결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위기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상을 제쳐두고 나를 내던질 수 있는 각오, 이런 중요한 결정을 그 누구도 아닌 시민 스스로가 내릴 수 있다는 용기는 사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서의 본능임에 틀림 없습니다. 기억이 기록으로 남게 된 과정도 중요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던 모든 사람이 기억을 기록화하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 되돌릴 수 없는 위기상황에 봉착했을 때 비로소 꽃피었던 가치를 영구히 남겨둘 수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재건하려는 힘이 생긴다는 점은 오히려 폐허 속에 피어난 역설적인 축복일는지 모릅니다.
*집결현상: 찰스 E. 프리츠, 해리 B. 윌리엄스, <인류와 재난: 연구적 관점에서>, 1957. 그들은 “재난 지역을 향한 움직임은 파괴 현장으로부터의 도피나 대피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의미심장하다. 대개의 경우, 국내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몇 분 안에 수천 명이 재난 지역과 응급처치소, 병원, 구호센터와 교류센터에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이어 부탁하지도 않은 장비와 의류, 식품, 침구 같은 물품들이 재난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썼습니다. 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인용(296~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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