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 글을 슬슬 퇴고해가던 중 신기하게도 막 따끈따끈하게 올라온 한 필진의 글을 만났다.(https://maily.so/archivenews/posts/2qzp1ljjz4x) 탁견이며, 삶을 비추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필자가 기록일을 시작한 이유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차후 기록계에서는 이런 방향도 검토해야만 대중들로 하여금 기록문화의 효용성을 체감케 할 수 있으며, 개인과 사회의 수준을 숙고사회로써 한층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리라 믿는다. 솔직히 고하자면 필자의 졸고에 갖다 붙임에 지나지 않으나 필진의 글에서 제시한 이야기들을 '기록과 사회'라는 장(場)에서 바로 실천해본 것이라고도 하겠다.
우리 업계에서는 "기록인의 번아웃 주기는 보존기간 7종에 따라 온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본 독자들께선 아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일테다. 맞다. 실은 필자가 김새자고 만든 말이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정말 그렇게 되어갈 것만 같았다.

영국의 수상을 역임했던 윈스턴 처칠은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에 비유하곤 했다. 산책길에 마주치는 이웃집 개처럼 자주 보이고 끈질기게 따라다님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필자는 다행히도 만성 우울증을 타고나진 않았다. 그러나 첫 문단에서 말한 번아웃은 경험해본 적이 있다. 정말 공교롭게도 1년, 3년, 5년차쯤 되어서 왔다. 이 말만큼은 김새자고 하는 거 아니다.
첫 1년차는 돌이켜보면 번아웃이라기는 좀 모호한 면도 있다. 그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함에 있어 모든 것이 낯설어 겪었던 경험으로 생각된다. 생애 살아본적도 없는 지역에서 그저 서무업무의 한 파트라고 알고 있던 일을 하러 있는 지도 몰랐던 직군으로 처음 입사를 했기에 필연이었다. 그러나 살던 지역에서 출퇴근 하지 못하였기에 당시로써는 일종의 향수병이 느끼고 열심히 이직을 준비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3년차에는 1년차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2년차를 불태웠기 때문에 오기 시작했다. 나름 성과도 효능감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고 열심히 연구하고 찾아내고 결과물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어떠한 보상도 효능감 따위도 없었다. 실력을 키워가서 성장해감에 행복하려 했는데 필자의 위치는 늘 그대로였고 어느새 출발점에서도 거꾸로 달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5년차 역시 3년차와 비슷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온 일상생활이 마비되었다는 이유가 하나 더 있긴했다. 이제 일터에서는 나름 어느정도 자리는 잡았고 향수병을 날리고 제대로 된 생활의 터전도 마련을 했다. 3년차의 그것은 아니었지만 해소되지 않았던 보상과 효능감에 대한 부분은 '검은 개(Black Dog)'처럼 바지끝단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3년차에 이어 이때가 신체건강을 약간 잃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사가 큰 몫을 했으나 기록일에 대한 보상과 효능감이 다른 방향으로 채워지도록 하기 위해 되돌아온 결과이다.
이제는 10년차로 접어들었다. 필자의 가설대로면 이제 이 10년차만 잘 버티면 다음 번아웃은 30년차다. 그 전에 파이어(자산이 여유로운 조기은퇴)를 하면 되는 일이니 다행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다른 점은 이전에 겪어 보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어느 수준까지 맡을 수 있고 어느 수준까지 거절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한계치를 안다는 점이다. 그 한계치에서 6~7할 정도만 채워 지낸다. 최대한 머리 아프고 골치아픈 일을 피한다. 직장에서는 이관, 평가와 같은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고 자잘한 기획성 업무를 벌이지 않는다. 직장 외 기록계 각종 외부·연구활동도 최소한으로만 유지한다. 지금까지는 기록계일로 필자의 일상을 다소 포기해왔다. 그러면서 스멀스멀 잡초처럼 자라난 생각이 있었다. '또 나만 진심이었지.' 이번 2026년 정도는 필자의 생활건강과 취미를 이보다 우선시한다. 약하다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 필자는 스스로를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대결절의 치료법이 악지르기가 아니듯 헬스장에서 스쿼트를 치다 도저히 어렵다 싶으면 미련없이 바를 뒤로 놓아 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혹시 열성 기록인 중 주변의 누군가 함께 열심히 큰 과업에 동참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든다면 행여나 번아웃에 빠진게 아닐까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 전까지는 필자도 역량의 공허함과 자격지심을 열성으로 가리워 앞세운 기록인 중 한 명이었다. 모든 기록인에게 동일한 수준의 소명의식을 기대하면 안된다. 마지막 문단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다음 글은 필자가 번아웃을 마주한 원인 중 내면의 이유를 풀어보겠다. 기록과 사회이니 만큼 당연히 기록일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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