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십여 년 전에 다녔던 한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업무 이외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팀워크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다. 프로그램 운영자는 우리 팀 모두가 각자 종이에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태워버리거나, 강물이나 바다에 떠내려 보내거나, 변기에 내려보내게 했다. 종이에는 그동안 자신의 기억 속에 계속 남아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 당시의 나는 반사적으로, 뭐 저딴 걸 한다고 내 생각과 감정이 변화할까,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질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나는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 미신 같은 행위가 내 정신에 영향을 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최근에 회사의 한 직원과 갈등이 생겼다. 예전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을 때보다 더, 그 사람 생각이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사람을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그 사람에게 복수할 계획들을 세워보고, 복수를 실행하며 또 그 사람과의 대화와 행동들을 계속 시뮬레이션했다. 잠들 때는 종종 꿈에서도 만나고, 어쩔 때는 그 사람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다. 사랑에 빠졌던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정신병에 가까웠다. 관련 증상과 정보를 찾아보니 명칭도 있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고 증폭되는 증상인데, 반추 혹은 루미네이션(Rumination)이라고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 인사과에서는 직원 정신건강 유지와 복지의 일환으로 정신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는 정신적인 문제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상황, 그 심각성을 분명하게 인지했기에 정신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십여 년 전에 자신했던 나의 정신적 강함에 대한 과신은 이미 흘려버렸다. 세월이 갈수록 스스로가 얼마나 연약하고 취약한지 알아가고 있다. 심리상담사는 이미 온라인으로 한 번 만나봤던 사람이다. 코로나 당시 비상 상황에서 발생한 신체적 고립과 건강 문제로 체중이 8킬로 정도 줄었는데, 그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이번에 처음 얼굴을 보고 약 40분 정도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몇몇 조언을 해주었다. 그중 하나는 글쓰기였다. 갈등이 있는 직원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 내가 느끼는 감정들, 그 직원에게 복수하기 위한 방법, 그 직원과 떨어지기 위한 계획 등을 모두 구체적으로 문서화하기를 조언했다. 실제로 효과가 있을 거라고, 꼭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계속 문서화 작업을 하고 있다. 효과가 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좀 덜 생각난다.
이런 상황이 좀 신기해서 찾아보니 학술적 근거가 있다. 나의 경우와 같이 정신적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를 일컬어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라고 한다. 대표적인 연구자는 페니베이커(Pennebaker)인데, 실험군에게는 트라우마나 감정적 격변에 대해 글로 쓰게 했고, 대조군은 중립적인 주제에 대해 쓰게 했다고 한다. 이후 실험군 글쓰기 집단에서 면역 기능이 상대적으로 향상되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유의미하게 감소되는 결과가 확인되었다. 이후 비슷한 연구들에서도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면역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반면, 표현적 글쓰기는 면역 기능을 실제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여기에서 핵심은 의미 부여(Meaning-making)라고 한다.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넘어, 기록을 통해 사건을 객관화하고 구조화할 때 치유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위빠사나(Vipassanā)라는 명상법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아무 생각하지 말고 신체의 감각이나 느낌, 감정, 생각에 집중하는 명상이다. 움직일 때 움직이는 것을 인지하고, 즐거울 때 즐거운 것을 알고, 아플 때 아픈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바라보는 훈련이다. 이는 관찰 기반의 자기 탐구 과정인데, 심리적 불순물을 소거하고 마음의 균형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필요 이상 생각 속으로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 ‘아, 또 이 생각이 왔구나’ 하고 알아차린 뒤 그대로 둘 뿐이다. 나는 수행자가 아니다. 그래도 인간 완성을 꿈꾸었던 한때 위빠사나를 배웠다. 이제는 직장 동료로 인해 주어진 간절한 수행의 기회에 오히려 감사하며 매일 잠들기 전 위빠사나 명상을 하려고 한다. 위빠사나 수련을 통해 루미네이션의 경향을 줄이고, 바로 지금 여기 현존하는 나 자신으로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신적 치유를 위한 글쓰기와 위빠사나 명상에는 공통적인 과정이 있다. 둘 모두 탈중심화(Decentering)가 필요하다. 탈중심화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 자신이 아닌 관찰 대상으로 바라보는 과정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한 탈중심화는 생각과 감정에 대해 틀을 만들어 주는 구조화,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의 맥락을 더하는 서사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로 인해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록화가 사람을 진정시키는 이유는 단순한 감정 배출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혼란스럽고 뒤엉켜 있던 경험을 구조 안으로 재구성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 생각이 머릿속에만 머물 때 그것은 경계와 형태가 없으며, 반복되기도 하고 서로 뒤섞이기도 한다. 루미네이션이 괴로운 이유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생각과 나 자신이 거의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가 떠오르면 내가 곧 분노가 되고, 불안이 밀려오면 내가 곧 불안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변화가 생긴다. 생각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종이나 화면 위에 놓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완전히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마음속에만 있을 때의 감정은 흐릿하고 압도적이지만, 기록되는 순간 객체가 된다. “나는 분노 그 자체다”라는 감정에 빠진 상태에서, “나는 지금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다. 작은 차이지만, 치유는 그 미세한 거리감에서 시작된다.
기록은 또한 맥락 없는 혼란을 서사로 바꾸는 작업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경험은 종종 이야기의 형태를 갖지 못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상처였는지, 정말 내 잘못이었는지 설명되지 않은 채 감정의 파편과 물결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건에 순서가 생기고,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며, 이름 없던 감정들이 문자를 통해 확인되고 분명해진다. 기록은 혼란 속에 맥락을 부여하여 서사(narrative)로 바꾸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서사를 통해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기록화 작업은 통제감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루미네이션 상태에서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나는 그 생각과 감정들에 끌려 들어가 빠져나오기가 무척 힘들다. 원하지 않아도 떠오르고, 멈추고 싶어도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기록을 할 때는 내가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며, 끝을 맺고 내용을 확정한다. 생각과 감정이 나를 끌고 다니는 상태에서,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다. 단순히 감정을 끄적거리는 이런 기록들은 아주 미약하게 보이지만, 자기 통제권의 분명한 회복의 시발점이 된다.
위빠사나는 생각과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본다. “아, 또 이 생각이 왔구나” 하고 알아차린 뒤 지나가도록 둔다. 표현적 글쓰기 역시 비슷하다. 감정 속에 완전히 잠겨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그것을 문자를 통해 바라보게 만든다. 하나는 자신의 내부에서 감각과 마음을 조용히 관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기록을 통해 외재화하여 관찰하는 방식이다. 기록화 작업은 바깥으로 향한 명상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자신의 감각과 생각을 조용히 바라보듯, 기록하는 사람 역시 문장 바깥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라본다. 이렇게 기록하는 사람의 손은 명상하는 사람의 눈과 같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머릿속에만 둘 때보다,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인간은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기록하고, 사회는 책임과 증거를 남기기 위해 기록을 관리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기록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기록의 또 다른 기능을 깨닫게 되었다. 치유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록은 붙잡기보다 오히려 놓아주기 위해 사용된다. 우리는 가끔씩은 견디기 위해 쓰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적기도 한다. 기록은 정보를 남기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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