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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어떤 기록을 드러내는가

2026.02.03 | 조회 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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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최근 미국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시민을 총격해 사망하게 한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사건의 진상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지만, 논의를 빠르게 진전시킨 건 당시 상황이 담긴 바디캠(Body-worn Camera) 영상이었다. 공권력이 행사되는 결정적 장면이 기록으로 남아 있고, 그 기록이 즉각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올라오는 과정은 기록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공권력의 집행 과정이 기록되고 곧바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꽤 생경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기록들이 시민에게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지 실감하게 한다. 미국은 어떻게 이런 즉각적인 공개가 가능할까?

 

공권력을 향한 감시용 블랙박스 / 미국의 바디캠

 

미국에서 바디캠 영상의 공개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치열한 제도적 합의의 결과다. 2014년 퍼거슨 소요 사태 이후,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해명 요구가 빗발치면서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말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법적 제도로 정착되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주와 연방 기관(CBP, ICE 등)은 바디캠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시민은 특정 사건의 영상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특히 관세국경보호청(CBP) 같은 기관은 중대한 부상이나 사망 사건이 발생할 경우, 수사 중이라 하더라도 일정 기간 내에 영상을 공식 홈페이지에 선제적으로 게시한다. 이는 기록을 기관 내부의 행정 자료가 아닌, 시민에게 과정을 증명하는 '해명의 도구'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바디캠 도입의 역사가 짧지는 않으나, 여전히 '시범 운영'이나 '내부 지침'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기록의 성격 규정이다. 한국 경찰의 바디캠은 주로 증거 수집이나 공무집행방해 방어 등 '행정 효율과 증거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법'의 장벽에 부딪혀, 공익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영상의 대중 공개는 극히 제한적이다.

같은 바디캠 기록이라도 미국은 '감시와 해명'을 위해 문을 열었고, 한국은 '관리와 보호'를 위해 빗장을 채웠다. 이처럼 같은 성격의 정보일지라도 사회가 부여한 목적에 따라 접근성의 층위는 극명하게 갈린다.  

 

소개팅남 연봉, 궁금해? 검색해봐 / 스웨덴의 텍스(Tax) 털기

 

우리나라 정서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스웨덴에서는 타인의 소득과 세금 정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는 1766년 제정된 세계 최초의 정보공개법인 '민중의 정보접근권(Offentlighetsprincipen)'이라는 오랜 전통에 기반한다.

매년 '탁세링스칼렌데른(Taxeringskalendern)'이라는 책자가 발간되는데, 여기엔 지역별 소득 순위와 납세액이 상세히 적혀 있다. 스웨덴에서 소개팅 상대의 경제적 성실함이 궁금하다면 그저 이름을 검색해 보면 된다. 이웃이 고가의 외제차를 샀을 때 그 재원의 투명성을 의심하는 대신 기록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다.

우리 기준에선 명백한 사생활 침해지만, 스웨덴 사회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부패가 사라지고 사회적 공정성이 유지된다"고 믿는다. 앞선 바디캠 사례가 존재하는 기록에 대한 '접근 수준'의 차이를 보여준다면, 스웨덴의 사례는 아예 공개 자체를 목적으로 정보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경우다. 이들은 숨기는 데서 오는 불신보다, 다 까놓고 보는 시원함을 공동체의 안전장치로 택했다.

 

나는 이 집에서 지난 여름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 / 일본의 사고 건축물 정보

 

공공 기록이 침묵하는 곳에서 민간이 스스로 기록의 주인이 된 사례도 있다. 일본의 이른바 '사고 건축물(Jiko Bukken)' 정보가 그것이다. 자살, 살인, 고독사 등이 발생한 부동산은 주거 선택의 중요한 기준임에도, 집값 하락과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소유주의 재산권 보호 논리에 밀려 공공 차원의 기록 공개가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다.

이 틈을 메운 것은 민간 플랫폼 '오시마 테루(大島てる)'다. 시민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사고 현장을 지도 위에 불꽃 모양 아이콘으로 표시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게 했다. 이는 공공이 '지우기로 결심한' 기록을 민간이 '드러내기로 결심'하며 정보를 축적한 흥미로운 사례다.

사고 건축물 정보의 확산은 결국 일본 정부를 움직였다. 2021년 국토교통성은 '사고 건축물 고지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일정 기간 동안 거래 시 사고 내용을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제도화했다. 민간이 축적한 기록이 공공의 정책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 사례는 기록의 부재가 결코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며, 누군가의 침묵이 누군가에게는 정보의 소외와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록의 풍경이 말해주는 것

 

이 글에 등장한 사례들은 각 나라를 단순 비교하기 위한 재료라기보다, 기록과 접근성에 대한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다. 어느 사회든 공개와 비공개는 늘 논쟁적이며, 법적·윤리적 조정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차이는 존재한다. 어떤 사회는 공권력의 현장을 비교적 빠르게 꺼내놓고, 어떤 사회는 개인의 소득 정보를 숨기지 않으며, 또 어떤 사회는 공공이 남기지 않은 기록을 민간이 대신 축적한다. 기록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중립적이지 않다.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언제 질문할 수 있는지에 따라 기록은 전혀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기록인의 시선에서

 

기록인의 역할은 공개와 비공개의 옳고 그름을 단정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런 질문을 남기는 일에 가깝다.

  • 이 기록은 왜 만들어졌는가
  • 누구에게 접근 가능해야 하는가
  • 드러냄으로써 보호되는 것은 무엇인가
  • 침묵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마주하는 기록의 풍경은 그 사회가 스스로에게 허용한 질문의 범위를 보여준다. 어떤 기록이 쉽게 열리고, 어떤 기록이 끝내 닫혀 있는지. 그 선택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 우선순위가 조용히 드러난다. 기록인이 할 일은 바로 그 선택의 이면에 담긴 사회적 결심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증언하는 일이다.


관련 링크 (References)

 

CBP: Body-Worn Camera Video Releases

https://www.cbp.gov/document/directives/body-worn-camera-policy

NCSL: Body-Worn Camera Laws Database

https://www.ncsl.org/civil-and-criminal-justice/body-worn-camera-laws-database

Skatteverket: Principle of Public Access

https://www.skatteverket.se

Taxeringskalendern

https://www.taxeringskalendern.se

Oshima Teru (大島てる)

https://www.oshimaland.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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