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파주 용주골이 철거 된다는 기사를 읽고 20년 전,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일기장과 가계부가 생각났다.
1.
2000년 9월 19일, 군산시 대명동의 '쉬파리 골목'의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성매매 여성 5명이 질식해 사망하고 1명이 구출되었다. 2층 배전판 누전이 화재 원인이었다. 화재 시 탈출하지 못한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상가 건물처럼 보이지만 건물 출입문 밖에 잠금장치가 있었고 2층·3층 창문에는 모두 쇠창살이 달려있어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화재사건으로 묻힐 수도 있었으나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일기장을 통해 가리워졌던 진실이 드러났다. 일기장에는 성매매를 강요당하며 폭력과 욕설에 시달렸고, 화대 절반을 점주에게 떼어 주고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가계부도 발견되었다. 모두 20대 여성으로, 10대에 가출하였다가 포주에게 인신매매되어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100m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으나 경찰들이 뇌물을 받으며 이를 눈 감아주고 있었고 사건 이후에도 포주들에게 수사정보를 유출한 경찰들이 적발되어 구속되기도 하였다.
2년 뒤, 2002년 군산 개복동의 유흥주점에서 전기 합선으로 불이나 여자 종업원 14명과 남자 지배인 1명이 질식해 숨지는 참사가 다시 발생했다. 1평이 조금 넘는 쪽방 7개에 내부 통로는 60~80㎝에 불과했고 창문과 출입문은 쇠창살로 막혀있었다. 무엇보다 안팎으로 잠글 수 있는 2중 자물쇠가 설치되어 평상시는 물론, 화재와 같은 위급 상황에도 탈출이 불가능 했다. 대명동 화재 참사 이후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고, 두 사건 모두 피해자 대부분이 인신매매와 감금으로 노예처럼 생활하던 것이 드러나 지역과 시민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역 여성단체는 이 두 사건을 묶어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로 부르고, 반성매매운동을 전개했다. 2002년 조배숙 의원을 통해 발의된 성매매방지법안은 2004년 3월 2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로 제정돼 같은 해 9월 23일 시행됐다.
이 사건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기록’과 ‘언론’의 역할이었다. 당시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인권침해가 자행되었음이 밝혀졌고, 그와 더불어 공동대책위와 활동가들이 수집한 기록이 증거가 되어 법 제정에 큰 힘이 되었다.
2.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여성의 일기장과 대금 지불 기록이 고스란히 적인 가계부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록은 모두 희생된 여성들이 일을 할수록 오히려 빚이 쌓이는 악순환 구조에 갇혀 있음을 말해주었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일기나 가계부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고, 기록물을 토대로 언론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 사건 당사자가 남긴 유품 중 실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개인기록이 수집되었고, 유가족과 대책위가 활동하며 남긴 활동 사진 기록, 대책위가 언론 및 경찰서로 발송한 단체의 공문서, 변호사 및 검사가 남긴 수사 및 사건기록들이 쌓여갔다.
기록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군산 성매매 화재 참사’로 검색해 당시 기사를 살펴보았다. 437건의 관련 기사 중 중복되는 신문기사를 제외하고, 사건을 다층적으로 보여줄 기록물(매체, 소장처, 종류별)이 담겼으며, 동종 기사 생성률이 많은 것을 우선하여 사회 전반에 이슈를 불러온 기준으로 30건을 추려보았다. 매체는 동아일보,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연합뉴스, 국민일보, 매일경제 7종이 가장 많았고 그 중 오마이뉴스가 여러 기록을 토대로 사건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를 여러차례 배포했다. 아래 기사를 확인하면 대 다수 언론이 사건의 팩트 중심으로 기사를 전하되, 기사 작성을 위해서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사건기록(변호사 작성 고소장 및 법 제정과 관련된 사항, 유가족이 받을 보상금 액수), 유가족 및 피해자 개인기록(일기장, 가계부, 각서 등) 두 가지 기록을 주로 인용함을 알 수 있다.
보통은 언론사가 진보적 성향이나 보수적 성향이냐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달라질 수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좌우 성향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관점을 유지하되, 내보내는 기사의 ‘숫자’나 실제 기록을 인용하는 ‘횟수’에 따른 차이만 존재했다.
3.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참사는 오랜시간 곪아왔던 성매매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를 살피게 하고 4년 만에 법제정까지 이를 수 있게 했다. 이는 하나의 사건이 법제정이 되기까지 시간적 측면에서도 흔치 않게 빠르게 대응한 전무후무한 사건이며, 관련되어 수집되고 남겨진 기록은 한국의 성매매 역사, 여성사, 여성인권운동사를 다시 쓰게 했고 언론의 순기능까지 다각도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더 많은 기록은 관련한 여러 아카이브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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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자
글 잘 읽었습니다. 2020년 가칭 성매매여성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분들이 만든 디지털 아카이브에서도 기록을 좀 볼 수 있습니다. 군산 화재사건 사진, 인터뷰, 토론회자료집, 신문스크랩 다해서 백건 남짓이긴 합니다. 가계부는 처음 보네요. 선불금 미끼로 갖은명목 돈뜯고 동료간 맞보증시켰다던데 가계부에 다 나오겠군요. 성매매여성인권어카이브 https://archive.jkyd2004.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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