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전작 도록’이라 불리는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는 ‘특정 미술가의 모든 작품을 사진과 데이터로 수록하여 시대순, 주제 별 등으로 분류하여 정리한 목록 또는 미술관 등의 컬렉션을 시대별, 유파별, 작가 별로 구분하여 전작품을 수록한 목록’을 말한다.
일찍이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카탈로그 레조네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미술가에 대한 카탈로그 레조네의 시초는 18세기 프랑스 화상 에드메 게르생(Edme Gersaint)이 제작한 렘브란트(1606~1669)에 관한 출판물 『Catalogue raisonné de toutes les pièces qui forment l’œuvre de Rembrandt』(1751)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과 그에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와 설명을 상세하게 담았으나, 작품의 이미지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후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는 미술사 연구와 감정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술계의 생태계 변화에도 직접적 반영이 이루어졌다. 작품 목록으로 인한 학술적 연구와 직품 감정 여부가 미술시장에서 작품의 가치를 결정 짓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기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탈로그가 단순히 작품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작품의 의도와 미술사적인 맥락이 더해지면서 작가와 미술사가, 갤러리스트까지 연동시키는 역할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술시장과 전시가 발전면서 카탈로그 레조네는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세계대전을 거치며 도난 당한 수많은 미술품들의 귀환을 위한 프로젝트들로 인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현대미술가 중 한 사례로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 Gerhard Richter, 독일 드레스덴 출생)의 카탈로그 레조네는 2003년에 착수한 후에 2006년에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로 연계되었으며 계속해서 수집 및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아카이브에는 작가에 관해 출판되거나 작가와 관련된 모든 서적, 도록, 잡지, 기사, 사진, 영상, 음향 등을 수집하고 기록한다. 아카이브 소장품 중 중요한 부분으로는 미발표 원고, 문서, 서신, 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리히터 아카이브는 기본적인 3가지 업무를 중점으로 삼는다. 첫째, 작가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둘째는 미술사학자들의 연구와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마지막으로 자체 프로젝트로서 출판 및 전시 기획과 함께 작가로부터 권한을 받아 직접 작품 인증서를 발급하기도 한다.
이 아카이브에는 작가가 번호를 매긴 작품과 함께, 작가가 인정하지 않은 작품까지 포함된 카탈로그 레조네가 따로 존재한다. 작가가 살아 있기 때문에 현재에도 카탈로그 레조네는 계속해서 수정 작성 중이다. 작가가 인정하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것은 미술 작품 기록화의 미묘함과 특수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작가가 만들었지만,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작품의 목록에서 제외된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교의 자리에서 친분의 표시로 만들어준 것, 작가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해서 싫어하게 된 것, 작품 세계의 특징이 없어 예술적 의미가 없는 것,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제작된 것뿐 아니라, 어쩌다 작가가 목록에 넣기를 깜빡하고 잊어버린 작품도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작가 자신이 작품 리스트에 넣지 않은 것들이더라도 작가에 의해 제작된 것이 증빙된다면 모조리 카탈로그 레조네에는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작가의 목록과 카탈로그 레조네의 차이, 바로 그 간극에 의해서 아키비스트는 작품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그 가치를 더 세부적으로 매길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작가가 인정한 작품만을 진품으로 목록화하는 경향과는 매우 다른 점이다.
한편, 한국에서 카탈로그 레조네의 필요성 대두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본격화된 위작 논란으로 인한 미술 생태계의 교란이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초기에는 수준이 낮고 어설퍼 알아보기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에 미술시장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모사의 수준 또한 높아지면서 전문가들도 알아보기 어려운 위작도 등장하게 되었다. 진품으로 판정된 감정이 위작으로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술계는 심각성을 재차 토로하였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미술시장 안정화를 위한 방안 모색을 재고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른 방안 중 하나로 시행된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와(문체부)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의 <전작 도록 발간> 사업이다. 당시 전작 도록이 발간된 사례로는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1992~1994, 에이피인터내셔널)과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학고재, 2001)밖에 없었으니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예경에서는 2015년부터 작고 작가 중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들을 차례로 선정해 <전작 도록 발간>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회차로 선정한 박수근과 이중섭 연구를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이후로는 사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가 계속 지속하지 못한 데에는 1회 연구를 통해 밝혀진 한계점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작고 작가들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작품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에 제한 사항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시점에서 전작 도록 발간 대상 작가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사회적 격변기를 겪은 세대였으므로 작품 관련 자료나 정보가 명확하지 않았고 유족들도 기록이나 기억을 유실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사적인 교류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거나 미출품하는 경우도 잦았기에 공식적인 전시나 출품 등을 따라가며 이력을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따랐을 수 있다. 때문에 연구원들이 2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작가의 생애 전반을 아카이빙하고 작품 발굴과 진품 여부 판정까지 모두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고 본다. 또한 아직까지 미술사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직전 시대에 연관된 작가와 현재 한국미술계 내외부의 얽히고 설킨 사정을 소수 학자 중심의 연구팀이 컨트롤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서양에서 비교적 이전 시기와 몇 세기 전 작고 작가의 카탈로그 레조네가 전시와 작품의 공식적인 이력에 따라 연구 조사 가능하다는 점과는 대조되는 지점이다. 그에 따라 국내에서 전작 도록을 발간하는 프로젝트는 1회차를 끝으로 중단되었다.
대신에, 예경에서 동시에 시작하였으나 생전 작가를 중심으로 디지털 아카이빙을 지원하는 <원로 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연구> 사업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공모 선정을 통해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이 사업의 시사할 만한 점은 카탈로그 레조네와 마찬가지로 위작 논란으로 인해 그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와 관련된 모든 자료와 기록화가 온라인 서비스로까지 확장된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카탈로그 레조네가 미술 아카이브의 확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은 이미 리히터 아카이브에서도 확인해 보았다. 리히터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카탈로그 레조네는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나갈 수밖에 없기에 필연적으로 아카이브로 연결되며 연속적인 연구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제한적인 기간 안에 완료되기에는 무리가 따르며 단기간의 목록화 완성보다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을 갖추어야만 한다. 카탈로그 레조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학술적인 관점이 기초가 되어야 하며, 단기적인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미술 아카이브 지원이 필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술 아키비스트는 기록학적 체계와 미술사학적인 관점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는 고통스런 숙명 위에 놓여 있다.
미술가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그 특수성을 그들의 작품에 남긴다. 따라서 그들의 작품을 체계화할 때에는 개별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다양한 규칙과 성질을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카탈로그 레조네와 미술 아카이브에는 단순히 작품들을 일렬로 나열하는 것보다 수많은 난제들이 존재한다. 너무 먼 시대의 빈 칸도 수수께끼고, 너무 가까운 시대의 비공개 칸도 고역이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애초에 예술을 체계화하는 것은 불가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 아키비스트의 하는 일이 수많은 빈 칸과 비공개 칸 사이에서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이라고 여기다 보면, 세밀화는 아니더라도 어떤 형상인지 알아볼 수는 있는 구상화가 되는 과정 자체가 아카이브의 재미가 아닐까. 혹여 추상화밖에 안되더라도, 오래토록 심금을 울리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미정, 한국미술계와 카탈로그 레조네, 퍼블릭아트, 2017년 4월호.
디트마 엘거. (2016). 게르하르트 리히터 카탈로그 레조네: 캔버스 뒷면, 리히터의 고유번호를 따라가다. 아트북과 카탈로그 레조네의 현대: 연구, 출판, 디지타이징과 아카이빙.
오민지, & 김영호. (2022). 카탈로그 레조네 (Catalogue Raisonne) 의 분류체계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박물관학보, (42), 8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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