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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을 아카이빙한 사람들의 이야기

- 정신과 츄츄

2025.07.22 | 조회 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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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정제된 일상,
흡연처럼 고치지 못한 악습들,
다이어트를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삼십 대 도시인의 정체성까지.
                        (중  략)
영수증 안엔 대대적인 자기 반성의 시간들이 밀봉되어 있다. 그러니까 '영수증 따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 먹은 다음날, 화장실 변기에 쏟아놓은 끈적한 토사물처럼 영수증은 우리가 토해낸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몇 개의 숫자, 몇 개의 단어로.

-『아주 보통의 연애』중에서

 

 한 때, 영수증을 모은 적이 있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 가계부 대신이었다. 몇 날 며칠 몰아서 쓸 때면 언제, 어디서, 무엇에, 얼마를 썼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모아 놓은 영수증은 시간이 지나자 가계부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 할 뿐더러 한 번도 들춰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은 또 흘러 책장 한 구석에 자리한 영수증은 쓰레기처럼 느껴졌고, 버리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순간이 왔다.

 

  누군가의 소개로 24세 정신과 영수증, 40세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내과, 정형외과 등등 다른 과도 많은데 왜 하필 정신과일까?’, ‘현대인은 누구나 정신질환 하나 쯤은 갖고 있다던데 그런 내용의 책인가?’, ‘정신과의 영수증은 뭔가 특별한가?’ 등등의 나름 진지한 궁금증이 생겼다. 책을 마주하고 보니 표지에는 정신영수증이 볼드체로 되어 있다. 저자의 이름이 바로 정신이었다.

 

 

 대개는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영수증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이 추세인데 영수증을 주제로 2권의 책이 나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수증을 꺼내어 시간과 가격, 장소 위에 자신의 기록을 더해갑니다. 그것을 살 때의 기쁨과 슬픔, 그 날의 날씨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한 숨결들과 들려오던 음악에 관하여

-『24세 정신과 영수증』중에서

 

 지극히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영수증을 기록의 영역으로 가져 온 사람들, 어마무시한 양의 영수증을 모으는 사람들. 모든 기록을 애정하지만 특히 영수증을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또 한 명의 영수증 콜렉터 츄츄가 떠올랐다.

 

영수증은 다들 돈을 얼마 썼나 확인하려고 받는 걸텐데요. 저 같은 경우는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이건 왜 샀고, 누구를 위해 산 건지, 어디에 쓰였는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써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보니 웃프게도 하루의 궤적이 돈 쓴 흔적으로 차곡차곡 매꿔지더라고요. 영수증 만한 다이어리가 또 없지 싶어서요.

-  츄츄와의 개인 톡 중에서

 

 영수증은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은 사실을 표시하는 증서이다. 그러나 정신과 츄츄의 영수증에는 그들만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 우리의 영수증에도 우리만의 소우주가 담겨 있을 텐데, 일상의 소소한 기록 속에 숨어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우리 앞에 광활하게 펼쳐 놓은 그녀들이 존경스럽다.

 

👉『정신과 영수증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점

1. 영수증이 담고 있는 사연들

  • 우리는 영수증을 받으면 대개 품목과 단가, 총액만 주의 깊게 살핀다. 그게 영수증을 주고 받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수증은 한 사람의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물건이나 티켓을 구매하는 행위 속에는 나의 일상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 장의 영수증 당 한 편의 글로 구성된다. 영수증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시간과 가격, 장소이다. 거기에 저자는 자신의 감정, 날씨, 함께한 사람, 들려오던 음악 등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한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마지막에 이르면 영수증에 담긴 사연 속 주인공들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2. 세월의 흔적

영수증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영수증 상단에 써 있는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일 품목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가격 비교도 재미있는 요소다. 결국 영수증 한 장 한 장 안에 담긴 정보들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사회문화적 현상과 시대의 변화상 등을 엿볼 수 있었다. 


  • “가까이서 늘 함께하는 LG25”
    • 2001년에는 GS25가 LG25였다. 2005년 GS가 LG그룹에서 분리될 때 쇼핑 부문을 GS리테일이 받아오면서 현재의 GS25가 되었다고 합니다.
  • “더 맛있어진 세븐일레븐 삼각주먹김밥이 700원으로 가격인하!”
    • 삼각주먹김밥이 700원이었다고? 2001년 삼각김밥은 900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식당 밥값이 3천원 정도였기에 삼각김밥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편이어서 잘 팔리지 않아 가격인하를 했답니다.
    • 삼각김밥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89년이었으나 10년 동안 인기가 없다가 세븐일레븐에서 가격이나 유통 등의 문제를 해결했고, 2001년부터 본격적인 홍보에 들어가면서 매출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 “롯데 본점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롯데 정통 대바겐 07월06일부터 07월 22일까지”
    • 개인적인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대바겐이란 말을 오랜만에 마주한 듯 합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세일을 할 때, "대바겐", "바겐세일"이라는 말을 썼던 거 같은데, 요즘은 "정기세일", "블프" 등이라고 쓰네요.
  • 2001년 9월 23일 오후 9시 39분 스타벅스 명동점에서 그녀가 마신 카라멜프라푸치노는 5,000원이었다. 지금은 6,100원. 2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볼 때 커피값이 큰 폭으로 오른 것 같지는 않다. 2001년과 2025년의 소비자물가지수 등을 더 찾아보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이 밖에도 40세가 된 그녀의 영수증은 주로 외국에서의 생활들을 담고 있다. 또한 23세의 영수증은 수기로 쓴 영수증 등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고, 40세의 영수증에는 휴대폰 안의 전자 영수증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정신의 영수증에 담긴 사연들은 제각각이다. 일기처럼 매일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맥락이 없어 보이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녀가 살아온 삶을 몰래 엿보고 있는 느낌이다.

 “따로 또 같이!!

 각각 낱장의 그림들이지만 모아보면 한 권의 그림책이 되는 마법과도 같다. 일상 기록은 역시 재미있고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날마다 되풀이 되는 평범한 일상의 영역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자신만의 삶의 흔적들을 포착하여 기록의 영역으로 끄집어 내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일상 아카이브가 지향하는 바 중 하나이다.

 

  정신은 23세부터 매일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2025년 48세가 될 때까지 2만 5천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2032년에는 『55세 정신과 영수증』,  2047년에는『70세 정신과 영수증』이 세상에 나오는 상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츄츄 역시 지금도 매일매일의 영수증을 모아서 아카이빙 활동을 하고 있다.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힘든 일은 꾸준함이다, 영수증에 대한 애정으로 지치지 않고 영수증을 모으고 사연을 담은 그녀들의 꾸준함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말.

 츄츄의 영수증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쓰면서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츄츄는 영수증을 정리, 기술하는 방법과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주었으나 쓰지 않았다. 향후, 본인이 직접 츄츄의 소우주를 우리에게 소개해 줄 여지를 남겨본다.

 

 

 

[부록] 아카이브 속 영수증 엿보기!

앤디워홀의 영수증

https://warhol.netx.net/portals/warhol-exhibitions/#search/exact/receipt

자원봉사 아카이브 영수증

https://archives.v1365.or.kr/items/tagsearch?tags=%EC%98%81%EC%88%98%EC%A6%9D

오픈아카이브 영수증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886100

완월 아카이브 영수증

https://wanwolwomen.co.kr/space-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8857542&t=board

한국학디지털아카이브 영수증

https://kostma.aks.ac.kr/dataSearch/dataSearchList.aspx?cateQ=jsk&fq=com_%EC%9E%91%EC%84%B1%EC%A3%BC%EC%B2%B4_%EC%9D%B8%EB%AC%BC_fct%3A%EB%B0%95%EC%84%B1%EB%8F%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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