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과 19일, 한국공공역사협회는 ‘2025 한국공공역사대회’를 개최했다. 이는 2024년 말 협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기획된 행사로, 협회 구성원은 물론 국내에서 공공역사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관계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자리였다. 대회 첫째 날에는 “공공역사와 학교 밖 역사교육의 현장들”을 주제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포럼을 열었고, 둘째 날에는 “지역 사회의 기억 갈등과 기억 정치”를 주제로 영화 <1980 사북> 상영과 라운드테이블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틀 동안 이어진 프로그램은 그동안 막연한 개념으로 여겨졌던 ‘공공역사’의 구체적인 현장, 주체, 대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특히 이번 대회를 통해 ‘공공역사’는 전통적인 역사학처럼 사료 분석과 해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주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지난주 열린 ‘2025 한국공공역사대회’ 참석 후기를 담은 글로, 기록학과 기록관리 분야가 공공역사와 어떻게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함께 정리해보고자 한다.
1일차 대한민국역사박물관.한국공공역사협회 공동포럼 "공공역사와 학교 밖 역사교육의 현장들"
1일차(2025.7.18.)에 열린 공동 포럼은 교실이라는 전통적인 교육 공간을 넘어, 박물관, SNS, 지역사회 등 다양한 공간과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교육의 새로운 흐름을 조망하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공공역사라는 실천적 관점에서 시민과 대중이 역사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와 고민이 공유되었다.
기조강연에서는 한국공공역사협회장인 허영란 울산대 교수가 ‘교실 밖의 역사교육: 공공역사의 실천과 성찰’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그는 기존의 정답 중심 역사교육이 지닌 한계를 짚으며, 공공역사를 통해 비판적 사고력과 시민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역사교육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주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현재와 연결되는 성찰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이어진 첫 번째 주제 발표에서는 김재원 비욘드날리지 대표가 ‘국뽕 콘텐츠’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는 교과서, 일타강사, SNS 콘텐츠가 서로 결합하여 민족주의적 서사를 강화하고, 이것이 혐오 콘텐츠로 확장되는 과정을 짚었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역사 콘텐츠가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에 치우쳐 있음을 지적하며, 학계와 공공역사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두 번째 발표에서는 김수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이 박물관 자료를 활용한 현대사 교육 사례를 소개하였다. 그는 그동안 박물관이 개발해 온 디지털 교육자료, 영상 콘텐츠, 학습 도구 등을 소개하며, 이러한 자원들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역사적 사고를 훈련하는 교육자료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미국 스미소니언의 러닝랩 사례를 통해 현재 박물관에서 개발 중인 '디지털 모듈형 교육자료'의 방향성과 고민을 공유하였다.
특히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태극기, 광복, 민주화’를 주제로, 박물관 소장자료를 의미론적으로 큐레이팅하고 분해·재조합이 가능한 교육자료를 제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선행 과제가 존재함을 지적했는데, 이는 기록학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즉, 교육자료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박물관 소장자료의 디지털화 범위, 속도, 품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디지털화된 자료에 대한 해제와 연구 역시 교육적 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박물관 외의 다른 아카이브와의 연계 및 공유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세 번째 발표에서는 역사소설가 정명섭이 이용자 관점에서 역사기관의 웹 콘텐츠를 비평하였다. 그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웹 콘텐츠가 일반 대중과 역사학계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하였다.
네 번째 발표에서는 사진가 서영걸이 역사 사진이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조명하며,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과거의 보도사진, 교과서에 삽입된 이미지, SNS에서 공유되는 사진들이 어떻게 감정과 권력의 서사에 개입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였다.
다섯 번째 발표에서는 양지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생이 MZ세대의 역사 소비 방식에 주목하였다. 그는 MZ세대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빠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접하고 있으며, 이들이 역사적 사실이나 지식보다 감정적 동의에 더 큰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공공역사 콘텐츠 역시 이러한 소통 방식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은 평택 지역의 산업화·도시화 과정을 중심으로 지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정주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사례를 소개하며, 앞으로는 지역사 콘텐츠의 체계적인 수집과 연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포럼은 공공역사가 단지 학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 속에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동안 공공역사 관련 학술행사는 주로 역사학 연구자 중심으로 발표자와 토론자를 구성해 왔으나, 이번 포럼에서는 학교 현장의 역사교사, 역사학을 전공하며 연구 훈련을 받고 있는 대학원생과 학부생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주제에 맞게 발표와 토론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교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교육의 실험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흐름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학계, 박물관, 지역사회 간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2일차 지역사회 기억갈등과 기억정치 <1980 사북> 영화상영과 라운드 테이블
2일차에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1980 사북> 상영과 함께, 영화의 주제인 강원도 사북항쟁과 관련한 패널들의 라운드테이블 토론이 진행되었다. <1980 사북>은 1970~1980년대 한국의 노동자 투쟁과 산업화 과정 속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중심으로, 특정 지역과 사회 계층이 겪은 역사적 경험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공공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학술적 연구나 교과서 서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를 통해 시민들의 삶과 기억 속에 직접적으로 새겨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80 사북>은 지역 공동체와 노동자들의 기억을 공적으로 환기시키는 동시에, 역사적 상처와 불평등 문제를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공공역사가 지향하는 ‘역사에 대한 다층적이고 참여적인 해석’과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성찰하는 태도’라는 목표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특히 영화 상영 후 이어진 토론은 관객, 전문가, 지역 주민이 함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해석하는 자리를 통해, 일종의 ‘공공적 기억 공동체’를 형성하는 장으로 기능하였다.
이번 영화 상영과 라운드테이블은 ‘역사를 대중과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영상 매체의 중요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역사적 기억을 활성화하는 실천적 사례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강원도 사북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로 근무 중인 이우석 씨의 경험은, 공공역사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현장 가운데 학교가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는 과거 학생들에게 부모나 가족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북항쟁의 기억을 조사해오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사건을 처음 접했다는 사실에 역사교사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사북항쟁처럼 한국 노동사에서 중요한 사건조차 지역사회 내에서 세대 간 기억의 전승이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은,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교육하고 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져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포럼의 참가자들은 영화와 토론을 통해 학교 밖 역사교육과 공공역사의 실천 현장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역사교육과 기록관리, 그리고 공공기억의 확산 방안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역사, 기록학과 어떻게 만날까?
무엇보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기록학과 기록관리 분야의 역할은 분명하다. 공공역사가 시민의 참여와 해석을 중심에 두는 과정이라면, 기록 전문가는 그 참여가 가능하도록 정보를 구조화하고 맥락화하는 기반을 책임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메타데이터의 표준화, 자료의 선별과 해제, 그리고 그 맥락화 과정은 모두 기록학적 전문성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영역이다.
기록물은 단순히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시민과 소통하기 위한 ‘역사 자원’으로서 활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용자 중심의 아카이브 설계, 시각적 해석, 다양한 이용 방식을 고려한 운영이 필요하다. 동시에 기록의 선정과 배제, 공개 범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 역시 공공역사 실천에 앞서 깊이 숙고해야 할 과제이다. 기록관리가 단순히 행정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기억을 설계하고 역사적 감수성을 구현하는 실천적 매개로 자리 잡을 때, 공공역사는 보다 튼튼한 기반 위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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