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레터는 아키비스트라운지에서 연재 중인 서간문 시리즈, '인사이트 아웃 #1 평가심의를 평가합니다' 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이전 글은 아키비스트라운지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4/2 업무담당자의 선의와 책임감에 의존하는 구조: UX 없는 기록관리기준표
| 4/16 그 기록이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To. Bloom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시작한 하루. 조용한 사무실. 근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내 머리는 로딩 중이던 때에 뜬,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속보. 그리고 몇 시간 후 전달된 너무 다행스러운 소식. 그리고, 전원을 구조했다는 뉴스는 오보였다는 또 다른 속보. 매년 한 번씩은 다시 떠올리는 장면이라 이미 왜곡된 기억일 수 있지만, 그 날 사무실에 나 말고 누가 더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날이 되면 뉴스가 뜬 모니터를 보던 내 뒷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돼.
그 다음 해에는 내 첫 조카가 태어났고, 다시 5년 후에는 내가 엄마가 되었어. 그 전에도 이미 슬픔과 우울과 울분과 분노 속에 있었지만 그 이후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끝도 없이 소환되는 비극에 대해. 나는 이제 자녀가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그 일들을 다시 기억해.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완전히는 풀지 못한 질문이 있어.
기관에서 일하는 기록전문가는 이럴 때 뭘 할 수 있을까?
물론 아키비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진 기록전문가로서 시간을 따로 내어 자원봉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나는 매일 공공기관에서 8시간을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생각해보게 되는거야. 우리는 대학원생때부터 많은 자료를 봐왔잖아? 기록이 없다는 교육 자료 말이야. 성수대교 붕괴 사건도, 삼풍백화점 참사도, 이런 것 하나만 검색창에 입력해 보면 끝도 없이 나오는 또 다른 일들도. 그런건, 있어야 하는 기록이 있게 하는건, 안에서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학생 땐 이런 사회적 참사들에 대한 기록이 없는게 관련자들이 고의적으로 폐기를 했기 때문일거라고만 생각했거든? 그런데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어렴풋이 추측하게 된 건, 기록이 없는게 100% 고의에 의한 폐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 남아야 하는 기록이 사라지지 않게 막는 실효성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기록물 폐기 금지 조항이 신설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지금의 폐기 금지 제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폐기 금지 제도는 뭐랄까, 참으로 공공부문스러워. 사람들이 일을 하는 진짜 목적이 일의 본질에 있는게 아니라, '나는 이 일을 했다', '정해진 절차를 지켜서 했다'고 말하는데 있다는거지.
법령에 폐기 금지 조항이 신설되기 전이긴 하지만 세월호 참사 기록물 폐기 금지 사례[1]를 볼까.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정권이 바뀐 후 2018년에 사회적 참사 관련 기록물에 대해 폐기 금지 조치를 했잖아. 그건 국가기록원이 주체가 되었다기보다는 그 한 달 전에 출범한 '가습기 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시행한 것이었지만. 보도자료를 보면 기록물 폐기를 금지하고 대상 기관에 한 건 '사건 관련 기록물'의 보유(폐기) 목록 현황 제출 요청이었어. 보도자료 내용 외에 자세한 진행 과정을 알 수는 없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계엄 기록물 폐기 금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아.
그러니, 기관 기록연구사로서는 바로 시뮬레이션이 되는거야. 행정안전부 아래에 있는 국가기록원이 기관에 폐기 금지 공문을 보낸다. 관련 키워드를 포함한 관련 기록 보유 현황 제출 요청이 포함되어 있다. 공문이 기록관리 부서로 배부된다. 내용을 확인한다. 일단 보유기록물 목록에서 (그게 철이든 건이든) 검색해본다. 아예 없는 건 좀 곤란한데? 전자결재문서쪽을 볼까? 취합을 해보자. 이런게 있군. 그 부서들에 메일이나 문서로 회신을 요청한다. 각 부서 담당자들은 '이런게 우리 부서에 있어?'라고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대충 결재문서를 검색해보고,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캐비닛을 한 번 슥 열어보고 닫는다. 기관에 따라 어떤 곳은 기록관리 부서에서, 어떤 조직은 주로 국회 요구자료 취합과 제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최종 목록을 확정하고 회신. 회신한 목록에 있는 기록은 정해진 기간 동안 평가심의에 올리지 않는다. 오? 어쨌거나 뭔가 착착 진행되는 것 같네?
그런데 잠깐만.
첫번째 질문. 진짜 이게 다야?
두번째 질문. 진짜 이게 다인들, 그게 정말 다일까?
첫 번째 질문. 목록의 문제(일단 기록물등록대장에 등록된 문서 중 관련 문서로 제한할게). 각 기관에 '관련' 기록물 보유 현황을 받아. 그 목록에 있는 기록에 대해서만 폐기 금지를 하면 폐기 금지 제도의 목적이 실현이 될까? 기관이 일부 정보를 고의로 또는 실수로 누락했다면, 그걸 누가 잡아낼 수 있을까? 부서 담당자들이 뭐가 있나 보다가 '아 이런게 있네?' 상황 앞에 섰을 때는 이런 고민을 할 수도 있어. '흠 이걸 목록에 쓰면 왠지 좀 피곤할 것 같은데..?' 또는, '이거 부피도 큰 문서더미 안에 껴 있는건데 다같이 못버리게 되는거 아니야?' 같은. 이런걸 고려해서 아예 특정 기간의 기록물등록대장 목록을 제출하게 한다면, 그건 또 누가 취합을 하고 하나 하나 '이건 폐기 금지 대상' 이라고 선별해서 기관에 폐기 금지 통지를 할 수 있을까? 기관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일이 아니면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문서들을?
두 번째 질문.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기록의 정책적 범위의 문제. 폐기 금지 대상 기관들이 '관련 기록'의 목록을 성실하게 작성해서 냈어. 그걸 취합한 전체 리스트가 정말 다일까? 아니지. 각 기관이 '기록'을, 대외기관에서 자료를 요구할 때 내야하는 그 '기록'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 봐야지. 공공기록물법에서는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ㆍ접수한 기록물'이라고, '모든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를 포괄한다고 하고 있지만 일상에서도 법정에서도 '기록'은 주로 결재가 완료된 문서를 지칭하니까. 결재문서가 아닌, 대면 보고만 한 문서 파일이나 업무 메모 같은건 금지할 수 있는 범위에 있지도 않지. 폐기 금지 타이밍이 적절했다면 담당자 책상에 있을 확률이 높고, 시간이 지났더라도 등록 대상이 되고 이관 대상으로 잡혔을 지 알 수 없는 것들. 폐기 금지를 고시하면서 그 범위까지 명시한들..(생략).
추가 질문. 사후 관리의 문제. 만일 폐기 금지 제도가 실효성이 있어. 그래서 폐기 금지가 잘 이루어졌어. 그리고 어느 날 폐기 금지 대상인 기록물을 폐기한 기관 또는 개인이 적발되었어. 그럼 그 기관 또는 개인은 어떤 벌을 받지? 공공기록물을 무단으로 폐기했다는 판결이 난 후에 누군가 처벌을 받은 적이 있던가?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기관들이 국가기록원의 폐기 금지 조치에 지시대로 응해야 하는 이유가 - 폐기 금지의 당위성이나 담당자들의 성실함, 선함 또는 책임감 말고 - 있는거야? 예산 편성권도 없고 독립된 중앙부처도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의 금지 조치에 말이야.
폐기 금지 조항이 신설되는 과정에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더라. 2017년 12월에 국가기록관리 혁신 T/F가 발간한 '국가기록관리 혁신 방안 보고서'에는 '기록처분 동결제도'라는 이름으로 제안이 되었다가, 행정안전부 입법예고안에서는 '폐기중지 제도'가 되었다가, 의안 원문에서는 '폐기 금지'로 다시 바뀌었더라고. 주체도 달라졌고. 입법 제안 후에 수정된 내용이면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경위를 알 수 있을텐데 아예 의안접수 단계에 이미 바뀌어 있어서 자세한 과정을 알기 어려운게 아쉽고 궁금해. 별 게 아니었더라도 말이야(이런 과정과 맥락을 남기는 게 기록관리의 중요한 측면이 아니었던가).
그런 상황에서 기관을 설득하고 최선을 다해 사회적 기억과 관련된 기록을 지켜야지! 라고 할 수 있어. 물론 그래야지. 노력해야지. 그런데 말이야, 법이 제정된 게 1999년이고 지금은 2026년인데, 여전히 공공부문의 기록관리가 이렇게까지 그 기관 기록연구사 개인에게만 달려있는게, 맞아?[2]
아직도 나는 그 재난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들을 차가운 물속에서 구해낼 수 없다면, 소설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닮은 인물을 그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뿐이었다.
문지혁,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2022, 다산책방) 수록작「다이버」에 대한 작가의 말
이 문장은 문지혁 작가가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쓴 작품인 '다이버'에 대해 쓴 창작 노트야.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직 그 재난들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4월 16일이라는 날짜 앞에서 무력한 죄책감과 좌절을 느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이, 내가 기록전문가가 되면 하게 될거라고 믿었던 일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게 할 방법은 있을까. 있어야 하는 기록이 존재하도록 할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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