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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한 기록인과의 추억을 회고하며

"당신은 무엇을 때문에, 무엇을 위해, 남모르는, 당신은 불도 피워보지 못할 초를 닦아놓고 있었습니까."

2026.01.20 | 조회 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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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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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그 분이 떠나신 2023년에 개인적으로 쓰는 공간에만 써두고 있다가 이제서야 먼지를 털어내고 광장에 꺼내어본다. 기회가 되면 꺼내야지 하고 생각을 하던 찰나 필자는 오늘도 그분이 남모르게 남겨놓고 간 공적 위에 혜택을 받았는 일을 겪었다. 벌써 3년이 지났음에도 먼저 가신 그 분께 마음속으로 되물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남모르는, 불도 피워보지 못할 초를 닦아놓고 있었습니까."


사람 가는 일에 순서가 없지만 이별은 영원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죽고사는것도 의지대로 되지는 않건만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의지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부고를 많이 받는다. 서른 중반을 접어드니 이제 두 세대(60년 간격) 윗 사람들이 떠나는거야 아침에 일어나 냉수 한잔 마시듯 예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간혹 한 세대(30년 간격) 윗 사람들이 떠날 때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백세시대라 하는 요즘 시대에 이순(耳順) 무렵 갈 길을 달리하는 자, 특히 아는 사람일적에는 흡사 손톱 밑 가시가 찔린듯 묘한 감각을 마주한다. 오늘의 소식이 그러했다. 예순하고도 셋. 세간에서 제 2의 인생기라 한다. 당신께 그런 운은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 지병이 있었다고만 알았고 정확히 어떠한 연고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불미스럽진 아니터라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스스로는 소위 전문 딱지를 붙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름부터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렸다. 세평(世評)으로 판사하면 판단하기 좋아하고, 검사하면 의심하기 좋아하고, 교사하면 가르치기 좋아하는 것이 몸에 밴다고 한다. 직업병이라고도 하며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리치면 우리의 직업도 극도로 악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골동품과 쓰레기에 집착하는 저장강박증세로 보일 수 있다. 기실 기록 다루는 사람과 저장강박증세는 한끗차이 일지 모른다. 다만 누군가는 자격을 얻고 일로써 하고 누군가는 자격이 없고 주된 일이 아니더라도 한다. 그러면 자격을 얻고 일로써 하면 그럴듯한 직업이고 자격이 없고 주된 일도 아닌데 열심이면 광인(狂人)인걸까?

 

단연코 필자는 당신의 행적을 광인의 범주에 넣고 싶지는 않다. 업무분장을 맡은바 성실히 수행한 것이 사회적으로도 광인의 범주에 들 행위는 전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다. 무릇 기록 다루는것에 대해 무지하거나 소홀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뭘 그렇게까지."로 평가될 수 있다. 하나의 기록물을 '서무업무' 분류로 포함한다고 해서 그 분류에 속한 기록물이 모두 낮은 가치를 지니는건 아니듯 당신의 행적 또한 그렇게 어떤 일 하다가 퇴직해서 소천하신분 정도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기록 다루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필자는 강변하고프다.

얼마전 필자는 사회적 사건과 관련된 기록물철을 기록관에서 식별하여 정리하였다. 아마 이 업을 하며 어려운 말로 리비도(libido) 충족에 가까운 느낌을 맛본 순간이 아닐까 한다. 학부시절 탐독한 막스 베버(Max Weber)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당신이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일을 하십시오.”

ㅡ Max Weber 「직업으로서의 정치」


거인의 거울에 비추어 볼 때 그래도 필자는 이 일을 하며 밥벌이 하는게 안맞지는 않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을 하며 입에 풀칠도 할 수 있는건 행운이기도 하다. 전문은 고사하고 어디가서 문전박대 안당할 명함도 필요하니까 말이다. 사실 '기록, 전문'은 명품은 될 수 없지만 가성비, 중저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발로였다 하면 적당하겠다. 그렇다면 기록전문이라는 명함에 필요한 요건은 무엇인가 하는 화두가 생긴다. 전문요원 자격을 취득하는 방법은 우리끼리니까 더 길게 이야기하는것이 입 부르트고 손 아플테다. 그런데 모두가 동의하겠으나 자격증 따는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예컨대 ICA도 국가기록원도 협회도 헌장이나 윤리강령 등을 정해놓고 그러지만 이를 매일 아침 책상앞에 붙여놓고 마음속으로 엄숙히 선언하는 자 있을까. 그도 필요없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숙지하고 기록 다루는 일에 있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매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갑자기 난데없이 시비조냐면 필자 스스로 양심고백 하나하고 싶어서이다. 송구하게도 이제까지 필자가 기록 다루는 사람 아닌 사람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해왔던 '사관', '아키비스트' 운운은 사실 듣기좋은 뻥이었다. 앞서 말했듯 입에 풀칠할 거리와 명함에 새길 글자가 필요했을 뿐이다. 아니 그래도 처음에는 그 헌장, 윤리강령 같은 문구에 맞춰서 좀 해보려고는 했다. 역사, 문헌정보에 대한 흥미가 없던것도 아니었고 매일 조금씩 또는 종일 파고들어도 지치지는 않으니 재능도 있었다. 모으는거 좋아하고 남의꺼 보는거도 좋아한다. 그래서 힘 안들이고 하기 제격이라 생각해 시작했다. 했는데, 물결은 생각지도 않고 앞으로만 나가려하니 어느 순간 표류를 하고 있었다. 안팎의 조직논리와, 공무원 후려치기 등에 피로를 느꼈다는 갖잖은 핑계로 기록물 정리는 대강 100매 이내로 편철 맞추고 문서보존표지만 씌워서 실체도 없는 기록관이라는 맥거핀 같은 장소에 갖다놓으면 다라고 변명하였다. '연구, 전문' 따위를 걸어놓은 주제에 퇴근하고 나머지 시간을 연구하는데 쓰는게 아니라 웹서핑이나 온라인게임에 골몰하거나 어떻게 하면 허울좋은 총무과, 총무팀 업무라는 이름으로 필자에게 올 지 모르는 잡일을 더 방어 할지에만 골몰하게 되는 7년차(글을 퇴고한 현재 10년차 이기에 세월의 간극은 있으나 부끄럽게도 여전하다.)로 변질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을테다. 좋게 말하면 적응한 것이고 직설하면 고여버렸다.

 

그럼에도 필자는 지금도 기록 다루는 사람이 맞기나 한지, 기록 일에 전문성이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중이다. 초임발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을 접하게 되며 처음 그 회의를 느꼈다면, 지금은 당신을 추억하며 다시금 회의에 빠졌다고 하겠다.

 

공공에서 기록연구 외 직군이 기록 다루는 일에 신경을 쓴다는 건 기관 목표에 기록 다루는 일과 관련된 부분이 없는 이상 아주 예외적이거나 별종이라 할 수 있다. 소수직렬의 비애니 기록에 대한 직원들의 무관심이니 어쩌니 하는건 우리끼리 다 아는 이야기니까 짧게만 풀자면 그렇다. 특히 필자는 운좋게 기록 다루는 라이센스 하나 가진 주제에 시끄럽게 주장하는 처지인데 시끄럽게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기록을 제대로, 잘, 끈기있게 다루는 사람을 만나면 일시적인 아노미 내지는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당신은 필자에게 그런 분이었다.

 

7년전 처음 기관으로 발령받았던 때였다. 부끄럽게도 그때까지도 필자는 법령상 단어하나 구분하지 못해 쪽팔림을 겪기도 했다.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앞도 뒤도 분간 하지 못하고 있을때, 본사에서 사무소 담당자 분은 나이드신 분이니 잘해드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제서야 생각났다. 발령받기 전 미리 조직도를 보고 왔는데 필자가 속한 분사와 더불어 사무소가 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당연히 담당자도 있을 터, 업무차 연락을 드려봤다. 특유의 사투리가 묻어왔다. 삼십여년을 서울 촌사람으로만 살았기에 이직으로 인해 타향살이를 하게되어 이 곳 사투리도 익숙하지 않은 때였다. 아주 정중하면서도 오랜 경험치가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아무리 필자가 분사에서 사무소까지 총괄을 한다지만 그 정도 경륜이 있는 분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군대로 치면 초임 소위가 나이 지긋한 부사관에게 "자네가 이 부대 주임원사인가."를 시전했다가 초래할 재앙을 두려워 하는 것과 같다. 사실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하였다. 너무 아는 체 하고 으스대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이었다.

 

12월이 되어 부랴부랴 평가심의를 앞두고 지도점검을 나섰다. 관할하고 있는 곳의 현황이 어떤지 두 눈으로 직접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무소가 위치한 지역은 하늘이 너르고 공기가 트였다. 터미널에서 내려 사무소를 찾아갔다. 대강 과를 찾아가니 인사를 하며 나오셨다. 역시 통화에서 들었던 목소리 만큼이나 경륜이 있는 인상이었다. 여유 넘치면서도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했던 느낌이었고, 그 느낌은 이어서 각 과와 문서고를 돌며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그 분은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필자를 길들이기보다 '공부 많이하고 오신분이니 그동안 제가 못한 부분들이 잘 되어갈 수 있도록 좀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경험적인 부분은 저한테 의지를 해야 될테요.'라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충분히 경험과 연륜으로 압도할 수 있음에도 한 발 물러서면서도 하실 말씀은 다 하셨다.

 

사무소의 담당자면 으레 처리과 기록물관리책임자 수준, 아니 소위 일반서무의 기록관리 업무 처리 수준을 생각한다. 경험과 일 처리는 꼭 비례하지 않음을 이전까지 겪어온 사회생활과 임용 후 얼마되지 아니한 기간에도 뼈저리게 느껴왔다. 좀체 모범으로 삼지 못할 선배들도 목도했다. 기록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례까지 수개월내로 목도한 필자로써 당신은 아주 정반대, 반전 격의 인물이었다. 운전이 주업무인데 남는 시간에는 문서고 공간에 자리를 하나 얻어놓고 꾸준히 계셨다. 대부분 이 이야기만 하면 쉬러 들어갔겠거니 생각한다. 그랬다면 필자는 그와의 기억을 곱씹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문서고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문을 열자마자 보존상자십층종이탑과 홍보 캐릭터 탈이 굴러다니고 거미줄이 쳐있던 지사의 맥거핀 기록관보다 백배는 나았다. 중요기록물은 두 서가에 집중되었으며 서가를 쉽게 식별하도록 라벨이 깔끔하게 붙어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중요기록물은 규격에 따라 적절한 보존상자를 구해 일정한 수량대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한시기록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자라벨은 깔끔하게 인쇄되어 있었으며 날클립으로 고정이 되어있었다. 이유를 여쭈어보니 사무소 예산이 많지 않기에 상자를 종종 재활용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로는 진행문서파일이 그대로 꽂혀있었다. 법대로라면 업무가 종료된 후 문서보존표지로 이철해야 했으나, 어차피 폐기될 확률도 높고 재책정이 되면 그때 그런 조치를 취하여도 될것이었다. 하나하나가 핑계의 소산이 아니라 법령의 테두리에서 적합한 방법을 찾고자 하는 고민의 산물이었다. 맥거핀 기록관에조차 방치되어있던 항온항습기는 24시간 가동되고 있었으며 출입대장, 열람대장 등이 완비되어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실물 기록물은 대체로 시스템의 질서와 일치하였으며, 일치하지 않는 경우 별도로 편철한 후 기록관리기준표의 기준을 준용하여 정리되어 있었다. 처리과에서부터 그러했다. 진행문서파일을 써서 시스템과 일치되도록 편철 하고 있었다. 이는 그 분의 끈질김에서 비롯된 성과였다. 비전자문서는 때가 되면 전부 서무가 모아 관리하도록 하고, 이관목록을 작성하지 않은 기록물은 이관을 철저히 거부한다고 하였다. 시스템에는 등록되어 있는데 처리과에서 모종의 사유로 누락한 기록물은 별도로 표기하여두고 찾아내면 보존서고대장에 옮기거나 보존기간에 따라 평가심의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최근 국가기록원에서 일방적인 통합인수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덕분에 완벽히 대비가 되었다. 도대체 몇 수 앞까지 바라보신건가 생각이 든다.) 보존상자표지의 깔끔함 또한 그 비결이 있었다. 보존서고대장 엑셀파일에 기록물철 메타데이터를 입력하면 법령 서식에 맞게 자동으로 생성해 출력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물론 이 서식은 전산에 능통한 분과 함께 고민했다고 하나 "기록관리시스템이란 물건은 그다지 쓸만한게 못 돼. 모든 기록을 다 등록하는건 불가능한 일이야."라며 화두를 던지는 것부터가 범상치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중요기록물 서가에는 사무소 입장에서 각종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행정박물을 수집하고 있었으며 나름의 질서로 고유번호를 부여해 라벨링까지 마쳐두었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게 왜 행정박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있었으나 당신의 판단과 안목을 존중하고자 한다. 한 기관에 말뚝으로 근무하며 여러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을테고 그것을 행정박물로 지정했다는 그 행위와 맥락 자체로써 칭컨데 '메타행정박물'이라고 할테니 말이다.(성과평가나 실적을 위해 어거지로 지정한건 절대 아니라는 점을 필자는 안다. 알다시피 그런 것과 당신의 승진, 보수 따위는 일절 관계가 없었다.)

 

비록 기관 정원 40명 남짓, 2개 처리과. 아주 작은 사무소지만 담당자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다면 그 마저도 쉽지 않다는 현실을 대부분의 우리는 직감할 수 있다. 1인의 전문요원이 담당하는 조직 범위가 크면 큰대로 모든 기록관리 프로세스를 법령상 필요최소만큼만 준수할 수 밖에 없고, 작으면 작은대로 고통분담이라는 미명하에 각종 부가 행정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 2000년대의 행정조직 생리다. 또, 법령을 100% 준수하려 하면 하는대로 할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것이 기록 업무의 현실이다. 필자를 포함 당장 이글을 일독하는 공공기관 종사 전문요원들도 서고에 있는 기록물이 전부 RMS와 대조가 되는지, 문서번호가 제대로 적혀있는지. 대부분 자신있게 나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그런 지난한 작업들을 운전업무가 주업무이고 기록관리가 부가업무인 상태에서 충실히, 소신껏 수행해갔다. 어지간한 전문요원도 해내기 힘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업을 오로지 자신이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해나갔던 것이다. 자, 이 정도면 누가 전문요원인지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이런 현실을 초년차부터 보았으니 은근 전문요원이라 자신만만해 하던 필자가 그 분을 만나뵙고 알 수 없는 좌절감에 부딪힌건 필연이었다. 그럼에도 그 분과의 만남은 곧 축복이고 행운이기도 하였다. 만약 그 분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또는 그 분이 사무소에 근무하지 않았다면 좁게는 필자가 맨땅에 머리박아가며 정비하느라 더욱 더 정신 없었을테고, 넓게는 기록관리라는 건 전문요원만 관심을 갖고 일반직원들은 경시하기 마련이라는 뿌리깊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내일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것이다. 그 후 필자는 누군가의 유명한 말을 베껴와서 "문제는 처리과야"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다. 석사과정시절 기록관리법령 수업에서 0세대 선배님께서 해주셨던 "정리, 이관이나 단순히 목록만보고 평가·폐기하는 작업은 아무나 1년만 해봐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몸으로 닿았다. 당신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지만 그랬음에도 학자연하는 이들보다 더 충실하게 묵묵히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후 맥거핀 같은 기록관에 매어있기 전에 처리과 기록관리를 바로잡는 것 부터가 정상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관, 평가 이전에 생산단계 하나부터 정석대로 바로잡고 체질개선하는 작업을 부족하지만 현재까지 나름 끈질기게 해가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기록 일 한다는 자가 회고할 사진 한 장 녹록지 않았다. AI의 힘을 빌어 느낌을 전한다.
부끄럽게도 기록 일 한다는 자가 회고할 사진 한 장 녹록지 않았다. AI의 힘을 빌어 느낌을 전한다.

떠난 분을 추억한답시고 필자의 사담만 실컷 늘어놓아 잠시 흠칫하며 결례가 된 것이 아닌가 했다. 기실 그 분의 사적인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늦장가를 갔다는 사실과 슬하에 자식이 있다는 것 정도만이 필자가 그분에 대해 아는 전부다. 출장이 끝난 후에는 차를 몰고 한번 바람쐬고 가라고 필자를 태우고 일주하신 것 정도가 그분과의 추억의 전부다. 아버지뻘 나이차라는 이유로 술 한잔 기울이자고 채 말씀드려보지도 못하였다. 다만 어쩌면 세간의 평으로는 '잠시 스쳐간 사이' 정도의 세 어절이면 끝날 관계에서, 필자가 지난 일한 시간 간 그리고 앞으로도 받게 될 영향은 어느 기록인 못지않게 컸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감히 필자는, 필자만이라도 그 분을 홀로라도 기록인이라는 세 글자로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기록인 답게 가장 어울리게 이렇게 모두가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겨 추모코저 한다.

부디 그곳에서는 이승에서는 못다한 제 2의 생을 제 3의 무언가로 이룩하시길 소원하며,

영면하소서.

2023. 1. 15.

기록인 故이 모 주무관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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