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격의 거인: 대중까지 매료시킨 인기 요인 분석
올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인상 깊고 좋았던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올해 마지막 뉴스레터는 쿠키레터🍪로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20대를 함께한 작품이기도 하고, 특히 올해 들어 이 작품에 새롭게 빠진 사람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책과 영화, 작품들 가운데 <진격의 거인>은 제게 단연 인생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본 다크 판타지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애니메이션 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대중까지 열광시킨 작품입니다. 2009년 만화 연재를 시작으로 11년에 걸쳐 이어진 이 이야기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이른바 ‘머글’층까지 사로잡으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비교적 최근인 2025년 3월 13일, 극장판 개봉을 계기로 잠잠하던 팬들이 다시 영화관으로 몰리면서 “이 작품은 왜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은 걸까?”라는 질문도 함께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유명 유튜버와 전문가들까지 이 작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이를 분석하거나 리뷰한 영상 가운데에는 조회 수가 100만 회를 훌쩍 넘는 콘텐츠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작품을 이토록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진격의 거인〉의 폭넓은 인기 비결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윤리 구조, 역사·정치적 상징성과 세계사적 맥락, 몰입도를 높이는 서사 구조와 스토리텔링 기법, 팬덤에서 탄생한 밈 현상, 그리고 애니메이션 팬이 아닌 일반 대중까지 열광하게 된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복잡한 윤리 구조

〈진격의 거인〉은 겉보기에 인간 대 거인의 전형적인 선악 대립 구도를 취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독특한 윤리적 딜레마를 선사합니다 . 초기에는 “인간(선) vs 거인(악)”처럼 보였던 흑백 구도가,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완전히 뒤집히며 인간도 악이 되고 거인도 선이 되는 상황까지 치닫습니다.

이를테면 인간을 위협하는 절대 악으로 여겨졌던 거인이 사실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분신임이 드러나고, 믿었던 친구가 거인이거나 적으로 돌변하는 충격적인 전개도 나타납니다. 작중 주인공 에렌조차 최종장에 이르면 학살을 일으키는 ‘악당’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마는데, 처음 복수를 다짐했던 정의로운 소년에서 스스로 악이 되어 사라지는 결말은 독자들에게 큰 혼란과 동시에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처럼 절대선이나 절대악은 없으며, 관점에 따라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어 작품을 한층 복잡하고 성숙한 방향으로 이끕니다. 기존의 영웅 서사처럼 끝내 모두 화해하거나 악을 전부 몰아내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누구도 완벽히 옳지 않은 비극적 현실을 보여준 점이 〈진격의 거인〉을 특별한 수작으로 평가받게 한 핵심 요인입니다 .
역사적·정치적 상징성과 세계사적 맥락

작품에서는 엘디아인이 팔에 별표가 그려진 완장을 차고 거주구역에 격리되는 등,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상징이 등장합니다.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에는 실제 역사와 정치적 현실을 투영한 상징과 은유가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작품 속 인류 역사인 엘디아 제국과 마레 제국의 대립은 가상의 설정이지만, 식인 거인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던 엘디아 왕조와 이에 맞서 거인 병기를 이용해 엘디아를 타도한 마레 제국의 이야기는 잔혹한 제국주의 전쟁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

예를 들어, 마레 정부가 엘디아인들에게 완장을 채워 거주지에 격리하고 차별과 억압하는 장면은 과거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격리 수용하고 식별표를 부착시킨 홀로코스트의 뚜렷한 상징으로 읽힙니다. 실제로 엘디아인 완장의 별 문양은 나치의 노란 별을 연상시키며, 작중 설정은 “벽 안의 국민들이 거인과의 전쟁 기억을 모두 조작당하고 왜곡된 역사 속에 살아간다”는 식으로 제시되어 역사적 트라우마를 암시합니다.

이 작품의 근간에는 민족 간 증오와 전쟁, 제국주의적 학살 등의 세계사가 은유적으로 녹아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오랜 증오를 딛고 평화에 이르는 결말을 통해 “한 세기 전 비극적 역사를 21세기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또한 거인의 존재는 생화학 무기나 대량살상무기(WMD)의 은유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 덕분에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현실의 어두운 역사와 권력 구조를 반추하게 만드는 깊이를 갖췄습니다.
서사 구조와 몰입도를 높이는 스토리텔링 기법

탄탄한 주제의식과 더불어, 〈진격의 거인〉은 빼어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독자와 시청자를 끝까지 몰입시키는 힘을 발휘합니다. 이야기 곳곳에 뿌려진 수많은 떡밥과 미스터리는 매 회 새로운 궁금증을 유발하며 독자의 기대를 증폭시켰습니다 . 예컨대 1화부터 제시된 “벽 바깥 세계의 진실”이나 지하실의 비밀은 수년간 떡밥으로 남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이러한 장기적 복선과 서스펜스가 작품의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주요 인물들의 과거와 거인의 정체에 얽힌 비밀들도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가 반전과 함께 드러나는 전개가 많아, 독자들은 추리를 거듭하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다중 시점 서사 역시 눈여겨볼 요소인데, 후반부에는 적국 마레 측 인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독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기존 사건들을 재해석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지적 세계관 전환은 초반의 정보들을 새로운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하여 극적 흡인력을 높였습니다. 한편 애니메이션 연출 면에서도, 충격적인 오프닝 연출(거인이 엄마를 잡아먹는 장면)과 예상 못 한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배신 등이 시청자를 사로잡았습니다. 극중 캐릭터들이 느끼는 공포와 절망을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하며, “보는 이에게도 잔혹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팬덤 밈과 문화 현상: ‘기억 조작’부터 ‘이건 역사다’
〈진격의 거인〉의 인기가 커지면서 온라인상 팬덤에서는 여러 유행어와 밈(meme)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기억 조작”과 “이건 역사다”라는 유행어입니다. “기억 조작”은 작품 내에서 왕가의 시조 거인이 국민들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설정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팬들은 이를 다양한 상황에 재치 있게 적용했습니다. 특히 〈진격의 거인〉 완결 후에는 “우리 모두 거인과의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조작당했고, 역사는 철저히 왜곡되었다. 진격의 거인은 우리가 잊어버린 세계의 역사다”라는 팬들의 패러디 문구가 인터넷에 퍼졌습니다.
이는 마치 작품 속 이야기가 실제 역사인 양 꾸민 재미있는 밈으로, “이건 역사다(이건 레전드다)”라는 감탄사로 요약되어 유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심장을 바쳐라!”(조사병단의 구호), 같은 문구들이 밈으로 확산되었죠. 팬들은 이러한 2차 창작 밈 문화를 통해 작품의 감동과 충격을 재밌게 공유하며, 〈진격의 거인〉 신드롬을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 현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밈들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나가며 작품의 인지도를 더욱 높이는 데 일조했고, 〈진격의 거인〉이 단순한 만화/애니를 넘어 동시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데 기여했습니다.
‘머글’도 열광한 이유: 비(非)애니 팬층을 사로잡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진격의 거인〉이 평소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던 일반인들까지 대거 유입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오타쿠 취향의 작품들은 과장된 캐릭터 설정이나 모에 요소 등으로 인해 비덕후층에게는 진입장벽이 높기 마련입니다. 또한 〈진격의 거인〉은 잔혹한 생존 서사와 스릴러적 전개로서, 장르적으로도 성인 드라마나 좀비 아포칼립스물에 가까운 긴박감이 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인생 첫 애니가 진격거”인 시청자가 늘었고, 이들은 〈진격의 거인〉을 계기로 타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거나 만화 원작을 찾아보는 등 팬덤 저변이 확장되었습니다.

일반인 시청자들이 이 작품에 열광한 또 다른 이유로는, 보편적인 정서 자극을 들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주인공의 슬픔과 복수심, 동료애와 희생, 자유를 향한 갈망 등은 국적과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테마입니다. 특히 “그날 인류는 벽 밖의 공포를 기억해냈다”라는 내레이션이나 조사병단의 희생 장면 등은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현실의 울분이나 무력감과 맞닿아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요컨대 〈진격의 거인〉이 비애니 팬층까지 사로잡은 비결은, 보편적인 공감 요소를 담은 강렬한 스토리에 더해 애니 특유의 진입장벽을 과감히 낮춘 현실적인 연출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가며: 역사에 남을 작품, 근현대사의 신화

끝으로, 〈진격의 거인〉이 이뤄낸 대중적 성공은 동시대 콘텐츠 산업과 팬문화에 남긴 영향 면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잔혹한 다크 판타지로서 새로운 장르 개척과 메가 히트를 동시에 달성한 이 작품은, “이건 역사다”라는 팬들의 외침처럼 앞으로도 레전드로 회자될 명작으로 남을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린 철학적 메시지, 현실의 역사를 은유한 무게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사 전개, 밈을 통한 2차 창작 문화, 새로운 팬층의 개척까지. 〈진격의 거인〉은 말 그대로 여러모로 ‘거인’ 같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거인을 무찌르는 액션 활극이자, 동시에 인류의 증오와 화해에 대한 우화였던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전 세계 팬들에게 오래 회자될 것이며, 대중문화 속 새로운 신화로 자리할 것입니다.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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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하나의 근현대사의 신화로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나 설정이 가장 상징적으로 느껴지시나요?
- 에렌 예거의 선택을 두고 의견이 많이 갈립니다. 여러분이라면 그의 자리에서 같은 선택을 했을까요,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상상해보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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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리
진격의 거인 올해 유일하게 본 애니인데 늦게라도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게 봤네요ㅎㅎ 위에서 언급해주신대로 세계관이 방대하고 그 내용들이 뭔가 역사책에서도 좀 봤을법한 내용들도 들어가있어서 몰입감도 높았던거 같고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서 에르디아 시점과 마레 시점에서 각자 입체적으로 세계를 보는 점도 좋았고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죠. 질문에 있는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아르민이네요. 협동심과 배려심이 제일 좋았던 느낌이고 가비나 팔코도 생각나고 특히 입체적인 느낌의 라이너도 기억에 남네요. 레터 재밌게 잘 봤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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