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로 다시 바라본, 인생 작품 이야기
매주 한 권의 책으로 새로운 시선을 깨우는 글을 전해드리고 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저의 작은 쿠키레터🍪이자, 10년 동안 함께했던 한 작품과 그 안의 인물들에게 바치는 사적인 헌사입니다. 저의 인생 작품인 <진격의 거인>을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 사상이 담긴 《시지프 신화》를 통해 이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존댓말 대신, 더 솔직한 감정과 저만의 목소리로 썼습니다. 함께 그 세계를 사랑했던 당신이라면, 이 글이 작지만 오래도록 남는 여운으로 다가가길 바라며 —
by. 에이미
들어가며: 10년을 함께한 진격의 거인, 이제 보내줄 시간
극장판 《진격의 거인: 더 라스트 어택》이 개봉했다.
개봉 1주일 만에 관객 25만 명을 돌파하며, 다시 한번 우리 곁에 그들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약 10년 동안 함께했던 작품을 진짜 보내줄 시간이 온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애니가 아니다. 우리 인류의 어두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 유대인 학살의 비극, 끝없이 반복되는 증오의 연쇄까지. <진격의 거인>은 그 모든 것 위에 세워진 이야기다. 증오는 끝나지 않으며, 무너진 벽 위에도 또 다른 벽이 세워질 것이라는 경고처럼.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그저 끝난 작품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과 신념을 기억하고, 인간이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잊지 않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나는 그들의 선택과 신념을 철학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실존주의 철학과 깊이 맞닿아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끝없이 ‘특별함’을 요구받는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뛰어나야 하고, 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하지만 에렌 예거의 엄마, 카를라 예거의 이 한마디는 그 모든 강박을 무너뜨린다.
“이 아이는 이미 위대해요. 이 세상에 태어나주었으니까.”
실존주의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잊기 쉬운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결국 진격의 거인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목표에 갇힌 인간 — 에렌이 증명한 실존의 역설
📖 “자기 인생에 어떤 목표를 상정함으로써 그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요청에 순응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자유의 노예가 되었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이 문장을 보자마자 떠올랐다. 에렌 예거. 그는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는 정말 자유로웠을까?
에렌은 거인을 제거하는 것, 인류를 해방하는 것, 그리고 결국 지구를 평평하게 하는 것(땅고르기)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했다. 그러나 목표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그의 자유는 점점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본 미래에 갇혀버렸고,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한 채 스스로 선택의 여지를 박탈했다. 그가 싸운 이유는 자유였지만, 그는 가장 부자유한 존재가 되었다. 그가 믿었던 자유는, 결국 그를 옭아맨 족쇄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실존의 역설’이다. 실존의 역설이란, 스스로의 자유를 증명하려 한 인간이 오히려 자신이 만든 목표와 의미에 얽매여 자유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말한다.
에렌은 자유를 꿈꿨지만, 결국 자유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가둔 인간이었다. 그의 싸움은 결국, 자신이 만든 족쇄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카뮈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에렌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자유를 포기한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마치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 속에는 에렌뿐만 아니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선택과 고뇌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 속에서 말했던 ‘부조리한 인간 유형’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참고: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지 않으셨다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함께 고민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은 저도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뇌피셜에 가까울지도.. 하하..)
오늘의 책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부조리한 세계 속, 각자의 방식으로 싸운 캐릭터들
진격의 거인 속 인물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한 세계에 맞섰다. 누군가는 끝없는 탐구를 멈추지 않았고, 누군가는 두 개의 삶을 연기했으며, 또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려 했고, 어떤 이는 죽음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렇다면, 진격의 거인 속 캐릭터들을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 나온 부조리한 인간 관점에서 분석해보자.
1. 돈 후안 — 의미 없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자, 한지 조에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돈 후안’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 결코 영원하거나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반복을 멈추지 않는 인간으로 그려냈다. 사랑의 반복자, 부조리 앞에서도 열정과 추구를 멈추지 않는 인간.
진격의 거인 속 ‘돈 후안’은 바로 한지 조에다.
한지는 거인을 사랑했고, 거인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실험 거인이 죽었을 때 통곡하며 무너질 정도로, 그녀의 탐구는 단순한 지식욕을 넘어 인간적 열망과 연결돼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거인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럼에도 한지는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고안하고, 거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며, 반복 속에 스스로를 던졌다. 그 반복은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태도였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모습. 그것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한계에 대한 저항이자 의미 없는 것 앞에서도 의미를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카뮈가 말한 돈 후안은, 결국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조리를 견디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한지 조에는 그 ‘반복과 저항의 인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2. 배우 — 두 개의 삶을 연기하는 자, 라이너 브라운
📖 “배우는 여러 개의 삶을 짧게나마 살아볼 수 있다. 그는 다양한 역할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결국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는 다시 허무를 마주하게 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라이너 브라운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자였다.
그는 마레의 전사이자, 조사병단 병사였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삶을 살면서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카뮈가 말한 ‘배우’ 유형의 인간은 연기 속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보지만, 결국 무대에서 내려오면 공허함을 느낀다. 라이너는 마레의 전사로서의 역할과 조사병단 병사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점점 더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이중적인 정체성 속에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게 되고, 그 갈등은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린다. 그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했지만, 과정에서 진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3. 정복자 —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의 노예가 된 자, 에렌 예거
📖 “정복자는 끊임없이 싸우며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결국 승리하지 못하며, 그가 바꾼 세상도 언젠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에렌 예거는 자유를 위해 싸운 자였다.
그러나, 자유를 원했지만 결국 자유의 노예가 된 자였다. 그는 처음에는 벽 안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거인에게 가족과 친구를 빼앗긴 그는 복수와 해방을 목표로 살아가며, 부조리한 세계를 바꾸려 했다. 그는 부조리한 세계를 부정했고, 그것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자유를 원할수록, 그의 세계는 점점 더 단순한 자유의 쟁취를 넘어 필연적인 파괴로 변질되었다.
처음에는 거인을 멸종시키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것이 끝난 후에도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모든 적을 없애지 않는 한, 자유는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 “부조리한 인간에게 모든 싸움은 무익하고 어떤 승리도 영원하지 않지만, 희망 없는 투쟁이 그의 삶을 정의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카뮈는 목표에 집착하는 인간이 결국 그 목표에 묶여 스스로의 자유를 잃게 된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에렌의 삶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에렌은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웠지만, 그 목표에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다. 그가 원했던 자유는 결국 그의 선택지를 점점 더 좁혀갔다. 그는 미래를 보고, 그 미래가 유일한 길이라고 믿으며, 그 길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즉, 그는 자신이 본 미래의 노예가 되었고,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확신했다. 카뮈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자유를 포기한 인물이었다. 그가 믿었던 자유는, 결국 그를 옭아맨 족쇄가 되었다.
에렌은 처음에는 정복자였다. 끝없이 벽 너머의 세계를 향해 싸우며,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 그는 무너졌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으로 세계의 구원을 택했고, 그 순간 그는 철학적 자살을 선택한 인간이 되었다.
에렌은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조리한 세계를 인정하는 대신, 그것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결국, 그 믿음 속에서 자신을 소모하고 파괴하는 길을 택했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인간은, 부조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이다.
에렌은 끝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자신을 지키지는 못한 인간이었다. 카뮈가 보기에, 에렌은스스로 고통과 책임을 짊어지고 싸우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부조리를 끝까지 직시하지 못하고 파괴로 도피한 *철학적 자살자였을 것이다.
*철학적 자살자는 부조리를 끝까지 직시하지 않고 신이나 절대적 의미에 의존해 스스로를 속이는 자이며, 에렌 예거는 끝내 그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통과 책임을 짊어지며 싸운 인간이었다.
4. 키릴로프 — 극단적 논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한 자, 지크 예거
📖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 등장하는 키릴로프는 극단적 논리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인간이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결론을 극단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자살을 선택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이 키릴로프의 모습을 인용하며, “철학적 자살” 의 대표적인 예로 소개한다. 부조리를 마주한 인간이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초월적 의미나 절대성을 끌어와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극단적 결단으로 회피하려는 태도. 카뮈는 이것을 '철학적 자살'이라 부르며, 끝까지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길이라 비판한다.
진격의 거인 속 지크 예거는 이 키릴로프의 그림자를 닮았다. 지크는 엘디아인이라는 존재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 안락사라는 선택을 계획한다. 그는 ‘고통을 멈출 유일한 방법’이라는 명분으로 절대적 결론을 내려 했지만, 그 결론은 결국 스스로 신이 되려는 시도였고, 끝내는 회피였다.
지크는 철학적 자살자의 길을 택한 인물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부조리를 직면하고 견디기보다,절대적인 해답을 내리고 모든 것을 종결지으려 한 인간.
하지만 카뮈는 말한다.
“승리가 없어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 — 그게 인간의 존엄이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다.
📖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아르민 알레르트, 《진격의 거인》
마지막 아르민과의 대화 속에서, 지크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논리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인정했고, 결국 철학적 자살을 선택하는 대신,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남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지크는 마지막 순간, 리바이에게 목이 베이기 직전 스스로 되뇌었을 것이다. 무의미한 고통을 끝내기 위한 회피는 진정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그는 철학적 자살자의 길에서 벗어나, 부조리를 안고 끝까지 나아가는 ‘인간’으로 돌아왔다.
철학적 자살,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죽어간 에렌과 지크
카뮈는 말한다. 📖 “부조리를 없애려는 인간은 철학적 자살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부조리를 인정하고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반항이다.”
에렌 예거와 지크 예거. 그들은 둘 다 철학적 자살을 선택한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철학적 자살에 이르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에렌 예거 — 자유를 원했지만, 운명의 노예가 된 남자
에렌은 처음부터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는 점점 자유라는 목표에 자신을 가두고, 오히려 가장 부자유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미래를 보았고, 그 미래가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는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을 보지 않았다. 오직 그가 본 운명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는 길이었다. 그는 이 부조리한 세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것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그를 가장 부자유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한 인간이었다. 카뮈의 관점에서 보면, 에렌은 ‘철학적 자살자’였다. 그는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대신, 그것을 파괴하려 하다가 스스로를 희생한 존재였다.
지크 예거 — 극단적 논리에 갇혔지만, 마지막 순간에 흔들린 남자
지크는 철저한 논리를 따랐다. 그는 “엘디아인이 멸종해야만 이 세계의 고통이 끝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 신념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는 흔들렸다. 아르민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처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키릴로프처럼 철학적 자살을 선택하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살아갈 가능성을 엿보았다. 즉, 그는 철학적 자살을 하려다, 마지막 순간에 '반항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었다.
나가며: 철학적 자살자와 반항하는 인간의 갈림길
결국, 에렌과 지크는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철학적 자살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크는 마지막 순간에 삶의 의미를 찾을 가능성을 보았다.
카뮈는 말한다.
📖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것으로 상상해야 한다.”
여기까지, 우리는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카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부조리함을 인식하고도, 거기에 멈추지 않는 인간. 그런 인간을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진격의 거인 속에서 가장 부조리를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은 인간은 누구였을까?
바로 리바이 병장이다.
2부 예고 | 반항하는 인간, 리바이 병장
진격의 거인 속, 가장 부조리를 견디고 살아남은 인간, 바로 리바이 병장이다.
그는 자신이 믿던 모든 것을 잃고도,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동료가 죽어나가는 전장 속에서도,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희망을 붙잡지 않았지만, 절망 속에서도 생존을 택했다.
그는 자유를 쫓지 않았다.
그는 신념에 묶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리바이 병장은 ‘반항하는 인간’이었을까? 그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다음 2부에서, 리바이 병장을 통해 카뮈가 이야기하는 ‘반항하는 인간’의 의미를 탐구해 본다.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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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채
<진격의 거인>도 <시지프 신화>도 안 봤는데 둘 다 보고 싶어지네요...! 자유라는 목표를 추구하다가 그 목표에 잠식당해 오히려 부자유한 존재가 되었다는 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어느 순간 목표와 수단이 주객전도가 되는 순간이 종종 있는데 그런 현실들이 떠오르네요. 쿠키레터임에도 알찬 내용, 주말에 즐겁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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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잉
진격의 거인이 실존주의적 내용이 많은 걸 알고 있었는데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주장하는 "부조리"와 정말 잘 이어진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작품 속 조사병단은 팔라디 섬 주민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벽 밖의 세계"를 조사하는 집단으로, 거인으로 가득한 끔찍한 벽 밖의 현실에서 "진리"를 추구하기위해 부조리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스레터에 나온 조사병단의 멤버들도 너무 좋아하지만, 제가 추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캐릭터는 조사병단 13대 단장 "엘빈 스미스"입니다. 그는 "벽 밖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거인으로 가득한 벽 밖은 매우 잔혹하고, 어떤 절대적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그것을 위해 오직 ‘지하실의 진실’을 향해 돌진한다는 점에서,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며 계속 나아가는 모습”에는 시지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죽음 직전에 한 연설인 "인생에 의미는 있는가?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후 자살공격으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시지프적인 지속과 거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죽음이 강요되는 부조리에 맞서 반항하는 인간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엘빈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리바이 병장을 위해 ‘의도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개인적인 집착(꿈)을 내려놓았다는 점입니다. 그런 태도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영웅적 희생을 통해 반항을 이어가는 모습처럼 보여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진격의 거인을 여러 번 봤지만, 보면 볼수록 정말 매력적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뉴스레터를 작성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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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으앗,,,! <진격의 거인> 안 봤는데, 애니 보고 뉴스레터 읽은 사람들 부럽네요... 시지프 신화도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두 작품을 이어서 얘기해준 내용들이 흥미로워요! 삶, 자유, 존재... 우리들의 생과 지극히 맞닿아 있는 딥한 언어들을 얽힌 서사들과 그림들로 이리 풀어내다니,,, 만화 작가님들은 대체 뭘 보고, 뭘 느끼고, 어떻게 살길래 사람들을 울리는 작품을 그 긴 시간 연재하시는 건가요? 참 대단합니다... 진심어린 쿠키레터 넘 잘 봤습니다! 멋진 콘텐츠들을 재밌게 연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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