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선 한국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은 조기 대선을 치릅니다.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혼란기를 지나며, 우리는 다시금 ‘어떤 리더에게 권력을 위임할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결정의 순간, 브라이언 클라스의 『권력의 심리학』은 권력의 본질과 그 구조적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권력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시스템은 어떻게 사람을 부패시키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리더를 선택해야 하는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각자의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권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성찰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오늘의 책 📕 <권력의 심리학>
권력, 그 심연을 들여다보다
브라이언 클라스는 세계 각국의 최상위 지도자 등 500건 이상을 직접 인터뷰하며, 정치학, 심리학, 진화생물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를 융합해 권력의 본질과 부패의 구조를 탐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권력은 부패한다’는 통념을 넘어, 왜 어떤 사람은 권력에 더 쉽게 이끌리고, 어떤 시스템은 부패를 더 잘 견디는지를 파헤칩니다.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우리가 선거철마다 마주하게 되는 고민과도 깊이 닿아 있습니다.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 부패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부패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요? 저자는 이 질문에 단순한 답을 내리기보다, 권력의 작동 방식과 부패의 메커니즘이 개인의 성향과 사회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권력의 심리학』이 제시하는 세 가지 통찰
1. 권력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를 끌어당깁니다
저자의 가장 도발적인 통찰 중 하나는, 권력이 단순히 선한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이 아니라, 애초에 부패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다는 점입니다. 그는 수백 명의 권력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권력은 선한 사람을 부패시킬 수 있다. 반면 악한 사람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째서인지 악한 이유로 악한 리더에게 이끌린다.
p. 30
(출처: 넷플릭스)
이 통찰은 우리가 어떤 인물을 권력의 자리로 올려보내고 있는지, 그 구조적 조건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권력 선출 시스템은 강한 자기 확신, 카리스마, 자신감 등 특정한 특성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특성들이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스와 같은 ‘어두운 성향’을 가진 인물들에게도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이탈리아의 정치철학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남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은 한 가지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캐리커처에서 비롯됐으며 음모, 대인 관계 조작, 타인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 등이 두드러지는 성격 특성을 가리킨다.
p. 131
권력과 신념의 충돌을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출처: 영화 <미스 슬로운>)
저자에 따르면, 권력의 정상에 오른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부패의 소인을 안고 있었습니다. 권력이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애초에 어떤 인물을 그 자리에 올리는가 하는 점 입니다.
인간은 사실상 두 유형을 섞어놓은 모습이다. 지위가 중요하지만, 자신감도 중요하다. 우리는 위계질서에서 우리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을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자신있는(심지어 자만하는)사람을 더 따르는 경향이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확신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우리는 껌뻑 넘어간다.
p.148
(출처: 나무위키)
이러한 심리적 경향은 실제 정치 현실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그는 정치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서 확신에 찬 단언을 반복하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비록 그 주장의 사실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드러내는 그의 태도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안정감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는 진정 무엇에 이끌리고 있는 걸까요? 리더의 도덕성일까요, 아니면 그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일까요?
2. ‘좋은 리더’란 누구인가?
우리가 말하는 ‘좋은 리더’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흥미롭게도 저자는 권력을 원하지 않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봉사와 책임감으로 권력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주장은 이상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애초에 정치에 진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민주주의는 본래 평등한 기회를 지향하지만, 실상은 권력에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시스템에 더 적응하기 쉬운 구조를 띱니다.
게다가 저자는 권력을 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 변화를 지적합니다. 그들은 점차 더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이 줄어들며, 자신에게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경영진의 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권력을 소유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뇌 활동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합니다. 결국 ‘좋은 사람’조차도 권력 앞에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신이 강력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수록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신경을 덜 쓴다. 타인의 기분을 읽는 능률이 떨어지는데, 타인과 공감해야 할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p. 220
이러한 통찰은 정치인의 언변과 이미지에 의존한 판단을 넘어서, 실제 행동과 결정, 권력 행사 방식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떤 제도를 통해 ‘권력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권력의 자리에 올릴 수 있을까요?
권력을 가장 열망하는 이들이 리더가 되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오래된 딜레마입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접근을 제안합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진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권력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제도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죠.
3.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저자는 권력의 부패를 개인의 도덕성 결핍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시스템의 허점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따라서 ‘누가 권력을 쥐는가’보다 ‘어떤 시스템이 권력을 부패시키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출처:mbc 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worldreport/2853460_29915.html)
그는 UN 외교관의 불법 주차 사례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외교 특권으로 벌금이 면제되던 시기, 뉴욕에 주재한 외교관들은 약 15만 건에 달하는 주차 위반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위반 내역을 기록하고 공개하는 시스템이 도입되자, 위반 건수는 9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는 감시와 책임의 부재가 만든 결과이며, 시스템의 변화가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결국 권력은 감시받을 때만 건강하게 작동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임한 후에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민의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 유지됩니다. 저자는 무작위성을 기반으로 한 감시 제도, 권력의 분산 구조 등이 부패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대선을 한 번의 행사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나요? 민주주의는 절차가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의 문화일 때 비로소 작동합니다.
나가며: 『권력의 심리학』, 2025년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 묻습니다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극단적 정치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권력의 심리학』은 한국 사회에 세 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우리는 대선 후보들의 겉모습이나 말솜씨에 속지 않고, 그들이 얼마나 권력을 원하는지, 또 어떻게 권력을 사용해왔는지를 제대로 살펴보고 있나요? 그저 권력을 쥐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과, 진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 그 도구로 권력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둘째, 우리는 단순히 ‘좋은 사람’을 뽑는 데 집중해야 할까요? 아니면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의 중요성에 더 주목해야 할까요? 물론 유권자인 우리가 당장 제도를 설계하거나 개혁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덕성’만을 기준으로 후보를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시스템을 지지하고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려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권력의 부패는 개인의 성향보다 그를 둘러싼 제도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합니다.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은 ‘어떤 사람을 뽑느냐’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시스템을 지향하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셋째,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기대해야 할까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할까요, 아니면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리더십이 중요할까요? 이 질문들은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곧 마주하게 될 현실입니다.
대선은 단지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선거일 이후에도 지속될 시민의 감시와 참여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권력을 감시할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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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우리는 왜 때로,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후보’보다 ‘기분 좋은 말만 하는 후보’에게 끌릴까요?
- 내가 바라는 ‘좋은 리더’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 대선 이후에도, 우리는 어떻게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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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리
오드리해 지정도서 목록에서 보고 최근에 읽는 책입니다. 중요한 국가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권한을 잘 수행해줄 대표자를 더 잘 찾기위해서 꼭 읽어볼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본문에 있는 것처럼 개인이 권력을 잡는순간 변하는것 보다 국가 및 사회의 시스템이 선출한 대표자를 지속적인 감시 및 제어를 하며 부패하지 못하게 하는것이 중요해 보입니다.책 읽는중에 보게되어서 더 잘 읽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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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마침 국내 상황도 어지러워서 읽기 딱 좋은 책이에요 ㅎㅎ 일정 괜찮으시면 모임에서 이야기 같이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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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채
세상은 점줌 더 빠르게 변하고 불확실한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에 개선이 가능할지 불가능해 보이는 불편한 진실보다는 확실하면서도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지도자들에게 더 끌리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지난주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 뉴스레터와 이어지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지도자를 뽑는 게 끝이 아니라 그들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제도와 국민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에 깊이 공감합니다. 요즘은 지도자들도 뽑히면 그만, 유권자들도 자신이 선택한 지도자가 당선되면 그만인 것처럼 보입니다. 권력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권력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신선하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효과를 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더욱 와닿는 부분이었습니다. 선거를 앞둔 시점, 좋은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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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지난주 뉴스레터와 이어지는 부분이죠!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옳바른 방향으로 나가가게 하는 인물이 언젠가는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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