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첫 눈에 알아보는 사람들
"난 사람을 처음 만나는 순간, 그 사람이 나와 맞을지 안 맞을지 바로 알 수 있어."
이런 말을 하거나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어떤 사람들은 짧은 만남으로 상대방에 대한 견고한 인상을 형성하고, 그 생각을 좀처럼 바꾸지 않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베넷은 서로에 대해 단번에 부정적인 인상을 형성합니다. 첫인상은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이후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러한 현상은 '초두효과'라고 부릅니다. 처음 받아들인 정보가 나중에 얻은 정보보다 우리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죠.
현실에서도 우리는 종종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특히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곧 완벽한 사람, 다시 말해 잘못된 행동을 할 리가 없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그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소울메이트나 천생연분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판단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의 저자 아리 크루글란스키는 이런 현상을 '종결 욕구'로 설명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결론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바로 종결 욕구의 발현입니다. 종결 욕구가 높은 사람일수록 첫인상에 의존하여 판단하고, 이후에 그 판단을 바꾸기 어려워합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책 📗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 아리 크루글란스키
포퓰리즘의 매력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을 향해 분노한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패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기습적으로 습격한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의 이면에는 어떤 원인이 작용했을까요?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리더와 단순한 해결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이 그토록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10년 사이,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경제적 불안정성 증가, 사회적 변화의 가속화는 많은 미국인들,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존재적 불안감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트럼프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자기 확신과 존재감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약속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포퓰리즘이 불확실한 시대에 더 쉽게 확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사회를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이분법적으로 나눕니다. '대중'은 순수하고 인정 많은 모습으로 묘사하고, '엘리트층'은 착취적이고 부도덕적인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합니다. 이러한 단순한 구분은 불확실한 시대에 명확한 적과 우리 편을 구분하고 싶어하는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죠.
종결 욕구의 심리학
그렇다면 종결 욕구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아리 크루글란스키는 이를 '인지적 종결 욕구’라고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 불확실한 상황을 서둘러 끝내고 확정적인 답을 얻고 싶은 심리적 욕구입니다.
확실성을 갈망하는 심리의 근원은 ‘우리의 존립이나 안전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중략) 한마디로 말해, 확실성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확실성의 갈망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인지할 때 일어난다.
(p.58)
흥미로운 점은, 종결 욕구가 높을수록 정보 탐색을 빨리 중단하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을 지적합니다. "신기하게도 아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자신감은 더 높아졌다."(p.49) 우리가 '그만하면 충분하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을 멈추고 결론짓게 되는 것이죠.
종결 욕구와 함께 중요한 개념으로 '향상 초점'과 '방어 초점'이 있습니다. 향상 초점은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거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좋은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성향입니다. 반면 방어 초점은 두려워하는 불운으로부터 안전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성향입니다.
이런 성향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아이가 잘하면 보상하고 반대의 경우 부모의 애착을 거두는 식의 양육은 향상 초점을 발달시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보상 성취에 열의를 보이거나, 보상 성취에 실패했을 때 낙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아이가 잘못하면 벌을 주고 잘하면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양육은 방어 초점을 강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패하면 큰 불안과 동요를 느끼고, 실패를 피하면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단지 실패를 피한 것에 위안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메릴랜드대의 몰리 엘렌버그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좋지 않은 경험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부정적 반응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부모가 자율성을 격려하고 따뜻하게 보살핀 경우에는 동일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종결 욕구를 형성하고 불확실성을 대하는 자세에 양육 방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술 한 잔이 촉진하는 종결 욕구
'알코올 섭취'와 '종결 욕구'는 서로 관련이 있을까요?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알코올 섭취는 우리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방해해 '알코올성 근시' 상태를 유발하고, 이 때문에 종결 욕구도 높아집니다. 연구자들은 100퍼센트 오렌지 주스, 오렌지 주스와 소량의 알코올 혼합액, 오렌지 주스와 적당량의 알코올 혼합액을 섭취하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한 참가자들이 소량의 알코올 섭취 참가자들보다 종결 욕구가 높게 나왔고, 알코올을 한 방울도 섭취하지 않은 참가자들의 종결 욕구가 가장 낮았습니다.
알코올은 일종의 정신적 무력감을 유발시켜 종결 욕구를 높이고, 그에 따라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평상시 집중하던 정보는 물론,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도 떨어집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음주 후 더 단정적이고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일상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알코올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더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으로 보는 개방성과 폐쇄성
종결 욕구의 차이는 정치적 성향과 리더십 스타일에도 뚜렷하게 반영됩니다.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는 이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클린턴은 개방성의 상징입니다. 그는 어떤 쟁점에 대해 확실한 입장 밝히기를 꺼리며, 신비주의적인 철학과 비관습적 관점에 남달리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의 개방성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채고 관점을 인정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향 덕분에 다양한 유권자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죠. 그는 중재에 능숙했으며, 의사전달과 설득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반대 의견도 경청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데 열린 자세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방성은 동시에 우유부단하며 원칙이 없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부시는 폐쇄성의 상징으로,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태도와 격식을 차리는 딱딱한 스타일을 보였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흑백 세상을 중시했으며, 단순명쾌한 의견과 여지를 남기지 않는 직설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속전속결로 결정을 내리는 그의 스타일은 임기 말년에 대중적 지지는 잃었지만, 측근들 사이에서는 강한 충성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종결 욕구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높은 종결 욕구를 가진 사람(부시 유형)은 명확한 구분과 결단력 있는 판단을 선호하는 반면, 낮은 종결 욕구를 가진 사람(클린턴 유형)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관점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 모두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껏 이런저런 이유로, 둘 다 역사적 맥락에 따라 찬양이나 멸시를 받아왔다. 우리에게 놓인 도전 과제는 이 둘의 다른 역할을 이해하고, 언제 마음을 열고 언제 마음을 닫을지 구분하는 것이다."
(p.120)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각각의 접근 방식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나가며: 불확실성 속에서 균형 찾기
불확실성은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삶이 언제나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서양의 심리학에서는 낙관주의나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불확실성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주한 삶 속에서 부족한 균형감을 찾아 동양 철학, 특히 불교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기분 좋은 일이든 불쾌한 일이든 어떤 일에 놀랄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세상은 무상(無常)함으로 가득하므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어떤 일이든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은 불확실성을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기르게 합니다.
"불확실성이 꼭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불확실성은 그저 불확실성일 뿐이며, 불확실성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p.346)
불확실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확실히 알고 통제하려는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불확실성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혜롭게 항해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 작성자: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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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불확실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 편인가요? 종결 욕구가 높은 편인가요, 낮은 편인가요?
- 불확실성 때문에 서둘러 내린 결정이 있었나요?
- 내 삶에서 불확실성을 더 잘 수용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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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저는 불확실한 걸 정말 못 견디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 늘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을 위한 계획을 위한 계획까지 ㅎㅎ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아마도 통제 욕구가 강한 성향 때문이겠죠. 이런 제 모습을 돌아보면, 저는 확실히 종결 욕구가 높은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뉴스레터에 소개된 부시 vs 클린턴의 리더십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주저 없이 부시를 고를 것 같아요. 우유부단한 태도는 도저히 참을 수 없거든요. 틀리더라도 방향을 정하고 책임지는 태도, 저는 그런 단호한 리더십을 더 신뢰하는 편입니다. 결국 불확실한 세상을 이겨내는 힘은 ‘예측’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태도는, 때로는 한 사람의 결단력 있는 선택에서 시작되기도 하니까요. 오늘도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주말에 서점에 들러서 구매해야겠어요!
오드리해 책추천 뉴스레터
단호한 리더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책임을 지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태도를 보일 때 신뢰감이 더 쌓이는 것 같구요! 이제는 더 이상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크리스탈님의 '계획을 위한 계획을 위한 계획'도 결국엔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인 것 같네요. 이런 철저하고 치열한 고민이 있었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본인을 믿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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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u
오늘의 뉴스레터를 읽고, 최근의 나는 불확실한 상황을 싫어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코올을 섭취했을때 내가 무엇인가 결단력있고 자신감이 있는 것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이 종결욕구랑 관계되어있음을 알게되니 긴장된 상황에서 알코올에 약간이나마 의존하던 마음의 정체를 알게된 것 같은 느낌이네요.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단순함과 심플함에 끌린다." 이 말이 인상적입니다. 저 또한 그것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최근에 많았고, 제 주변의 사람들도 복잡하지 않은 처리방식과 생각 구조에 더 매력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말들을 더 많이 듣고 그렇게 살아야하나? 라고 영향을 받게되는, 보이지 않는 압박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음도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내 삶에서도 불확실함을 수용하는 것, 마음을 열고 닫고를 어느 순간에 해야 '나'를 보호하며 '타인'에게도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지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오드리해 책추천 뉴스레터
술을 마셨을 때 마음 속에서 용기가 솟구쳐 오르는 이유를 종결욕구 개념을 통해 설명할 때 술을 마시고 했던 행동들이 스쳐 지나가며 이해가 되더라구요! 😂 요즘은 어떠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확실한 상황들은 불안함을 야기하기에 확실한 비전을 제시할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선택을 유보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태도이든, 선택을 빠르게 하기 위해 본인만의 기준을 세워두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태도이든 '틀린' 자세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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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혀니즘
뉴스레터를 읽는 내내 뼈를 뚜드려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죠. 저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선택 자체보다는 결정을 내린 뒤, 기회비용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그 선택을 최선의 결과로 만들어내는 태도, 노력, 끈기 같은 것에 가치를 두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방식은 분명 생산성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사람으로서 겪게 되는 불안, 망설임, 후회 같은 감정들을 지나치게 밀어내는 경향이 있고, 정리되지 않은 정보나 사고, 환경을 견디기 어려워지는 현상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이전 뉴스레터에서 추천해주신 [악마와 함께 춤을]을 최근 읽고 있는데, 어쩌면 제가 오랜 시간 스스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마주하지 않은 채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과 독서모임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오늘도 좋은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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