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이유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뉴스, SNS, 블로그, 유튜브 등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사실과 거짓이 섞인 세상 속에 노출된 적이 없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모든 것을 검색할 수 있는 시대, 하지만 그만큼 쉽게 속고, 쉽게 분노하며, 쉽게 '믿고 싶은 것'만 소비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책 <페이크와 팩트>는 이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왜 우리는 틀린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할까?" "왜 반복되는 거짓말에 속고, 선동에 휘말릴까?" 그리고 그 안에는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본능,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안도감을 찾으려는 작은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 심리가 어떻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지 들여다볼 때입니다. 오늘은 <페이크와 팩트> 책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사실을 외면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왜곡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의 책 📕 <페이크와 팩트>
미신과 숫자의 심리학: 우리가 숫자 13을 피하는 이유
인천국제공항에는 4번, 13번, 44번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특정 숫자에 대한 문화적 금기와 미신이 실제 공간 설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숫자 ‘4’가 ‘죽음’을 뜻하는 한자 ‘死(사)’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꺼려지고, 서구권에서는 숫자 ‘13’이 역사적, 종교적 맥락에서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13에 대한 공포는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triskaidekaphobia)’라는 심리학적 용어로 정의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특정 숫자에 대한 집단적 회피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입니다.
호텔 산업에서도 이 같은 소비자 심리를 반영해 13층 또는 13호실을 생략하거나, ‘12A층’처럼 대체 표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이는 단순히 미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불안감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전략적 판단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숫자 회피 현상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그로부터 심리적 통제감을 얻고자 하는 경향에서 비롯됩니다. ‘특정한 숫자나 상징을 피함으로써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은 위협을 관리하려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반복적으로 강화될 경우, 개인뿐 아니라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비합리적인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상징이나 의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안도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고를 멈추게 만들고, 사회 전반의 판단력을 흐릴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신은 문화적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순간부터는 경계가 필요합니다.
이념에 따른 과학 수용: 기후변화와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
우리는 과학 앞에서도 언제나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과학적 사실을 수용하고, 어떤 사실을 거부하느냐는 개인의 이념적 성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스테판 르완도프스키(Stephan Lewandowsky) 연구팀의 논문 「미국 항공우주국의 달착륙은 거짓이다 — 그러므로 (기후)과학은 사기다: 과학 거부 동기의 해부학」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연구에 따르면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 전반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보수 성향이 강한 개인들은 특히 ‘정부 규제’를 암시하는 과학 분야—대표적으로 기후과학—에 대해 선택적으로 반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과학적 사실조차도 개인의 정체성, 이념, 세계관에 따라 왜곡되거나 걸러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기존의 신념과 충돌하지 않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왜 그것을 믿는가?” 과학이 제시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믿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화물'을 숭배하는 자들
화물을 신앙으로 여기다니. 믿겨지시나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의 원주민들은 미군이 하늘에서 내리는 물자를 받아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고, 결국 이들은 활주로를 흉내 내고, 무전 기계를 모방하며 제례를 치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화물신앙(Cargo Cult)’이라는 기이한 믿음이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화물(Cargo)'이란 비행기나 배로 운송되는 물자를 의미합니다. 전쟁 중 미군이 비행기로 공수한 식량, 의약품, 의류, 도구 등 현대적 물품들이었죠.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에게 이 화물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처럼 보였습니다. 화물신앙은 원주민들이 이 물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오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의식과 행동만 따라하면 자신들도 그런 물자를 받을 수 있다고 믿은 현상입니다.
그들은 나무로 만든 가짜 헤드셋을 쓰고, 대나무로 활주로와 관제탑을 만들며, 심지어 가슴에 'USA'를 새긴 군복까지 모방했습니다. 이는 인과관계에 대한 오해, 즉 의식과 형태만 따라하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일화로만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숭배’라는 방식으로 수용하곤 합니다. 과학기술이 압도적으로 발전한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고 있을까요? 신을 대신해 무엇이 우리의 신념을 구성하고 있는 걸까요?
리처드 파인만은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비판하며 ‘화물신앙 과학(Cargo Cult Scie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겉모습은 과학과 유사하지만, 실증이나 반증 가능성 없이 그럴듯한 말과 외관으로 포장된 주장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런 주장들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심지어 학술 컨퍼런스의 무대 위까지. 고압적인 말투, 세련된 프레젠테이션, 복잡한 통계 수치. 그럴듯한 외피를 두른 비과학적 주장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이 흐릿해진 지금, 비판적 사고와 회의주의는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생존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나가며: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우리는 정말 ‘팩트’를 보고 있는 걸까요?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맴돈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진짜와 기만을 구별하려면 회의주의와 분석적 사고를 연마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가짜 정보와 마주합니다. 미신과 편견 속에서 안도감을 찾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믿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고, 선동이 일상이 된 시대에는 ‘안심’보다 ‘의심’, 확신보다 ‘질문’이 우리를 더 잘 지켜줍니다.
《페이크와 팩트》는 말합니다. 우리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생각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는 것. 편향에 취약한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하되, 그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보고, 증거에 기반한 결론을 내려보는 것을 말이죠.
그게 곧 비판적 사고이고, 우리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진짜와 가짜가 섞인 세상에서, 당신은 얼마나 진짜를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아닌 사실을 마주하는 용기, 책 <페이크와 팩트>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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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당신은 특정 정보나 뉴스를 접할 때,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내용은 무의식적으로 거부한 경험이 있나요?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 일상 속에서 당신이 미신적으로 믿거나 피하는 것이 있나요? 그것이 당신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 정보 과잉 시대에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위해 당신이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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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잉
회의주의와 분석적 사고를 연마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 인스타 쇼츠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추천 알고리즘 덕분에 내가 좋아요 누른 콘텐츠와 비슷한 영상들만 계속 보게 돼서,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사고가 더 편향되기 쉬운 구조 같아요. 요즘 시대의 신이 있다면 SNS 알고리즘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앞으로는 정보를 접할 때마다 이게 정말 팩트인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퍼플렉시티나 ChatGPT처럼, AI를 활용해서 정보의 진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연습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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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채
일단 뉴스 헤드라인만 보고도 내가 원하는, 내 신념과 일치해 보이는 기사만 클릭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오늘 뉴스레터를 보고 반성하게 되네요 😂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방법은 직접 책이나 연구 결과들을 찾아보는 것이 그나마 정확한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책이나 연구도 결국 책을 쓰고 연구를 행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편향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어떤 식으로 구별해야 할까 혼란스럽긴 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매체나 수단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여러 수단들을 이용하여 크로스체크를 해봐야 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궁금한 것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라서 정보를 얻기가 쉬워 보이지만, 반대로 이런 것들이 정보의 홍수를 불러와 오히려 팩트를 체크하는 데에 들이는 에너지가 많아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인천공항에 그래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가는데 4, 13, 44번 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는 몰랐어서 이 사실이 정말 흥미롭네요!! 오늘도 흥미롭고 유익한 레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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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혀니즘
비트코인을 했을 때, 친구들과 함께 "영차... 영차..."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객관적 분석보다 우리의 간절함이 우주적 존재(사실은 코인 세력...)에게 닿기를 바랐습니다. 뉴스레터를 읽고 우리가 잘못 판단하거나 편향된 사고를 하는 것이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인지적 특성이라는 점이 너무나 와닿았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넓은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려는 태도에서 변화가 시작되듯, 우리 사회도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 구성원이 다양한 시각을 접하고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여건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콘텐츠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오드리해의 따뜻한 뉴스레터, 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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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혀니즘님! 항상 잊지 않고 따뜻한 응원과 후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오늘도 멤버들과 커피 한 잔씩 나눌 수 있었어요 :) 그 마음 잊지 않고, 앞으로도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드릴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 뉴스레터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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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빌더
"왜 우리는 틀린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할까?" "왜 반복되는 거짓말에 속고, 선동에 휘말릴까?" 뉴욕 출장 중인 지금, 미국 상호관세는 여러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90일 유예, 중국만 125%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Cargo cult 처럼 대처하면 안될텐데, 많은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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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관세 전쟁이 장난도 아닌데, 진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갈수록 혼란만 커지고, 뭘 위한 결정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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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AI 사진은 점점 실제와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 SNS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지금, 에코챔버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쉽게 어디로든 휩쓸려갈 수 있는 현실 속에 살고 있죠. 거짓에 휩쓸리는 순간,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속으로 점점 더 빨려들게 되는 구조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미 1995년에 출간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이 상황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이로운 기술들이 극소수의 사람 손에 들어가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은 현안을 전혀 파악할 수도 없을 것이고,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거나 권력자들에게 질문할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또 비판 능력이 쇠퇴해 기분 좋게 해주는 것과 참인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수정을 꼭 부여잡고 신경질적으로 우리 운세나 물어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미신과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갈 것이다.” 이렇게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 칼 세이건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뉴스레터에서 언급해주신 회의주의와 분석적 사고를 연마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선동이 일상이 된 시대에선 안심보다 의심, 확신보다 질문이 우리를 더 잘 지켜주는 태도라는 말 또한 너무 공감되네요. 생각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고, 언제나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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