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페렉의 『사물들』이 경고하는 현대인의 비극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이 단순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을 정확히 비추는 거울 같습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SNS를 열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친구의 해외 여행 사진, 명품백 자랑 사진 등.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보며 느끼는 미묘한 부족함과 초조함.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저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불편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됩니다. 작가는 60년 전, 텔레비전과 잡지가 욕망을 확산시키던 시대에 이미 이 감정을 정확히 포착했습니다. 1960년대 프랑스 소비문화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그 의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책 📕 <사물들>
똑같은 욕망, 증발하는 고유성: 현대인의 비극
『사물들』 책이 발표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이 소설이 묘사하는 현상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누가 어떤 주식을 사서 올랐다더라"
"코인이 대박나서 퇴사했다더라"
"강남에 아파트가 있으면 인생이 다르다더라"
이런 말을 들은 순간, 우리의 욕망은 수정됩니다. 남들이 사는 것은 나도 사야 할 것 같고, 남들이 가는 곳은 나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욕망은 점점 '공통의 것'이 되어갑니다.
작가가 『사물들』에서 제시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게 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사회적 압력과 광고의 영향으로, 우리는 '남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개인의 고유성은 증발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욕망하고, 똑같은 삶을 꿈꾸게 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것을 원하지 않으면 오히려 조롱까지 하죠. 당신은 지금 욕망하고 있지만 아닌 척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소비 비판이 아닙니다. 그는 소비 그 자체보다, 소비가 약속하는 '행복'이 어떻게 환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줍니다. 사물은 소유되지 못한 순간부터 고통이 됩니다. 그리고 소유하더라도, 그 만족감은 일시적입니다. 이는 현대인의 불안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소비로 눈을 돌립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불행의 시작'입니다.
끝없는 욕망의 목록
소설의 주인공인 젊고 교양 있는 커플 제롬과 실비는 특별히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금 더 나은 삶'을 끊임없이 상상합니다. 그들의 욕망은 항상 구체적인 '사물들'의 목록으로 표현됩니다.
비싼 조명, 광택 있는 원목 가구, 절제된 색감의 패브릭.
언뜻 보면 단순한 소비 욕구처럼 보이지만, 페작가는 이러한 욕망이 어떻게 현대인의 정체성과 깊이 얽혀있는지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사물들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되고 싶은 자아의 표현이 됩니다. 현실은 늘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파리에서 튀니지로, 다시 파리로 떠돌며 꿈꾸던 삶과의 간극을 체감합니다. 이 방랑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닌,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의 표현입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통찰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조르주 페렉
이 구절은 현대 소비사회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결핍 자체가 아니라,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입니다. 이 가능성이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사물들』이 주는 교훈
60년 전 작가가 던진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욕망을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일까요? 소비사회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 타인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행복을 정의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은 단순한 소비 비판서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구성하고, 어떤 가치에 의미를 두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더 많은 사물로 둘러싸인 우리에게 작가의 소설은 불편한 거울을 들이댑니다. 이 거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요? 그리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나가며: 소유를 넘어서는 진짜 행복의 조건
『사물들』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닌, 우리 자신의 욕망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타인의 욕망과 어떻게 다른지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물들'을 욕망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것은 진정 당신만의 욕망인가요?
이번 주 『사물들』 책을 통해 본인이 진짜 원했던 삶이 무엇이었는지, 타인의 욕망 속에서 잊고 지낸 나만의 욕망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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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우리는 왜 ‘내가 진짜 원하는 것’보다,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먼저 욕망하게 되는 걸까요? 나의 욕망은 정말 나만의 것일까요?
- 소유하지 못한 ‘사물’이 불행의 이유가 되고, 소유한 순간에도 만족은 금세 사라지는 이 감정, 여러분도 느껴보신 적 있나요?
- 우리는 언제부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오히려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요? 그 희망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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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채
넉넉한 연봉과 안정적인 정년이 보장되어야 노후를 대비하기 수월하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서울에 아파트가 있어야 빠르게 자본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압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영원히 안정적인 직장이란 없으며(하물며 공무원조차도 미국에서는 줄줄이 해고를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 공무원의 근무요건은 다르지만 미국이 시작일 것이고, '공무원도 잘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잘 맞는 듯해 보이던 배우자와도 한순간에 헤어질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러한 희망들, 그저 남들이 좇기에 나도 그에 휩쓸려 따라간다면 결국 희망고문이 아닐까요? "만약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것을 원하지 않으면 오히려 조롱까지 하죠."라는 부분에 매우 공감이 됐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고, 조건이 잘 맞는 적당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으면 마치 '현실을 모르는 어린 아이' 취급을 하며, 지금 당장부터 준비를 하더라도 늦었다며 같은 목표를 쫓아 달리기를 종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책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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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rgn
글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의 욕망은 수정됩니다. 남들이 사는 것은 나도 사야 할 것 같고, 남들이 가는 곳은 나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욕망은 점점 '공통의 것'이 되어갑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소비로 눈을 돌립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불행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 결핍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이상향’이라 표현하고 싶어요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모든 결핍이 욕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저는 얼리어답터 성향이 강해서 새로 나온 전자기기나 가전제품을 보면 자연스레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데 누군가 열광하는 한정판 운동화나 명품 브랜드 가방에는 별다른 욕망을 느끼지 않습니다 저에게 욕망은 단순히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이상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생겨나는 감정(?) 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제 욕망은 누군가의 것을 흉내 낸 결과물이 아니라, 제 안에 있는 고유한 결핍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완전히 순수한 ‘나만의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하지만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그 태도 자체가, 남과 구분되는 나만의 욕망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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