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힙’의 상징이 된 불교
작년 DJ ‘뉴진스님’이 찬불가를 EDM 스타일로 리믹스하며 화제가 되었던 ‘국제불교박람회’는 올해도 그 인기를 이어가며 젊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헤드셋을 쓴 부처님 일러스트가 그려진 굿즈들은 순식간에 품절됐고, ‘히든 담마 챌린지'를 수행하며 팔정도 카드를 모으는 관람객들의 모습은 마치 게임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젊은이들은 왜 2,500년 전 붓다의 가르침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요?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불교는 더 이상 '무거운 종교'가 아닙니다. 끝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는 '삶의 기술'이자, 복잡한 현실을 명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유의 도구'로 다가서고 있죠. 강요하지 않고, 탐구하게 하는 불교의 특성이 자율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마음을 잘 겨냥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와 함께 사람들을 사로잡은 불교의 진짜 매력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들여다보려 합니다.
오늘의 책 📕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원영
불교에 대한 오해: "모든 쾌락을 포기해야 한다?"
"불교를 믿으면 세속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불교’ 그리고 ‘스님’을 떠올리면 맛있는 음식도, 연애도, 취미 생활도 모두 내려놓고 산속의 절에서 고행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이는 불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쾌락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명확히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그 맛을 온전히 즐기되, "이 맛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이보다 더 맛있는 걸 찾아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불교적 태도라는 것이죠.
실제로 부처님은 극단적인 고행을 경험한 후, 그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알게 니다. 너무 굶주려 뼈만 남은 상태에서는 명상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부처님이 발견한 것이 바로 '중도(中道)'의 원리입니다. 극단적인 금욕도, 극단적인 쾌락 추구도 아닌, 균형 잡힌 삶의 태도 말이죠.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절제'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계율'입니다.
계율의 진정한 의미: 세이렌 이야기에서 배우는 지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 이야기'를 아시나요?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바다로 빠뜨려 죽이는 바다의 요정들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그 위험성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배의 기둥에 묶어두고,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게 했죠. 덕분에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무사히 그 곳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의 계율은 바로 이 오디세우스의 지혜와 같습니다. 자신을 배의 기둥에 묶는 것처럼, 미리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죠.
원영 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작은 나쁜 습관도 '괜찮겠지, 나아지겠지.' 하고 오래 방치하면 훗날 얼마나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사소한 욕망이라도 점점 커지게 마련이니, 적절한 통제로 자신의 삶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결국 계율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인 셈입니다. 세이렌의 노래에 홀려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지혜처럼 말이죠.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더 용기를 냈더라면..."
"만약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런 가정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하며, 때로는 현재를 놓치기도 하죠.
개봉 후 오랫동안 화제가 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바로 이런 '만약에'의 세계를 다룹니다. 주인공 에블린은 멀티버스 속 다른 버전의 자신들을 만나며, 자신이 살지 않은 수많은 삶의 가능성들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불교의 '무아(無我)' 개념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과연 '다른 선택을 한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른 존재일까? '무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조건이 만들어낸 관계'를 말합니다.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지금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즉, 지금의 나는 무수히 많은 조건들이 만나서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시대, 부모,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들...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이죠. 만약 그중 하나라도 달랐다면, 그건 이미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영화 속 에블린이 무수한 평행우주를 경험한 후 깨닫게 되는 것도 결국 이와 같습니다.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의 자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불교에서 보면 '만약에'라는 가정 자체가 독립된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변화할 뿐입니다. 과거의 다른 선택을 그리워하거나 미래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조건들과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무아와 연기의 지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나가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서
젊은이들이 불교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힙한' 포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복잡하고 빠른 현대 사회에서 길을 잃기 쉬운 그들에게, 불교가 제시하는 내면을 향한 여행이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불교를 공부하며 무언가 특별한 대상을 찾으려고 합니다. 부처님을 찾으려고 하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으려 하고, 부처님이 되는 특별한 길은 없으려나 기웃거리면서 뭔가 자신에게 없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중요한 건 찾고 있는 대상이 결국은 찾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p.348)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외부의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고(苦)'를 통해 현재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무상(無常)'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며, '무아(無我)'를 통해 독립된 실체로서의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진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여정입니다.
EDM 리믹스와 미디어 아트로 포장되었을지라도, 오래 전 붓다가 발견한 이 진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외부의 자극과 성취에 매몰되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과 선택지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젊은 세대에게, 불교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잠깐 멈춰서서 너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어때?"
불교의 가르침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이 하나의 깨달음으로 귀결됩니다. 밖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는 용기. 혹시 여러분도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 현재를 놓치고 계시진 않나요? 아니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외부에서 찾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이미 내 안에 있지는 않을까?’
✍️ 작성자: 안나
📮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아래 댓글에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 오늘의 질문
- 요즘 젊은 세대가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오해나 편견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에 빠져본 적 있나요? 그럴 때 어떻게 현재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크리스탈
"과거의 다른 선택을 그리워하거나 미래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조건들과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문장을 한 동안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 너무 마음이 아플때면 '만약에' 지옥에 빠지는 것 같아요. 만약에란 없고, 그 상황이 되면 결국 또 다시 그 선택이 똑같이 반복될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오늘은 덕분에 영화도 한 편 추천 받고 가네요! 주말엔 서점에가서 추천해주신 책 한권과 영화를 몰아서 보도록 할게요 ㅎㅎ 다가오는 주말을 풍족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
오드리해 책추천 뉴스레터
'만약에' 지옥이라는 말에 공감갑니다. '만약에'가 한 번 시작되면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또 수많은 '만약에'를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만약에' 그 상황이 다시 주어져서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에 있어 후회를 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도 힘든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바깥의 상황을 내 의지대로 모든 걸 바꿀 수 없다면 나의 내면은 내가 선택하고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니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주말에는 책 그리고 영화와 함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며 마무리하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