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기본소득을 둘러싼 편견의 벽
"기본소득? 그거 그냥 돈 퍼주는 거 아니야?", "공산주의랑 뭐가 다른데?"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듣게 되는 반응들입니다. 사실 기본소득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정한 액수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어떤 조건 없이 지급받는 소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정의 뒤에는 생각보다 깊이 있는 사회적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안녕하세요, 기본소득입니다』를 통해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과연 기본소득은 정말 '퍼주기'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더 큰 그림이 있는 걸까요?
오늘의 책 📗 『안녕하세요, 기본소득입니다』, 이원재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기본소득일까?
기본소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세 가지 핵심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입니다. 보편성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삶의 어떤 순간에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조건성은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나이가 많아야 받을 수 있다" 또는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 같은 조건이 없어야 하죠. 개별성은 가족이나 집단 단위가 아닌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된다는 특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익숙한 다른 제도들은 어떨까요?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은 내가 미리 돈을 내고 조건을 충족했을 때 받는 시스템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기본소득은 아닙니다. 다만 기본소득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제도들이죠.
얼마 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됐던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어떨까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됐으니 무조건성과 개별성은 충족했지만, 일시적 지급이었기 때문에 보편성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맛보기'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돈은 어디서 나올까? 재원 마련의 방안들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바로 재원 문제입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느냐"는 것이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증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기본소득에서는 납세자가 동시에 수혜자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소득세를 통해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한다고 해봅시다. 소득세는 누진세이기 때문에 고소득자일수록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보다 세금으로 내는 돈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중에는 소득이 없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가구 전체로 보면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현재 과도하게 복잡한 소득세 비과세나 감면 제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들은 사실 대부분 고소득자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위스는 탄소세 배당을 통해, 알래스카는 석유라는 공동 자원을 활용해 기본소득에 가까운 배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저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자고 제안합니다. 육아, 돌봄, 자원봉사 같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노동들 말이죠.
특히 흥미로운 사례로 블로그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블로거들 중에는 풍부한 정보를 대가 없이 제공하는 사람들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다고 봅니다. 맛집 정보부터 전문적인 기술 리뷰, 육아 경험담, 여행 정보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무형의 가치 창출 활동들이야말로 기본소득의 철학적 토대가 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해 바로잡기: 기본소득을 둘러싼 편견들
첫 번째 오해는 "기본소득을 주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핀란드의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2년 동안 실업급여 수령자와 같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받은 집단을 비교한 결과, 노동 시간에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대신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자율성이 높아졌으며, 자신감과 삶의 질이 향상됐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정부 규모가 커지고 행정비용이 과다해진다"는 우려입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지급하기 때문에 누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일일이 심사하고 관리하는 선별 복지제도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오히려 행정 조직을 축소할 수 있죠.
세 번째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입니다. 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원인은 통화량 증가인데, 위에서 언급한 증세를 기반으로 기본소득이 실행된다면 전체 통화량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물가 상승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물가 상승 가능성은 낮다는 것입니다.
나가며: 선입견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 열어두기
그렇다면 왜 기존의 선별 복지제도가 아닌 기본소득이어야 할까요?
선별 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복지 절벽' 현상입니다. 일정 소득 수준을 넘어서면 복지 혜택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일하지 않으려 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합니다. 생계급여를 받던 사람이 열악한 환경의 저임금 일자리를 구했는데, 그 임금이 생계급여와 별 차이가 없다면 굳이 일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또 다른 문제는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사회적 낙인입니다. "복지에 의존한다"는 시선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터놓고 이야기하기 곤란해합니다.
물론 기본소득에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적정 지급 금액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죠. 하지만 기본소득을 단순히 "돈을 퍼주는 것"이나 "공산주의"라고 치부하는 건 섣부른 판단입니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제도입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자리에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되면, 사람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직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창업에 도전하거나 예술 활동을 할 수도 있죠.
혹시 여러분도 기본소득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그 거부감의 뿌리가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새로운 가능성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작성자: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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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여러분이 기본소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나 편견 혹은 우려는 무엇인가요?
- 만약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나요?
-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 혜택이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혹은 부족하거나 넘친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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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리
최근 사회이슈에 대해 다룬 책인가보네요. 막연하게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이렇게 지원해주면 당장은 좋더라도 어차피 또 내야되는 세금이다 이런말들이 많긴 한거 같아요. 그렇지만 적은 돈이라도 무조건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여 동등하게 제공하여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정말 소중하게 사용했을 사람들도 분명 많았을것이라 생각이 되네요.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정말 깊은 연구가 필요할꺼 같고, 위에 언급해주신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내용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책 모임이 있는걸로 봤는데 시간이 된다면 함께 토론하고 싶은 내용이라 참석해봐야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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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모든 사람이 다 똑똑하거나 일을 잘하는 건 아니죠. 또 머리가 좋다고 해서 육체노동까지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에 던져졌지만, 각자 해야만 하는 일, 혹은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기회를 모두가 누릴 수는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과잉 인구수입니다. 이미 사람만으로도 환경이 버겁게 돌아가는데, 여기에 인공지능과 로봇까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남는 건 결국 할 수 있는 일도, 설 자리도 잃은 ‘잉여 인간’뿐일 겁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정말 “무쓸모”하다는 낙인을 찍히기 쉽죠. 그렇다면 답은 뭘까요? 억지로 쓸모를 강요하기보단, 최소한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는 겁니다. 실제로 핀란드와 캐나다 일부 지역의 기본소득 실험에서는 단순히 소비만 늘어난 게 아니라, 정신적 안정, 재교육 참여, 소규모 창업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사회 안전망이 개인의 존엄을 지켜주고, 동시에 경제도 선순환되게 만든 거죠. AI 시대, 인구 과잉과 ‘잉여 인간’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기본소득은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점점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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