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돈으로 사지 못할 것이 있을까?
지난달 발행된 뉴스레터 <극단의 시대: 자본주의가 삼킨 우리의 가치들>[링크]은 어떻게 보셨나요? 현대 사회에서 오직 돈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극단적 수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직업 윤리와 도덕적 가치를 붕괴시킨다는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연 지금, 세상에서 돈으로 사지 못할 것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옵니다.
📗 오늘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오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마이클 샌델은 공공 예술 공연 대리 줄서기, 기여입학제, 테러리즘 선물시장, 스카이박스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시장 논리의 확장이 가져온 변화를 보여줍니다.
🏥 병원 줄서기, 이제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되다
병원 예약 애플리케이션 '똑닥'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병원에 가기 전 어디서든 원격으로 미리 접수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실시간으로 대기 순서를 확인하며 자신의 순서가 다가올 때쯤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매우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 편리함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료 멤버십을 구독한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특별한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서비스를 옹호하는 측은 '줄서기'가 비효율적인 행위이며, 빠른 서비스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자신의 시간에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합리적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시간이라는 재화에 최고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이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한다는 논리입니다. 언뜻 보면 경제적 합리성 측면에서 매우 타당해 보이는 이 주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맹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마다 지불 능력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같은 '10만 원'이라도 각자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그 상대적 가치는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재화에 어떻게 가치를 매길 것인지,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에는 상당한 갈등과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단순히 '경제적 합리성'만을 잣대로 삼는다면 손쉽게 답을 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일까요?
❤️🩹 생명보험으로 변질된 노동자의 존엄성
1980년대 미국에서는 충격적인 보험 상품이 등장합니다. '청소부 보험' 또는 '죽은 소작농 보험'이라 불린 이 상품은 회사가 일반 사원을 피보험자로, 회사를 보험금 수령인으로 하여 가입하는 생명보험입니다.
이 보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힘든 노동 환경으로 인해 과로사 위험이 높은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피보험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근로자 권리 침해에 대한 윤리적 문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이러한 보험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져줍니다. 과연 임금이 적다는 이유로 그들의 생명을 기업의 재정적 수단으로 전락시켜도 되는 것일까요?
🤝 공동체 정신이 돈의 논리를 이긴 순간
하지만, 언제나 돈의 논리가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 논리를 극복한 사례를 스위스 중부의 작은 마을 볼펜쉬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93년, 스위스 정부는 핵 폐기장 후보지로 볼펜쉬셴을 지목합니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보상금 지급 제안 전후로 각각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제안한 후에 핵 폐기장 유치 찬성률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금전적 보상이 없을 때는 핵 폐기물 처리라는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공공선에 대한 헌신이 있었지만, 보상금이 제시되자 이를 일종의 뇌물로 인식하여 오히려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공공시설 확충과 같은 공동체 차원의 보상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공공정신이 우세한 사회에서는 경제 논리보다 시민의식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나가며: 돈으로 사지 말아야 할 것들
똑닥 애플리케이션은 병원 접수를 조금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개발된 서비스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보험 상품은 예기치 못한 사망으로 인한 유가족과 사업체의 재정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안전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더 편리한 생활, 조금 더 안전한 미래를 목적으로 고안되었더라도 용도는 변질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딜레마를 낳을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유전자 가위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유전병 치료와 같은 긍정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지만, 동시에 ‘맞춤형 아기’ 출산과 같은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만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습니다. 과연, 돈만 있다면 유전적 특성을 선택할 권리를 구입해도 되는 것일까요?
마이클 샌델은 최근 수십 년간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단순한 탐욕의 증가가 아니라,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든 시장가치라고 지적합니다. 이제는 삶 속 중요한 무형적 가치들까지도 가격이 매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 권리에 대한 공정한 기회, 윤리적 가치,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을 시장가치에 맡겨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풍조에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할 영역은 어디이며, '돈으로 사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우리가 어떤 사회,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샌델은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우리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도록 이끕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합의점을 찾아가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려는 자세가 아닐까요? 이것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일 것입니다.
✍️ 작성자: 안나
📮 오늘의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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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돈으로 절대 사지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스위스 볼펜쉬셴 마을의 사례처럼 돈의 논리를 이겨낸 사례를 발견한 적 있나요?
- 도덕적 합의점을 찾아가기 위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개인은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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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파수꾼
표현이 인상깊네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제일 쉬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돈으로 사면 안된다고 말하니 고민이 됩니다. 답을 제시하지 않은게 한편으로 돈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있네요. 저도 읽어보고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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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다행히 어떤 사람들은 '돈'보다 '대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소수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죠.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랑뿐일까요? 영원할 것 같은 소중한 '인맥'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면 그들이 과연 제 옆에 남아 있어줄까요? 진정성이 사라져가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돈'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면 한심한, 무용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죠. 저는 무용한 것들을 참 좋아합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명대사가 있죠.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인구가 너무 많은 탓에, 똑딱같은 서비스가 나오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생각은 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나만의 작은 공동체에서 만큼이라도 저를 포함한 소규모의 우리는 무용한 것들을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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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잉
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입니다.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자유를 줬지만, 이제는 인간을 구속하는 족쇄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사랑과 같은 감정이나 새로운 경험, 심지어는 아플 때 치료받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돈으로 해결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뉴스레터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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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참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마저 점점 돈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사랑’은 돈으로 못 사죠. 그러나,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선 성숙한 인격이 필요합니다. 인격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좋은 유전자 +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지죠. 돈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과 만납니다. 게다가 돈이 있으니, 공부든 취미든 교양이든 다방면으로 배울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을 갖습니다. 이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대에 누적되죠. 즉,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조차 돈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기에 유리한 구조가 되는 겁니다.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빈부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돈 있는 사람들은 돈으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굳이 노동하지 않고 시간의 자유를 만끽하며 말이죠. 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굴레를 벗어날 방법을 고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악순환은 점점 더 극심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게 됩니다. 이런 사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선, 공동체 인식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 말고요.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함께 고민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도 분명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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