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노동 세계의 혁명 or 붕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10년 후에도 존재할까?'
출근을 하다가 혹은 일을 하다가도 문득 드는 이런 질문이 더 이상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그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과거 수백 명이 달라붙어야 했던 업무를 이제는 AI의 도움으로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때 개발자 붐이 불면서 학교에서 코딩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이제 개발자들 중에는 소수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일자리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소수의 자리와 단순 서비스업만 남고, 그 사이 중간 영역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빅테크 5사 MANGO(Meta, Apple, Nvidia, Google, OpenAI)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적은 인력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노동 혁명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알던 일의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일까요? 『인공 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에서 AI와 삶의 의미를 다뤘던 프레히트가 이번에는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 노동의 미래에 주목합니다. 급변하는 시대, 일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의 책 📗 『모두를 위한 자유』,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Labour vs Work: 노동 개념의 분화
저자 프레히트는 '노동'의 개념부터 짚고 갑니다. 타율적 노동인 'Labour'와 자율적 노동인 'Work'로 나누어서 말이죠.
중세의 '라보르'에서 유래한 Labour는 단순 반복 작업, 기계의 부품처럼 움직이는 노동을 가리킵니다. 이런 노동 속에서 노동자는 생산 시스템의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Work는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뜻합니다.
과거에는 Labour만이 삶과 생존을 위한 진짜 '노동'으로 여겨졌다면, 현재는 Work도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의 범주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사람들은 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일과 삶을 엄격하게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거죠. 이렇게 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개념,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 탄생합니다.
시간의 역설: 풍요로워졌는데 왜 여전히 바쁠까?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은 높아졌고, 워라밸에 대한 인식도 발전했지만 정작 우리는 여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물질적 풍요는 달성했지만 시간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죠.
실질적인 결핍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왜 다른 결핍 속에서 살고 있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결핍이란 생산의 진보가 우리에게 선사해야 할 것, 즉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결핍’입니다. 노동의 자동화로 인해 증가한 여가 시간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점점 불안정해지는 노동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적 자본’을 향상시키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여가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여전히 '노동의 코르셋'에 갇혀 있다고 표현합니다. 일해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감이 진정한 휴식을 방해하는 거죠.
실제로 보면, 딱히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대량으로 증가한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점점 복잡한 방식으로 확장되는 관료적 행정주의입니다. 이런 일들은 전반적으로 특별한 재미를 주지 못하고, 깊은 의미도 안기지 못하죠. 행정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스트레스에 찌들고 녹초가 된 채 퇴근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늘날 우리의 노동 세계는 생계 보장과 심리적 스트레스, 자아실현 사이에서 격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저자는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임금 노동의 형태여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는 급여를 받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어떤 고용 관계도 인간의 다양한 잠재력을 모두 발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의미 사회: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제안하는 답은 '의미 사회'로의 전환입니다. 기존의 사회가 임금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새로운 사회는 개인이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사람이 창작자이자 생산자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이 전환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직업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보다, 의미 사회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미 사회에서 자기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은 복잡한 과정들을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복잡한 과정은 대개 직업이 아니라 바로 삶 자체다. 내가 창업을 하든, NGO를 설립하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싫어 잠시 직장을 쉬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든, 6개월 정도 다른 대륙에서 자원봉사를 하든, 몇 년 간 직장을 다닌 후 독립하기로 결심하든,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기로 하든, 아니면 이 중 몇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든지 간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수립해야 한다. (중략) 이전에는 대체로 앞날이 보이는 삶이 있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이 있다.
(p.509-510)
이런 사회 변화에 맞추려면 교육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의 학교는 여전히 '지시를 잘 따르는 직장인 만들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상사의 지시에 묵묵히 따르는 사람을 길러내는 시스템인 것이죠. 하지만 미래에는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능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새로운 교육은 직업 기술보다 인간으로서의 기초 소양을 먼저 다져야 합니다. 시민 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마음가짐,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직업보다 삶 자체가 더 복잡한 과제가 될 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양입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지침이 사라질 때, 내 안의 좌표계가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죠.
저자는 미래의 학교가 공간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학교 건물은 병원이나 관공서처럼 획일적이고 경직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 사회에 걸맞은 학교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쉬고, 놀고,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가 함께 어우러진 환경 말입니다. 이런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나가며: ‘일의 미래’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자동화 기술이 발달할수록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소득을 얻는 사람도 줄어들며, 결국 생산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까지 줄어드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저자는 이 고리를 끊는 새로운 제도로 기본 소득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노동 사회의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본 소득을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복지 제도가 아닌, 현재의 생업 노동 중심으로 된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 전체의 작동 원리를 새롭게 설계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기본 소득만 도입하면 사람들이 그 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먼저 스스로 의미 있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즐겁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일이 줄어드는 현실을 실패로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힘든 노동에서 해방된 인류의 성취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앞으로 노동과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가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릅니다.
✍️ 작성자: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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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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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노동 환경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AI 시대의 노동 변화, 여러분은 이를 해방으로 받아들이시나요 아니면 위협으로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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